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WEEKLY BIZ] "왜 안 돼?" 한투그룹 키운 동원가 장남 '마법의 한마디'

  • 정재형 조선비즈 금융증권부장

  • 입력 : 2017.04.15 08:00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한국투자금융지주
    김남구(54) 한국투자금융지주(이하 한투그룹) 부회장은 '튀는 판단'의 고수(高手)다. 목숨과도 같은 회사 이름을 두 번이나 내던진 게 그 증거다. 2005년 동원증권 사장 시절 한국투자증권(이하 한투증권)을 인수하면서 '동원'이란 본가(本家) 명칭을 포기하고 '한투증권'을 택했다. 올해 인터넷 은행 카카오뱅크를 시작하면서 58%의 지분을 갖고도 파트너 기업(카카오)의 이름을 수용했다.

    김재철(82)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인 그의 경영 키워드는 '왜 안 돼(Why Not)?'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말버릇이던 "이봐, 해 봤어?"와 닮았다. 그러나 내용은 다르다. 덜 공격적이지만 더 포용적이고, 더 긍정적이다. 한투증권 인수 당시 47세이던 유상호 사장을 발탁해 11년 연속 조타수를 맡기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국내 금융사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이 4년이 안 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파격'이다. 형식·서열·구습(舊習)을 배격하는 대신 실질·능력·혁신에 앞장서는 것이다.

    28세에 동원증권에 입사한 김남구 부회장은 2004년부터 금융 부문을 사실상 독립된 그룹으로 운영하며 14년째 지휘하고 있다. 이달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빌딩 9층 사무실에서 만났다.

    "11년 전 全 직원 상담 자료, 인사철마다 본다"

    한투그룹의 성장 과정에서는 M&A(인수·합병)가 큰 역할을 했다. M&A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병 후 통합(PMI·Post Merger Integration)이다. 김 부회장은 이 작업을 매끄럽게 하고 감원 등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서도 회사를 성장시킨 주역으로 정평이 나 있다.

    ―대형 합병은 후유증이 많은데 비법이 궁금하다.

    "인수 이듬해인 2006년 전체 지점 직원들을 1대1로 만나 상담했다. 모두 1300명을 12개월에 걸쳐 만났다. 하루 평균 4명꼴이었다. (김 부회장은 갑자기 일어서서 책장 쪽으로 가더니 두툼한 서류 파일을 3개 들고 왔다.) 직원들에게 60세까지 자신의 꿈이 뭔지 적게 한 후 이걸로 대화를 나눴다. 상담하며 거기에 메모를 했다.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는데, 인사철마다 이 자료를 꺼내 본다. 꽤 오래됐지만 읽으면 직원들 얼굴이 떠오른다.

    ―어떤 소신에서 그렇게 했나.

    "리더십의 본질은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먼저 앞장서고 손해를 감수하는 희생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리더에게 긴요한 자질은 정신력과 의지라고 본다. 나아가 리더는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다."

    그는 "희생정신, 의지, 결단력, 이 세개가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과 합병할 때나 새 회사를 세울 때 자기 회사 이름을 고집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회사 규모보다 내실이 훨씬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동원'보다는 '한국투자'가 더 낫다고 봤다. 동원은 참치 이미지가 강했다. 인터넷 은행도 마찬가지다. 카카오톡을 전 국민의 90%가 이용한다는데, 한투 모르는 사람은 아직 많다. 카카오가 훨씬 낫지. 그런 게 바로 진짜 브랜드다."

    ―카카오뱅크를 한투그룹의 주력으로 키울 건가.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럴 생각이다. 카카오뱅크의 영문 이름은 'Kakao bank of Korea'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작명한 것이다. 뒤에 나라 이름만 붙이면 된다."

    ―업무 강도가 매우 높은데도 퇴사자가 적고 감원도 하지 않는 비결이 있나.

    "인력 규모를 업황이 어려울 때를 기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게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미리 방지하는 우리만의 방법이다. 힘들어도 조금 더 함께하는 게 낫지 않나. 같은 목표와 꿈을 공유하며 노력하면 이직(離職)을 훨씬 줄일 수 있다."

