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ㆍ사회

[공약 虛와實]③ 500개 도시재생사업에 50조 투입해 과수요 논란..."템포 늦춰라" 주문 쏟아져

  • 박정엽 기자
  • 입력 : 2017.04.12 09:59

    文, 재생신청한 473개 지역 근거로 '500개' 목표…"수요 분명해야" 지적
    'LH+사회적기업' 구상에 "주민들이 주도해야" 조언도
    전문가들 "1~2년이 아닌 수십년짜리 사업"...국토부도 사업기간 늘려잡아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주인공인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 분)과 써니(유인나 분)가 살았던 2층집과 그 앞 골목. 이곳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다. 도시재생(都市再生)이라는 낯선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동네를 가봐야 한다. 창신동 일대는 2013년 가을 재정비촉진지구 지정이 해제된 직후엔 금방이라도 집들이 무너질 것 같은 열악한 곳이었다.

    사진=서울시 도시재생본부 페이스북
    사진=서울시 도시재생본부 페이스북
    그러나 지난 2014년 정부가 '도시재생 선도사업' 대상지역으로 지정해 지원을 시작하면서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정부와 서울시는 창신동과 숭인동 일대의 봉제산업을 특화하고 한양성곽과 백남준 생가 등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자원을 개발했다. 낡은 주민공동이용시설은 손보고 집수리 사업도 지원하는 등 주거환경도 바꿨다.

    도시재생이란 산업구조 변화 등에 따라 쇠퇴한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흥시키는 사업을 말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역점을 둬 추진하면서 유명해진 서울역 고가 개발은 규모가 큰 도시재생 사업의 대표적 사례다.

    ◆ 문재인 "정부 도시재생 사업은 생색내기"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바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하겠다. 매년 10조원 대의 공적재원을 투입해 매년 100개 동네씩, 임기 내에 500개의 구도심과 노후주거지를 살려내겠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9일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약을 발표하면서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그는 현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에 대해서는 “그 동안 도시재생사업에는 연간 1500억 원 정도가 투입됐다”며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문 후보의 도시재생 공약은 뉴타운·재개발사업이 중단된 구도심을 중심으로 아파트단지 수준의 마을주차장·어린이집·무인택배센터 등을 지원하고, '미니 재건축'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4~5채의 노후주택을 매입해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그 위에 복지시설이나 유치원 등을 입주시키겠다는 청사진도 그렸다.

    이를 위해 연간 1500억원 규모의 도시재생사업 예산을 2조원대로 늘리고, 주택도시기금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사업비까지 묶어 10조원의 재원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박원순 시장이 작은 규모로 시작했던 지방정부 사업을 중앙정부의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확장하겠다는 의도다.

    낙후한 도심을 껴안고 고민하던 지방자치단체는 문 후보의 공약을 반기고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대형 건설사의 택지개발과 팽창보다는 지역의 건설업체를 통해 주거와 구도심에 집중하고 도시재생의 과정을 밟는 것이 도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도시재생 뉴딜사업 정책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도시재생 뉴딜사업 정책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한 지역당 예산, 현정부 "100억~500억" 대 문재인 "평균 200억"

    그러나 도시재생 사업 대상 지역 한 곳에 들어가는 예산을 놓고 보면 현 정부와 문 후보 공약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도시재생 선도사업은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됐는데, 한 지역당 국비와 지방비를 5대 5('근린재생-소규모'의 경우 6대 4)로 매칭하는 방식으로 13개 지역에 4년간 총 27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1개 지역을 기준으로 하면 4년간 100억~500억원의 예산이 지원됐다. 문 후보는 500개 지역에 5년간 재정 10조원 공적재원 50조원을 지원한다고 공약했다. 재정만 놓고 보면 한 지역당 평균 200억원이 투입된다. '13개'냐 '500개'냐 하는 집행 지역의 범위의 차이가 '착시 효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사업 당 소요되는 재원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개발효과 자체는 크지 않다는 의미다.

