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핫이슈분석] '이태백’ 그 후 10년…오늘도 PC방으로 출근하는 30대들

  • 조귀동 기자

  • 이우재 인턴기자

  • 안재민 인턴기자
  • 입력 : 2017.04.03 06:07

    질 낮은 일자리→노동시장 이탈·미숙련 장기화→ ‘백수’의 평생직업화
    ‘30대 니트’ 몇 명인지 파악도 안돼…사실상 사각지대


    [핫이슈분석] '이태백’ 그 후 10년…오늘도 PC방으로 출근하는 30대들

    광주광역시 용봉동 전남대 앞 한 PC방. 오후 3시 경이 되자 35세 남성 이 모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씨는 평일 오전 이 시간이 되면 PC방을 찾는다. 175㎝ 정도 키에 마른 체형, 하얀 얼굴에 깔끔한 복장이다. 다른 사람들이 한창 퇴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는 온라인 게임으로 ‘출근’한다. 매월 게임 아이템을 팔아 얻는 30만원 내외 수익으로 게임비를 충당한다. 그외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이나 이따금 하는 아르바이트로 나머지 생활비를 해결한다. 이씨가 이렇게 매일 PC방을 찾은 지는 6년째. 한 지방대 공대를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28세에 취직한 군산의 한 중소기업 관리직을 몇 달만에 그만두면서다. “그나마 생활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일정한 시간에 PC방에 들린다”고 이씨는 말했다.

    처음에는 구직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1년 정도 지나자 그 마저도 시들해졌다. “월 150만원 정도 주는 데다 이후 수입이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는 단순 계약직 일자리 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같이 PC방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 일자리를 얻으며 떠나면서 불안감도 들지만 이 생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하지만 요즘 친구들이 만나는 자리에도 얼굴 비추는 일이 드물다.

    청년 일자리 부족 현상이 본격적인 사회 문제가 된 지 10년이 넘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2003년을 기준으로 하면 14년 정도다.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신규 고용, 특히 대기업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질 높은 일자리’가 빠르게 줄면서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뿐만 아니라 아예 일자리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추가적인 교육도 회피하는 ‘유휴인력’이 대규모로 나타났다. 이른바 ‘니트족(NEET族·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등장이다. 29세까지의 청년 니트족은 2014년말 이미 163만명(현대경제연구원 추계)이 넘었다. 이들 중 다수는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데 계속 실패해, 결국 30대에도 유휴인력으로 남게 됐다. 이른바 ‘30대 니트족’이다.

    30대 유휴인력은 일을 안 한지 몇 년이 지나 노동시장으로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청년 니트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을 지 몰라도, 질적인 측면에서 청년 실업보다 더 해결이 난망한 악성 문제라는 얘기다. 현재 심각한 청년 일자리 문제가 결국 몇 년 뒤 30대 유휴인력을 대거 양산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제기된다.

    ◆30대 초반 실업률 4.1%라지만…‘니트’ 추정 인구 가파른 증가세


    [핫이슈분석] '이태백’ 그 후 10년…오늘도 PC방으로 출근하는 30대들

    고용 관련 통계만 놓고 볼 경우 30대의 일자리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지난해 30~34세 실업률은 4.1%, 35~39세 실업률은 2.5%에 불과하다. 25~29세 남성 실업률은 10.9%다. 20대에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지만, 어찌됐건 30대가 되면서 ‘눈 높이를 낮춰’ 일자리를 찾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숫자다. 이 때문에 30대 이상 니트 문제는 지금까지 거의 거론되지 못했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니트 등 유휴인력 문제가 30대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데에 공감대를 표시하고 있다.

    30대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을 살펴보면 30대 이상 유휴 인력 증가를 간접적으로 확인가능하다. 경제·사회 여건 변화로 일하는 30대 여성이 늘었다는 점을 감안, 남성만 살펴보는 것이다. 30대 초반 남성의 실업률은 2000년(4.4%)과 2016년(4.1%)이 별 차이 없다. 2010년 4.8%까지 올랐다가 2014년 3.3%로 하락한 뒤 다시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경제활동참가율은 이 기간 동안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00년에만해도 4.5%로 실업률과 거의 같았던 비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해 7.9%로 껑충 뛰었다. 30대 남성이 학업, 가사, 질병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만큼 하락 가운데 상당수가 ‘유휴 인력의 증가’로 볼 수 있다.