    김 부회장은 2003년부터 매년 대학교에서 여는 한투증권 채용설명회 현장을 직접 찾아간다. 그는 "채용설명회 자리야말로 1년 계획 중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라고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채용설명회는 회사의 신입 사원이 아니라 '꿈과 열정을 함께할 동반자' '미래의 한국금융지주를 이끌어갈 CEO'를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동반자를 고르려면 일방적으로 한쪽만 좋아해서는 안된다. 매년 채용설명회 현장에서 젊은 친구들과 직접 대화하며 서로를 확인하고 있다."

    그래픽 한국투자증권 고객 예탁 자산 , 한국투자금융지주 당기순이익

    "강인한 뱃사람 개척 정신이 나를 성장시켰다"

    ―장남인데 그룹의 본업(식품)을 왜 맡지 않았나.

    "대학 졸업 무렵 5개월간 명태잡이 배를 타고 북태평양에 나갔었다. 아버지 교육 방침에 따라서였다. 당시 선상(船上)에서 10년 단위로 인생 계획을 세우곤 했는데, 증권업과 금융업 도전을 생각했다. 결정적 계기는 1993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오면서다. 한국 증권시장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 만큼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한투그룹의 모태는 식품·수산물 가공 판매를 주로 하는 동원그룹이다. 1982년 중소형 증권사이던 한신증권을 인수해 동원증권을 세웠고 2005년엔 당시 최대 투신사인 한국투자신탁운용과 한투증권을 사들이며 본격 도약했다. 지난해에는 우리은행 민영화 컨소시엄에 참여해 4% 지분을 확보했다.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지'도 있었나.

    "그렇다. 당시 동원은 원양업계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업으로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가 있었고 이미 큰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동원에 가면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나. 반면 한신증권은 국내에서 막 자리 잡는 단계여서 큰 도전인 동시에 엄청난 기회다'라고 생각했다."

    ―본인 아들에게도 원양어선을 태울 작정인가.

    "아들이 군대 갈 나이가 돼서 아버지(김재철 회장)께 '얘도 배를 태울까요'라고 여쭸더니 '야, 거긴 위험해서 안 된다'며 말리셨다. 아들은 위험한 곳에 보내고, 손자는 안 된다고 하시더라…."

    ―기억에 남는 부친의 가르침은.

    "아버지는 항상 네 가지를 강조하셨다. 첫째, 밑바닥의 애환을 느껴라. 둘째,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가 인생 항해의 나침반이다. 셋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에 맡겨라. 마지막으로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자산은 '고생'이다."

    김 부회장은 "내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아버지"라며 "강인한 뱃사람의 개척 정신을 중요시하는 가풍(家風)이 나를 도전하고 성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들은 어떻게 교육시키나.

    "작년 여름방학 때 경남 창원 소재 식품 가공공장에 내려보내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일을 시켰다. 아들에게 '어떤 일을 하든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기본자세가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가장 기쁜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경영자로서 꿈은 무엇인가.

    "내부 임직원 상대 강의를 할 때마다 '우리가 아시아 최고의 금융회사를 만들고, 후배들에게 세계 최고의 금융회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자'고 강조한다. 아시아 최고, 세계 최고 금융회사가 꿈이자 비전이다."

    ―어떻게 만들 생각인가.

    "해답은 고객의 평가와 반응에 달려 있다고 본다. 우리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때 개인이나 기업이 '저기 가면 성심성의껏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받는다'는 마음이 들도록 최고의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 간 단순 매칭 역할을 뛰어넘어 투자자와 자금 수요자 모두의 니즈(needs·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아시아 최고의 Financial Enabler(금융 조력자)'를 추구해 갈 것이다.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다양한 방식의 투자가 가능하게 하고 이후 위험 관리-투자 집행-사후 관리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 부회장에게 "경영을 맡은 이후 가장 기뻤던 때는 언제였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10~20년 후 한투그룹의 미래가 더 궁금해졌다.


    *이 기사 전문은 4월15일자 조선일보 WEEKLY BIZ에서 볼 수 있습니다. WEELLY BIZ 구독 및 배달 신청은 조선일보 홈페이지 ( https://members.chosun.com/subscription/appendweeklybiz.jsp ) 에서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독자는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무료로 배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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