    문 후보측은 주택도시기금, LH·SH의 사업비 등으로 매년 8조원씩 총 40조원을 더 확보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미 LH의 부채는 80조원, SH의 부채는 16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또 현 정부가 지난해 4월 2차 도시재생사업 지역 33개를 추가 지정하면서 전체 사업 대상 지역도 46개로 늘었다. 반면 문 후보측이 제시한 500개 지역도 사실상 대형 재개발 사업에 가까운 '경제기반형',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을 신청한 지역을 제외하면, '일반형' 도시재생을 신청한 '낙후거주지역'은 300여개로 줄어든다.

    정부는 이밖에도 2011년부터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도활)'이라고 부르는 소규모 도시재생사업도 진행하고 있고, '달동네'로 불리는 낙후주거지역을 대상으로 주거취약지역개조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도시재생 사업 예산이 500억원, '도활' 사업 예산은 950억원이었다. 도시재생은 아니지만, 주거취약지역 개조사업(새뜰마을 사업)주택개량, 소방도로 및 하수관 등 기반 시설을 정비하기 위해 300억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됐다.

    ◆ 전문가들 "도시재생 20~30년해도 성과 몇 개 안된다"

    문 후보의 도시재생 공약이 현 정부와 가장 차이나는 부분은 사업 대상 지역이 대폭 확대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5년간 500개 지역이라는 문 후보의 공약이 다소 성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에서 도시재생에 대한 고민이 이제 막 시작된 마당에, 시기와 규모를 못박을 필요가 있았냐는 주장이다. 500개 지역이라고 못박은 것이 실제 수요에 기반하지 않은 과잉공급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재생'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4~2005년 쯤이다. 도시재생특별법은 2013년 6월에 만들어졌다. 국토교통부가 시범사업격으로 2014년부터 시작한 '도시재생 선도사업'도 올해가 지나야 끝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1~2년 사이에 되는 사업이 아니고 몇십년이 걸리는 사업이다. 세계적으로 20~30년동안 하는 나라들도 성과는 몇 개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사업부터 평가해야 한다"며 "실적내기에 치중하면 예산을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 "한 템포 늦추고 점검하면서 맞춤형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며 "밀어부치기식으로는 도시재생의 특성이 사업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 조 교수는 "지금 서울시도 도시재생사업을 급하게 동시다발로 추진하다 보니 하위계획에 상위계획을 맞추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전했다.

    국토부도 지난해 시작한 2차 도시재생사업 기간을 선도사업(1차)보다 1~2년 정도 늘려잡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처음하는 사업인데다가 원도시에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신도시와 달리 지자체 의견수렴, 토지나 건물에 대한 매입 및 보상 문제 등 이해관계가 얽혀 4년이 짧아 기간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측은 "1년안에 100개 지역을 끝내겠다는 것이 아니고, 어렴풋하게 정한 상태에서 진전을 이루겠다는 정책의지를 목표로 나타낸 것"이라며 "공공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고 모델만 개발하며 시간만 끌어도 안되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약을 주도하고 있는 김수현 특보(전 서울연구원장, 왼쪽)와 홍종학 정책본부 부본부장(오른쪽)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약을 주도하고 있는 김수현 특보(전 서울연구원장, 왼쪽)와 홍종학 정책본부 부본부장(오른쪽) / 사진=연합뉴스
    ◆ "도시재생, 주민들이 주도 안하면 집고쳐주기 사업일 뿐"

    문 후보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할 주체도 논란거리다.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업의 전제 조건이 이해당사자간의 합의와 소통인데,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상황이 되면 주민들의 참여 폭이 좁아진다"며 우려하고 있다.

    반면 문 후보측은 SH, LH 같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가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SH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이 문 후보측 공약에 많이 반영됐다. 문 후보측은 공공기관과 사회적기업과 중소건설업체를 결합시켜 사업을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조명래 교수는 "수요가 분명하고 맞춤형으로 가야 획일적 사업이 안된다. 그러면서 500개 지역을 동시에 진행하려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LH에게 노하우가 있다고 해도 LH가 주도하면 종전의 주거지 조성 방식과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도시재생은 주민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김승수 시장은 "도시재생은 건물을 복원하는 것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회가 갖고 있던 자산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살려내고 지속 가능하게 환경과 건축을 배치해야 한다"며 "긴 호흡으로 공동체를 살리며 주민이 주도하는 방향이 아니면 단순히 집고쳐주기 사업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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