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공약 虛와實]⑥ '재계 저승사자' 공정위 위상만 높인다고 제 역할 할까

  • 전슬기 기자
  • 입력 : 2017.04.17 14:00

    문재인, 안철수 공정위 위상 강화 공약
    공정거래법 ‘형사 처벌’ 한국 유독 많아
    민사적 구제 방안 선진국에 비해 적어
    공정위 모순적 성격에 대한 검토도 필요

    1981년 탄생한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앙행정기관으로 시장의 공정 거래에 관한 정책을 세워 운영하고, 동시에 준사법기관으로 독점과 불공정 거래에 관한 사안을 심의해 법원의 1심 판결에 준하는 의결을 내린다. 이런 역할 때문에 붙여진 별명은 ‘경제 검찰’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공정 거래법 전반에 형사 처벌을 도입하고 있으며, 공정거래법은 법 위반과 관련한 고발권을 공정위에만 줬다. 바로 전속고발권이다.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걸린 기업도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당하지 않는다.

    그러자 공정위는 끊임없는 ‘봐주기’ 논란에 시달리게 됐다. 공정위는 최근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 중 강화된 순환 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처분 주식 수를 줄여 삼성에 특혜를 줬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공정위 설립 이후 처음 현직 위원장이 사법 당국에 소환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솜방망이’ 처벌 논란도 계속 되고 있다. 형사 고발권을 가졌음에도 고발 비율이 낮고, 과징금 부과 액수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공정위가 고발하거나 제재 조치를 취한 사건도 법원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선비즈DB
    조선비즈DB
    ◆ 文·安, 경쟁적으로 공정위 강화案 내놔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공정위 문제가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공정위의 위상을 높여 ‘경제 검찰’의 역할을 확실히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공약은 모두 공정위의 위상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정위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더 강한 ‘칼’을 줘 시장 감시자의 역할을 돕겠다는 것이다.

    안 후보는 공정위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현재 5인으로 돼 있는 공정위 상임위원(불공정 행위 심의·의결 역할) 수를 7명으로 늘리고, 3년인 임기 또한 5년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상임위원들은 국회의 추천을 받도록 했다. 또 공정위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시정이 되지 않는 경우 기업분할명령과 같이 강력한 제재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도 ‘재계 저승사자’로 불렸으나 축소된 공정위 조사국을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했다.

    ◆ ‘민사적 구제 부족·형사 처벌 문제점’ 공론화 적절

    전문가들은 두 후보의 공정위 위상 강화 공약을 집중해서 보고 있지만, 그 부분 보다 전속 고발권 선별적 폐지와 형사 처벌의 민사적 제재로의 전환 공약을 더 눈여겨 봐야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치권은 그동안 공정위가 시장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강하게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 주장을 해 왔다.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이 폐지되면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누구나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진보 성향을 가진 두 후보가 전속 고발권의 전면 폐지 보다 선별적 폐지를 언급하고, 공정거래법에 광범위하게 도입 된 형사 처벌 문제도 공론화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변화라는 평가다.

    문 후보는 지난 12일 공개한 ‘J노믹스’에서 공정거래법 전반에 걸쳐 있는 형사 처벌을 민사적 제재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특정 분야 외에는 민사적 제재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대신 과징금 액수는 크게 늘리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 캠프의 씽크탱크인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공정거래법의 모든 위반에 대해 형사 처벌하는 법 체계를 가진 나라는 없다”며 “핵심 위반 사항에 대해서만 형사 처벌을 하고, 나머지는 금전적 처벌 등 과징금을 부과하는 민사적 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상 형사 처벌 대상 범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매우 넓다. 공정거래 위반 행위는 크게 카르텔(독과점), 시장 지배 지위 남용, 기업 결합, 불공정 거래 행위, 기타 사업자 단체 금지행위 등 5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정거래법에 형벌을 규정한 것은 14개국인데 한국은 5개 유형 모두, 일본은 불공정거래 행위를 제외한 4개 유형이 형벌 대상이다. 영국·캐나다·오스트리아 등은 카르텔 행위만, 미국은 카르텔·지배적 지위 남용·기업 결합 등 3개 유형을 형사 처벌 한다. 다른 회원국들은 공정거래 관련 형벌이 없는 대신 시정 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형사 처벌 조항을 법에 많이 도입한 것은 민사적 구제 방안이 부족한 탓이라고 본다. 피해자들 입장에선 민사 소송을 통해 구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기 때문에 강한 형사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고, 이런 분위기가 법 전반에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공정 거래 행위는 살인이나 절도 등과 달리 명확하게 범죄 여부를 단정 짓기 어렵다. ‘공정한 거래를 저해한’ 이라는 어떻게 보면 추상적인 법 조항으로 형사 처벌을 한다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조성국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법에 형사 처벌이 많은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민사적 구제가 선진국 처럼 이뤄지지 않아 국가가 나서서 강한 처벌을 하는 것”이라며 “형벌은 어떤 것이 벌이 되는지 사전에 알려줘야 하는데, 기업들의 끼워 팔기나 일감 몰아주기 등은 과거에는 죄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이 법을 저해하는 것인지 사전에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의 영역에 국가 형벌이 개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담합 등 불공정행위 피해, 민사적 제재 방법 늘려야”

