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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현장에서] 반부패 영웅 부패 호랑이로...드라마보다 극적인 현실

  •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 입력 : 2017.04.11 13:40 | 수정 : 2017.04.11 14:06

    철혈 보험감독 수장 기율위반 낙마...차기지도자 후보서 무기수 전락 보시라이 닮은 꼴
    ‘인민의 이름으로’ 부패드라마 인기 폭발∙동명 소설 품절...금융 부패커넥션 척결 속도

    ‘톄완(鐵腕)’ 무쇠팔을 뜻하는 이 단어는 중국 보험감독관리위원회의 샹쥔보((項俊波∙60) 주석(장관)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한국의 감사원격인 심계서(審計署)에서 10여년 재직하면서 조폭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한치의 부패도 용인하지 않았다 해서 붙었다. 중국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으로 다리 부상를 입은 그의 용맹함도 작용한 듯하다.

    그런 그가 지난 9일 낙마했다. 중국 공산당 기율위원회 사이트에 샹 주석이 엄중한 기율위반으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는 짤막한 글이 올라온 것이다. 2월 중화권 매체 밍징(明鏡)을 통해 낙마설이 흘러나왔지만 이후 기자회견에 등장해 건재를 과시했던 반부패 영웅이 부패 호랑이로 전락한 순간이다.

    반부패 영웅에서 부패혐의로 낙마한 샹쥔보 보험감독관리위원회 주석(왼쪽)과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협객도, 바이두
    반부패 영웅에서 부패혐의로 낙마한 샹쥔보 보험감독관리위원회 주석(왼쪽)과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협객도, 바이두
    그의 몰락은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며 조폭 거물을 대거 잡아들여 일약 인민의 영웅으로 떠올라 차기 지도자 후보군에 들었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가 5년 전 부패혐의로 낙마해 무기수로 전락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인민대에서 재정학을 공부하고 베이징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샹 주석은 문학을 좋아해 1984년부터 소설 드라마 영화 시나리오를 써왔다. 2005년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한 그의 작품은 회계부정과 부정부패를 다룬 내용이 많았다. 1986~1987년 방영된 반부패 드라마 ‘인민은 잊을 수 없다’의 시나리오도 썼다.

    30년 뒤인 올 3월28일 후난TV에서 방영을 시작한 반부패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人民的名義)' ’에서 반부패 영웅이 부패의 길로 가는 인물들처럼 샹 주석의 낙마가 인민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글도 인터넷에 돈다. 55부작인 ‘인민의 이름으로’는 16편까지 나온 7일 기준으로 인터넷을 통해 시청한 횟수가 16억2000만회에 이르고 시청률이 2%를 넘어설만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후난TV와 아이치이 등 동영상플랫폼에서 방영중인 반부패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아이치이
    후난TV와 아이치이 등 동영상플랫폼에서 방영중인 반부패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아이치이
    “네티즌의 60%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고 본다”(신징바오∙新京報)는 지적의 울림이 크다. 이 드라마 시나리오를 쓴 저우메이션(周梅森)이 쓴 같은 이름의 소설도 품절될 정도로 인기라고 중국 언론들은 전한다.

    샹의 낙마가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도 비치는 보시라이의 몰락과는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기율위는 샹의 낙마를 공식화한 9일 중국수출입은행 전 베이징분행장 리창쥔(李昌軍)의 조사 사실도 공개했다. 또 이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3월21일 국무원 제5차 염정(廉政)공작회의에서 한 연설 전문을 공개했다.

    신징바오 등 중국언론들은 금융계 인사들의 낙마사실과 “감독당국자와 금융악어간 결탁 등 불법행위를 법에 의거해 엄격히 처리해 일벌백계 해야한다”는 리 총리의 연설 대목을 들며 금융 반부패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악어는 조지 소로스 같은 공격적이고 투기적인 투자자를 중국에서 일컫는 말이다.

    2월 기자회견에서 “보험산업이 금융악어들의 군자금 용도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샹 주석이 금융악어와의 결탁의혹을 받게 된 건 아이러니다.

    [베이징 현장에서] 반부패 영웅 부패 호랑이로...드라마보다 극적인 현실
    시진핑(習近平) 정부는 2013년 출범 이후 반부패 운동과 함께 금융 부패 커넥션 척결에도 속도를 내왔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부주석(차관)과 중국 최대 증권사인 중신증권 최고경영자 등이 잇따라 낙마한 게 대표적이다. 중앙기율위는 3월 기구 개편을 통해 제4감찰실이 금융기구를 담당하도록 했다.

    인민일보의 SNS 매체 협객도(俠客島)는 중국 당국이 내세우는 부채축소와 금융리스크 방지를 위해서는 금융의 반부패가 깊숙한 곳에까지 진행돼야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샹의 낙마로 부각된 중국 금융계에 대한 반부패 폭풍 역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반부패 운동의 야전사령관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위 서기가 주룽지(朱鎔基) 사단으로 통하는 중국 금융계 최대 인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동명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반부패 소설 ‘인민의 이름으로’(왼쪽)와 미국의 권력암투를 그린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 /바이두
    중국에서 동명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반부패 소설 ‘인민의 이름으로’(왼쪽)와 미국의 권력암투를 그린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 /바이두
    ‘인민의 이름으로’ 감독 리루(李路)는 6일 선전완바오(深圳晩報)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하우스오브카드’는 없다. 우리는 반부패 정의다”라고 말했다. 시 주석이 2015년 9월 미국 방문 때 “‘호랑이와 파리(부패 고위관리와 하위 관리)’를 지속적으로 단속해 인민의 요구에 순응했다. 여기에는 어떠한 권력투쟁도 없으며 ‘하우스오브카드’도 없다”고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하우스오브카드는 권력암투를 그린 미국 드라마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올 가을 새 지도부 재편을 앞둔 중국에서 반부패 영웅이 부패 호랑이로 전락하는, 드라마보다 극적인 현실 드라마가 계속 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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