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WEEKLY BIZ] 30년 연속 '증수증익'… 日 박리다매 기업 니토리

  •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실장

  • 최원석 기자

  • 입력 : 2017.04.15 08:00

    [저성장 돌파한 日本 기업] <2> 니토리

    가구에서 사업 확장, 생활용품 비중 높여 전체 매출에서 가구 매출 비중의 두배
    "가격 이상의 가치" 니토리 성공의 70%는 제조 부문서 나와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실장
    지난달 28일 도쿄 미나토구(區)의 니토리(Nitori) 실적 발표회장. 작년 실적이 공개되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매출은 전년보다 12% 증가한 5130억엔(약 5조1300억원), 순이익은 28%나 증가한 600억엔(약 6000억원)이었다. 영업이익률도 17% 늘었다. 저성장 늪에 빠진 지 오래인 일본에서, 그것도 저가(低價) 가구·잡화를 주로 판매하는 '박리다매형 기업'치고는 괴력이라 할 만한 성과였다.

    하지만 술렁였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니토리가 '30년 연속 증수증익(增收增益·매출과 수익의 동시 증가)'의 대기록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지난 30년간 버블 붕괴(1990년 전후), 글로벌 경제위기(2008년), 동일본대지진(2011년) 등 위기가 많았지만, 한 해도 빠짐없이 전년보다 매출·이익이 모두 늘었다. 특히 2009년 이후로는 연평균 매출은 10%, 이익은 15%나 증가했다.

    실적 발표에 이어 기자회견에 나선 니토리 아키오(似鳥昭雄·73) 니토리 창업자 겸 회장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처음부터 염두에 둔 건 아니었지만, 10년 연속, 20년 연속 증수증익을 목표로 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감회를 전했다. 곧이어 그의 새로운 선언이 이어졌다. "이제부터는 '40년 연속 증수증익'이 목표입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결과를 낸 것일까. 니토리의 30년 연속 성장 비결을 다섯 가지로 분석했다.

    1. 창업 초기부터 가구 직접 유통·판매

    니토리 1호점의 이름은 '니토리 가구도매센터'였다. 상호에 '도매'를 붙일 만큼 시작부터 저가 전략이었다. 창업 초기였던 1973년부터 전 매장 동일 가격제와 상시 염가 판매를 실시했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다른 가구업체들은 니토리에 비해 비쌌을 뿐 아니라 정가제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던 때였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큰돈을 들이면서도, 자신들이 좋은 물건을 적정한 값에 샀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런 불만을 해결해준 니토리에 고객은 열광했다.

    니토리의 가격 경쟁력은 아키오 회장이 중간유통 단계를 건너뛰고 가구 제조사와 현금 직거래 함으로써, 경쟁자보다 훨씬 싼값에 물건을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전략은 가구 유통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지만, 물건이 더 싸고 좋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소비자가 니토리 매장을 찾기 시작했다.


    일본 오사카의 니토리 매장.
    일본 오사카의 니토리 매장. / 니토리
    2. 업계 최초로 제조·판매 통합

    니토리의 판매 규모가 커지자 생존에 위협을 느낀 가구업계 중간유통 상인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상인들은 '니토리와 직거래하면 당신들을 우리 유통망에서 빼버리겠다'며 제조업체를 위협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가 단번에 두 배가 되자, 니토리는 해외에서 가구를 수입해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다. 우선 대만산 가구를 수입해 보았으나 일본의 기후 사정이나 소비자 기호에 맞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생산·유통·판매의 통합이었다. 1986년 미국 의류업체 갭(GAP)이 만들어 낸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모델'에서 따온 것이었다. SPA는 소매점 중심으로 제품의 기획·디자인에서 생산·물류·판매까지 수직통합 구조를 만들어 일괄 관리하는 사업 모델이다. 제조·유통을 겸하기 때문에 원가 절감과 빠른 상품 회전이 가능하다. 니토리는 1990년대 가구업체 최초로 SPA 모델을 전면 도입했다. 자체 제조 기반을 확보한 데 이어, 비용이 저렴한 해외로 그 기반을 이전함으로써 원가를 더 낮췄다. 이후 제조와 판매는 물론, 물류·광고를 통합한 완벽한 SPA 모델을 확립해 나갔다.