    따라서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들이 민사적 구제 방안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모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도 확대를 공정위 공약에 포함했다. 현재 불공정 행위로 가해자가 형사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피해자한테 직접 돌아가는 보상은 없다. 형사 처벌을 한정적으로 하고 과징금을 늘린 후 피해자들에게 실직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집단소송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다.

    공정위 출신의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현재는 불공정 행위 신고자의 피해 구제 측면이 취약하다”라며 “공정거래법상 기껏해야 과징금 부과인데,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돈을 더 배상하라는 것은 없다. 민사적 제재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도를 확대하고, 영국과 미국에서 시행 중인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재판 이전의 소송 상대방 또는 제 3자에 대한 증거 요구권 부여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들의 전속고발권 논의가 선별적 폐지 등 절충점을 찾아 나가는 것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하려면 전체적인 사법 체계의 변화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동안 전속고발권 폐지 등 미시적인 부분에만 너무 초점을 맞춰왔다는 평가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솔직히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는 경제 민주화 바람을 타고 너무 정치적으로 논의된 면도 없지 않다”라며 “공정거래법의 광범위한 형사 처벌 조항을 손보고, 거기에 담합, 시장 지배 지위 남용 등 중대한 위법 행위에만 공정위가 전속 고발권을 가지도록 해도 어느 정도 개선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36년 모순된 조직 역할 원점 재검토 필요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동네 슈퍼 담합 문제까지 신고되면 조사해야 한다.” (공정위 관계자)

    전문가들은 두 후보의 공약이 공정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짚지 않은 데 아쉬워한다. 공정위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36년 된 공정위 조직을 원점에서 다시 살펴볼 때가 됐다고 조언한다.

    공정위는 모순된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 행정기관이면서 준사법기관이기 때문에 어느 측면에서 비중을 둬 바라보는가에 따라 역할이 다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공정위는 신고가 들어오는 사건들을 모두 조사해야 한다. 미국처럼 선별적으로 조사할 수 없다. 공정위가 행정기관으로서 민원 해결의 임무를 부여 받아서다. 또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 방안이 부족한 것도 당사자 간 작은 분쟁까지 공정위에 신고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공정위 직원들은 업무 과중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연 평균 2000건이던 공정위 사건 처리는 지난 2001년 이후 4000건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는 반면 공정위 정원은 지난 2013년 532명에서 지난 2014년 530명으로 2명 줄었다. 지난 2015년 534명을 회복한 후 지난 2016년 535명, 2017년 536명으로 최근 2년 동안 정원이 1명씩 늘었다.

    공정위는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고 제재를 결정하는 ‘검사’와 ‘판사’의 역할도 같이 갖고 있다. 공정위 사무처가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고 공정위 상임위원들이 혐의를 판결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모순된 현상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있다. 반독점 정책을 수행하는 기구가 소비자정책, 하도급거래 등도 감독하는 것에서 비롯된 문제점도 조정해야할 과제로 부각된다. 행정 기관과 준사법기관의 성격을 분리해 조직을 개편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공정위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라면서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과 준사법기관의 역할을 분리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집단 소송제도 등 민사적 구제 방안에 대해 길을 열어 놓고 공정위는 시장에 파급 효과가 큰 것에 집중하는 ‘투 트랙’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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