[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주걱댕강나무의 유일한 자생지, 경남 양산시 천성산

조선비즈
  •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입력 2017.05.06 05:00

    2003년 10월이었습니다. 경남 양산시 천성산을 관통하는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중지시켜 달라는 소송이 꼬리치레도롱뇽에 의해 제기됐습니다. 이른바 ‘도롱뇽 소송 사건’입니다. 천성산은 22개의 늪과 12개의 계곡이 산재해 있어서 멸종위기종이자 1급수 환경지표종인 꼬리치레도롱뇽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경남 양산시 천성산
    그곳에 터널을 뚫으면 산 위의 습지가 말라 꼬리치레도롱뇽을 비롯한 여러 동식물이 살 곳을 잃게 되며, 이는 곧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다며 ‘도롱뇽의 친구들’이라는 환경 단체가 꼬리치레도롱뇽을 원고로 내세워 공사 중지 가처분 소송을 낸 것입니다.

    기나긴 법정 다툼 끝에 결국 2006년 6월 2일, 대법원은 고속철도 공사가 천성산의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불명확한 문제로 대형 국책사업을 중지시킬 수 없으며, 도롱뇽은 소송법상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로서 지녀야 할 능력이 없는 자연물로 규정해 소송 대상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철도시설공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도롱뇽 소송 사건은 뭇 생명의 존귀함과 자연환경 훼손의 심각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사전에 면밀한 조사 없이 공사 구간을 선정해 결국 공사 중단의 빌미를 주어 145억 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낭비한 정부의 개발 논리에 경각심을 일깨워준 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요? 소송이 처음 제기됐던 2003년 여름에 천성산과 관련된 발표가 식물학계 쪽에서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일본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던 주걱댕강나무가 천성산에 대규모로 자생한다는 사실이 식물동호회에 의해 밝혀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초본도 아닌 목본식물이 소규모도 아니고 대규모로, 그것도 식물학자가 아닌 식물동호회에 의해 발견됐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합니다. 이 땅에 아직도 기록하지 못한 식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고, 식물학자가 아닌 일반인도 식물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사건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식물동호인들의 활동이 식물학자와 연계되어 더욱 활발해지면서 많은 식물이 발견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쨌든 그 바람에 일본은 특산식물 하나를 목록에서 지우게 됐고, 우리나라는 미기록 식물 하나를 새로이 써넣게 됐습니다.

    주걱댕강나무
    주걱댕강나무는 아주 예쁜 꽃나무입니다. 밥주걱 같기도 하고 종 모양 같기도 한 꽃이 5월 초순부터 가지마다 가득 피어나 나무를 뒤덮습니다. 다 자라봐야 키가 2m 내외밖에 되지 않으므로 관상용으로 개발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그런 나무가 천성산에는 소수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산지의 사면에 수백 그루가 분포합니다. 그 정도면 가히 천성산을 대표하는 나무라 하겠습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천성산에서만 자생하므로 보호받아야 마땅합니다. 특히 천성산의 주걱댕강나무 중에는 꽃이 흰색으로 피는 것도 있어서 가치가 더욱 높습니다.

    주걱댕강나무의 흰색 꽃
    그러나 주걱댕강나무는 그리 큰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 꼬리치레도롱뇽은 꼬리를 쳐서 그런지 소송의 원고로 제기될 정도로 관심을 받았지만 주걱댕강나무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동식물 간의 차별대우처럼 느껴집니다.

    터널을 뚫는 일이 주걱댕강나무의 자생지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게 아니어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어차피 주걱댕강나무도 인간이 아닌 자연물이라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는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주걱댕강나무 자세히 알기>

    천성산에 가서 주걱댕강나무만 보고 왔다면 그건 자랑할 일이 못 됩니다. 손해니까요. 또 다른 귀한 나무인 꼬리말발도리까지 보고 와야 본전 뽑는 일이 됩니다. ‘말발도리’라는 이름은 열매의 모양이 말발굽 모양인 데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꼬리말발도리
    앞에 ‘꼬리’자가 붙은 이유는 꽃차례가 꼬리처럼 길기 때문이고요. 긴 꽃차례에 여러 개의 흰색 꽃이 달린 모습이 예뻐서 관상 가치가 높은 편입니다.

    주걱댕강나무 다음으로 천성산의 2인자 자리를 꿰차고 있는 나무라고나 할까요? 경북 팔공산 이남의 경상도 산지에서 드물게 자라는 탓에 보기가 쉽지 않으나 천성산에서는 비교적 많이 눈에 띕니다.

    <꼬리말발도리 자세히 알기>

    주걱댕강나무를 찾아 돌아다니다 보면 바위 사면에 둥글게 뭉쳐 있는 양치식물이 보입니다. 손바닥처럼 생긴 그것은 바위손입니다. 수분이 부족한 건기에는 안으로 감겨 있어서 죽은 풀처럼 보입니다.

    바위손
    하지만 비가 오고 나면 다시 활짝 펼쳐지는 습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약성이 제법 있을 법합니다. 한방에서는 잎과 줄기와 뿌리 전체를 약재로 쓴다고 합니다. 피를 멈추게 하고 천식을 다스리는 한편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쓰면 안 되겠습니다.

    <바위손 자세히 알기>

    남부지방인 천성산에서는 쪽동백나무가 일찌감치 피어납니다. 동백나무 비슷한 나무를 상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동백나무와는 거의 별개의 나무입니다. 동백나무처럼 기름을 짜서 쓰기는 하는데, 동백나무보다 열매가 작아서 ‘쪽’자를 붙였을 뿐입니다.

    쪽동백나무
    어쩌면 열매가 아니라 씨가 작아서 붙였을지도 모릅니다. ‘쪽방’, ‘쪽문’에서처럼 ‘쪽’자는 작다는 뜻으로 쓰는 접두사입니다. 식물 용어 중 ‘소엽(小葉)’을 풀어쓴 ‘작은잎’이라는 용어도 원래는 ‘쪽잎’이라는 순우리말로 썼습니다.

    그러나 ‘쪽’자에 ‘작다’라는 뜻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일반인에게는 쪽잎보다 작은잎이라는 용어가 금세 더 와닿기에 지금은 작은잎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게 됐습니다.

    <쪽동백나무 자세히 알기>

    쪽동백나무는 열매보다 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를 향해 은색의 종처럼 주렁주렁 매단 꽃에서 매우 좋은 향기가 납니다. 그게 꼭 때죽나무의 꽃향기와 비슷합니다.

    둘 다 같은 때죽나무과의 나무라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때죽나무 꽃에서는 금방이라도 코를 마취시킬 정도의 강한 향이 나는 데 비해 쪽동백나무는 약간 순하면서 좋은 향기가 납니다.


    때죽나무
    2017년 5월은 그 어느 해 5월보다 뜨겁게 시작됐습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병충해의 발생 빈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땅에는 흙먼지 풀풀 날리고 하늘에는 미세먼지 가득합니다.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까요? 시원한 단비 소식을 타는 목마름으로 기대해 봅니다.

    천성산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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