    2013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우리나라 ‘캥거루족(族)’ 규모 및 현황’는 2010년 현재 30~44세 인구 가운데 부모에 얹혀사는 ‘캥거루족’은 43만명 정도이고, 그 가운데 82.3%인 35만4000명이 니트족이라고 추산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고용정보원과 고용노동부는 2010년 한국노동패널 조사 자료와 당해 인구 센서스 자료를 근거로 니트족 숫자를 추정했다. 해당 연령대에 따로 거주하는 ‘비(非)캥거루족’은 98.1%가 전일제 근무 형태를 하는 등 경제적으로 독립된 양상을 보였다. 결국 30대 이상 유휴인력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면서, 사회 문제보다 가족의 문제라는 형태로 숨겨져 있다는 얘기다.

    이들 니트족 가운데 96.7%는 1년 전 조사 이후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96.9%는 직업훈련을 받은 적도 없었다. 니트인 사람이 마지막 일자리 이후 쉰 기간은 평균 78.1개월(6년 6개월)에 달했다. 사실상 일자리를 구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30대 이상 니트 가운데 5분의 4는 일자리 경험은 있었지만 그만두었다. 하지만 나머지 5분의 1은 지금까지 일자리 경험이 단 한번도 없었다. 가장 최근 일자리에서 퇴사한 이유는 ‘임금 등 근로 조건이 맞지 않아(50.7%)’, ‘폐업, 기간만료 등 비자발적 요인(19.1%)’, ‘건강 상의 이유(17.6%)’ 순이었다. 부모들의 평균 월 임금은 137만원, 평균 연령은 65세였다. 독립한 비캥거루족 부모들의 월 평균 임금(223만원)의 61%에 불과했다.


    [핫이슈분석] '이태백’ 그 후 10년…오늘도 PC방으로 출근하는 30대들

    ◆日, 30~40대가 된 니트 때문에 골머리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층(15~29세) 가운데 니트족의 비율은 18.0%(2013년 기준)에 달했다. 터키(24.9%), 멕시코(18.5%)에 이어 OECD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다. OECD는 “한국 청년 노동시장은 비정규직 근로자와 니트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2012년 이후 청년실업률도 증가세”라고 설명했다. 청년 니트들의 노동시장 진입도 여의치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니트족 가운데 42.9%는 미취업 기간이 1년 이상인 장기 니트족인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에 실패했거나, 취업에 성공했어도 ‘질 나쁜 일자리’를 경험하게 되면서 구직을 포기하거나 하면서 취업 자체에 관심을 잃게 된 것”이라고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설명했다. “결국 이 들 중 상당수는 30대에도 니트로 남아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김 연구원은 내다봤다.

    이 때문에 30대 이상 유휴인력들이 앞으로도 계속 부모의 지원이나 사회부조 등이 없으면 생활이 어려운 상태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보면 2005년 19~34세 청년층이 10년 뒤인 2015년 29~44세가 돼도 빈곤율이 크게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데다 노동시장에 진입해도 불안정한 일자리 밖에 없기 때문에 빈곤의 지속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게 김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이미 20대에 근로 경험이 없거나, 질 낮은 일자리 밖에 얻지 못했던 30대 이상 유휴인력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할 수 밖에 없다.

    [핫이슈분석] '이태백’ 그 후 10년…오늘도 PC방으로 출근하는 30대들


    한국보다 10년 정도 빨리 니트족이 등장했던 일본의 경우 한창 일할 30~40대 가운데 생활 보호 수급자 비율이 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후생노동생에 따르면 65세 이하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생활보호수급자는 2016년 2월 현재 27만 가구로 전체 수급자의 17%다. 니혼게이자이는 “90년대 후반 취업 빙하기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히키코모리(집 안에만 처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가 된 사람들이 이제 30대 후반~40대가 된 것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들과 함께 사는 부모들이 죽으면서 생활 보호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온 것”이라고 게 니혼게이자이는 설명했다. 2001년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생활보호수급자는 7%(5만명)에 불과했다. 지난해부터 후생노동성은 30~40대 유휴 인력을 대상으로 농촌 단기 취업이나 기업과 연계한 일자리 체험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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