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ㆍ사회

[공약 虛와實]④ '줬다 뺐는' 누리과정 차등 지급, 보육 대란 해결하고 질 높일 수 있을까

  • 유병훈 기자
  • 입력 : 2017.04.13 10:15 | 수정 : 2017.04.13 10:27

    홍준표, 차등지급으로 ‘보편복지’ 재원문제 해결 기대
    현실적으로 정치적 저항 넘는 것 쉽지않아
    유야고육·보육 통합과 예산 분담 문제가 선결돼야

    누리과정은 3~5세 유아들을 대상으로 국가가 공평한 교육과 보육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시행토록 만든 표준 교육과정으로, 이명박 정부 시기 도입돼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확대적용을 공약한 정책이다.

    누리과정의 재원(財原)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중앙정부는 누리과정을 신설한 이후에도 별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그 재정부담을 각 지방교육청이 기존의 교부금으로 충당케 했다. 현행법상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의 영유아보육법, 유치원은 교육부의 유아교육법에 의해 설치된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누리과정을 적용하면서 기존 보건복지부에서 관할하던 어린이집 무상보육 예산부담을 교부금 증액없이 지방 교육청으로 넘겼다.

    지방 교육청의 예산 부담과 직결되는 누리과정 예산 구조는 동일 액수를 지급하는 보편복지의 성격과 맞물려 지방 교육청의 교육 예산 부족을 야기했다. 이에 따라 각 지방 교육청은 급식비·방과후학교 수강권 등 저소득층 교육비 지원사업의 예산을 감축했다.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전체 지방 교육청 예산이 약 4조7000억원 증액됐음에도, 저소득층 교육비 지원사업 예산은 오히려 약 1600억원 감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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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보편 복지→선별 복지 ‘낮은 보육의 질’ 해결?

    올해 대선에서 매년 어린이집 ‘보육 대란’이 일어나는 누리과정에 대해 차등 지원하자는 공약이 나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지난달 29일 서민복지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현재 일괄적으로 29만원씩 주는 누리과정을 개편해 소득 수준에 따라 5단계로 차등 지원하겠다”며 ‘누리과정 차등지급’ 정책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소득 하위 20% 이하 가정은 현재 지원액의 2배를 주는 대신, 소득 상위 20% 이상 최상위계층은 보육료 지원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일부 지방 교육청은 그동안 부족한 예산을 이유로 소관 기관이 아닌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보육 대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홍 후보의 누리과정 차등 지원 공약이 보편적 복지에서 선별적 복지로 바뀌면서 이러한 어린이집을 둘러싼 예산 갈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전문가들은 누리과정을 보편적 복지로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는 방식이 오히려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방 교육청들이 누리과정으로 보육 예산이 부족하면서 보육 교사 처우 등 교육 사업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에 따라 누리과정이 차등 지급으로 바뀔 경우 해당 대상은 좁아지지만, 보육의 질은 더 높아지는 면은 있다고 평가한다. 누리과정 차등 지원이 전체 보육의 질을 생각하면 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상훈 의원은 “현재의 누리과정대로라면 보육교사들의 처우개선이나 저소득층 추가지원 문제를 재정상 해결하기 어렵다”며 “자가 부담이 가능한 가구는 자가부담시켜, 거기서 나오는 재원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체 어린이집 중 민간 어린이집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누리과정 예산이 과도하게 민간 보육 기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유·보정책연구팀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국공립 어린이집이 적어 사립·민간 어린이집 이용률이 70% 가까이 된다”며 “누리과정 예산액이 민간 보육기관으로 거의 다 흘러 들어가는게 옳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팀장은 “보육료는 어려운 아이들에게 (정부가) 조금 더 보전하는 것이 오히려 더 공정하다”면서도 “홍 후보의 공약처럼 고소득 계층에 대한 지급액을 없애고 저소득 계층에 대한 지급액을 늘리기보다는, 현재 지급하고 있는 액수는 기본적으로 지급하되 추후 증액분을 소득이나 자녀수를 고려해 차등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줬다 뺐는다” 저항 가능성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누리과정 차등지급 공약이 현실화되긴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어떤 복지든지 대상을 줄이는 것은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줬다 뺐는다’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커 실행하기 쉽지 않다. 이미 보편적 누리과정의 수혜를 입고 있는 3~5세 영·유아 학부모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이 팀장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출산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줄이는 것은 명분이 없다”면서 “차등 지급을 실현하려면 꼭 금전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국·공립 유치원 우선 배정권과 같은 인센티브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 역시 “(누리과정 차등 지급으로 피해를 볼) 고소득 가정의 경우, 추가적 재원으로 더 나은 보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반발이 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보육을 부담하는 가정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조사해 타당성을 검증한 후 시행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밝혔다.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 기조로 변화해가는 시대 흐름에 반(反)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와 교육 전반에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는 추세에 차등 지원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도종환 의원은 “국가가 의무교육을 확대하기 위한 추세에서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에 포함하겠다는 공약까지 나왔는데, 3~5세 아동도 점차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는게 맞다면서 “국가 책임의 관점에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고민해야지, 어린이들을 소득에 따라 차등지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매 해 되풀이 ‘보육 대란’ 해결책 될까

    누리과정 차등지급 공약이 고질적인 누리과정의 재원 문제 갈등에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누리과정을 차등 지급할 경우 지방 교육청이 예전보다 여유가 생긴 돈으로 편성을 거부했던 어린이집에도 예산을 배정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근본적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소관 기관 문제를 정리하는 ‘유보 통합’이 필요하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예산 편성 갈등이 풀려야지만 해결이 가능하다. 누리과정 차등 지급은 예산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순 없다.

    염동열 교문위 자유한국당 간사는 “(누리과정) 차등 지급으로 재원에 유연성이 생길 것”이라면서도 “누리과정의 재원 문제는 정치권의 합의가 없으면 해결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차등지급 공약은 재원 문제를 해결하려고 제시한 것이 아니고, 복지 차등화를 고려해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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