    3. 생활용품 비중 늘려 지속 성장

    2000년대 들어 니토리는 집 꾸미는 데 필요한 모든 상품을 판매하는 쪽으로 업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현재는 모포·커튼·이불커버·쿠션 등 섬유류는 물론 조명·벽지, 심지어 질그릇과 같은 주방용품과 초등학생용 가방까지 모두 다룬다.

    생활용품은 재구입 빈도가 높고 가격도 저렴해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 유용했다. 방문객 수 증가가 점포와 매출의 확대로 이어지면서, 체인점이 가져야 할 기본 경쟁력인 '규모의 경제'가 자연스럽게 실현됐다. 2000년 50곳에 불과했던 매장 수는 2010년 217곳으로 늘었다. 현재는 470여 곳(일본 내 430곳)에 달한다.

    2011년부터는 '데코홈'이라는 가지치기 브랜드의 매장도 신설했다. 기존 매장이 교외의 널찍한 장소에 위치해 고객이 차를 타고 가서 물건을 싣고 오는 식이었다면, 데코홈은 도심을 파고든 생활용품 전문 매장이었다. 2011년 3곳에서 현재 50여 곳으로 늘었다. 니토리의 매출(2017년 2월 결산)에서 생활용품 비중은 61%로, 가구(31%)보다 훨씬 높다.

    니토리는 가구부터 주방용품·섬유류까지 집안에서 필요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뿐 아니라 집 꾸미기와 관련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은 매장을 찾은 고객이 니토리 직원과 상담하고 있는 장면.
    니토리는 가구부터 주방용품·섬유류까지 집안에서 필요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뿐 아니라 집 꾸미기와 관련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은 매장을 찾은 고객이 니토리 직원과 상담하고 있는 장면. / 니토리

    4. '가격 이상의 가치'를 주는 상품

    아키오 회장은 최근 일본 경제주간지 '동양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30년 연속 증수증익(增收增益)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니토리의 '상품'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장을 찾은 손님이 반드시 '가격 이상의 가치'를 얻어 가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니토리 성공의 70%는 제조 부문에 있고, 나머지 30% 정도가 판매일 것"이라고 했다.

    또 니토리는 비용을 절감할 때 '전체 최적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평범한 기업이 부분별 비용 관리에 치중하느라 전체적으로는 회사에 손해 가는 일을 저지르는 것과 차별화된다. 2014년 말 출시 이후 20만개 가까이 팔린 히트 상품 '싱글 매트리스'(개당 소매가 약 10만원)가 바로 전체 최적화의 대표 사례다. 이 침대 매트리스는 가로·세로 각 28cm, 높이 103cm의 상자에 압축 포장돼 있는데, 이를 꺼내면 한 사람이 눕기에 충분한 크기로 부풀어 오른다. 압축포장은 제조원가를 높였지만, 아키오 회장은 "회사 이익에 크게 기여했다"고 극찬했다.

    비결은 중국산인 이 제품의 물류비 절약에 있었다. 컨테이너 한 개에 실을 수 있는 수량이 기존에는 120개였지만 압축포장 제품은 800개까지 가능했다. 개당 운송비가 6분의 1로 줄었다. 또 기존 제품은 고객이 직접 들고 갈 수 없어 택배가 필요했지만, 압축포장 제품은 추가 운송비가 안 드는 장점도 있었다.

    5. "우리에게 '완성'이란 없다"

    올해 초에는 일본 의류 업계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니토리가 의류 체인점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아키오 회장은 "유통업에서 살아남으려면 30년 뒤 모습을 생각해 장기 비전을 만들고 이를 역산(逆算)해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총수는 개혁을 해야 한다. 개선은 간부들에게 맡겨도 충분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기사 전문은 4월15일자 조선일보 WEEKLY BIZ에서 볼 수 있습니다. WEELLY BIZ 구독 및 배달 신청은 조선일보 홈페이지 ( https://members.chosun.com/subscription/appendweeklybiz.jsp ) 에서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독자는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무료로 배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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