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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정치 경멸하면 우리가 경멸받게 될 것" 전직 대통령 12명 추적한 작가 강준식

  • 김지수 문화부장
  • 입력 : 2017.04.01 07:00 | 수정 : 2017.04.03 08:16

    정치는 과학이 아닌 인간사…아들과 아버지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
    물줄기를 만들거나 바꾼 역대 대통령은 3.5인…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정치 수련 없이 대통령 나오면 국민이 비극… 정치는 말로 하는 전쟁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나, 무엇을 하고 싶은가?” 두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내각제 개헌하면 3백 명이 해먹을 수도, 중임제는 장기 집권 욕망 우려돼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강준식. ‘대한민국의 대통령들'로 이승만부터 박근헤까지, 대한민국 권력의 역사를 훑었다.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강준식은 유신 말기와 5공 중반까지 ‘시카고 동아일보’ ‘뉴욕 동아일보’ ‘뉴욕 조선일보’ 등에서 편집국장과 논설주간 등을 지냈다./사진=김지호 기자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강준식. ‘대한민국의 대통령들'로 이승만부터 박근헤까지, 대한민국 권력의 역사를 훑었다.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강준식은 유신 말기와 5공 중반까지 ‘시카고 동아일보’ ‘뉴욕 동아일보’ ‘뉴욕 조선일보’ 등에서 편집국장과 논설주간 등을 지냈다./사진=김지호 기자
    옛날의 중국의 황제는 자신을 짐이라 칭했다. 이는 자신의 희로애락에 따라 천하의 기류가 바뀔 수밖에 없는 ‘조짐'의 주체라는 뜻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한국의 대통령 또한 짐에 못지않은 제왕적 존재다.

    둘만 모이면 연예인 얘기를 하던 사람들이 이젠 둘만 모이면 정치 얘기다. 청와대를 떠난 전직 대통령과 앞으로 청와대에 들어가게 될 대통령 후보에 관한 이야기다.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 이슈가 모든 뉴스를 빨아들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 정국 이후 외신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젊다'라는 말로 대통령을 둘러싼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지만, 유교적 전통 속에 대통령이 ‘주군'이라는 정서도 여전하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최고 권력자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나?

    “1950년대 정치를 폴리티컬 사이언스라고 해서 공학이나 과학으로 설명했지만, 정치는 과학이 아닙니다. 엄연히 인간사입니다. 인간사는 얽혀 있지요. 얽혀있는 인간사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에서 물러난 사람도, 대통령이 될 사람도, 대통령을 뽑을 사람도 대통령을 당대가 아닌 역사의 관점에서 멀리 봐야 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할 때,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이라는 책을 낸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강준식을 만났다.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12명 대통령의 전 생애를 깊게 살피고 포용한 사람답게 겸손하고 맑은 인상이었다.

    강준식은 서울대 문리대, 미국 일리노이대, 플로리다테크대(FTU), 연세대 연신원 등에서 문학, 정치학, 경제학, 신학 등을 공부했다.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유신 말기와 5공 중반까지 ‘시카고 동아일보’ ‘뉴욕 동아일보’ ‘뉴욕 조선일보’ 등에서 편집국장과 논설주간 등을 지냈으며, 한때는 정치권과 공기업 등에 몸담기도 했다.

    풍부한 사료와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그가 펴낸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는 한국 정치사에 등장한 12명 권력자의 정사와 야사가 12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왕손의식이 강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지휘에 능란한 군인 대통령, 민주화 투사 대통령, CEO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이하 호칭 생략) 70년 현대사와 함께 각 개인의 인간사가 가히 파란만장하다.

    -총리까지 포함해서 최고 권력자 12명의 바이오그래피를 기록했습니다. ‘누구나 대통령을 알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모른다'라는 카피가 인상적이더군요.

    “중립적인 시각에서 권력자의 일생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오르고 통치를 펼치기까지, 그들이 했던 말과 행동, 정책의 결과가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는지 객관적으로 보여줄 필요를 느꼈지요. 역사의 학습 효과가 없으면 대통령의 비극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권력은 어떻게 탄생하고 유지되며 몰락하는가? 그들을 권력의 정점으로 이끈 정치력의 요체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 나온 인물들. 왼쪽부터 정부 수립의 공을 세웠지만 하와이로 망명간 이승만, 민주정체를 빼앗긴 민주적인 장면, 쿠데타를 시인함으로써 군사 정부의 길을 터준 윤보선, 경제개발을 일으켰지만 부하에게 피살되는 비운을 맞은 박정희(이하 전 대통령 호칭 생략)./일러스트 제공=김영사
    권력은 어떻게 탄생하고 유지되며 몰락하는가? 그들을 권력의 정점으로 이끈 정치력의 요체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 나온 인물들. 왼쪽부터 정부 수립의 공을 세웠지만 하와이로 망명간 이승만, 민주정체를 빼앗긴 민주적인 장면, 쿠데타를 시인함으로써 군사 정부의 길을 터준 윤보선, 경제개발을 일으켰지만 부하에게 피살되는 비운을 맞은 박정희(이하 전 대통령 호칭 생략)./일러스트 제공=김영사
    -역대 권력자들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오가 있었지만, 시대적 역할도 분명했다는 관점이지요.

    “보수나 진보의 진영 논리에 갇히는 것을 가장 경계했어요. 가령 장면 내각제를 겪지 않았다면 대통령제가 확립될 수 있었을까요?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경제개발이 가능했을까요? 전두환이 아니었다면 격렬한 민주화 운동권이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한 시대의 변화와 진통이 다른 시대를 여는 문고리가 되었음을 지적하는 그의 논리는 다른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노태우가 아니었다면 민간 정부의 등장에 군부의 거부반응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까? 김영삼이 아니었다면 하나회를 제거할 수 있었을까? 김대중이 아니었다면 남북한 화해무드를 느껴볼 수 있었을까?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권위주의를 타파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이명박이 아니었다면 경제인 출신 대통령으로 인해 경제 불안정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박근혜가 아니었다면 가문 정치의 위험을 체감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다.

    “국민은 시대마다 각 대통령을 경험하면서 다른 대안을 선택해가는 거지요.”

    -정치 지도자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정치는 목표를 향해 똑바로 가도록 때리는 회초리입니다. 현대의 정치지도자들은 여러 길 중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한국 정치사에서 그 몫을 했다고 보는 대통령은 누구입니까?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거나 바꾸거나 했던 점에서 주목할만한 지도자는 3.5명입니다. 해방 당시에 여러 길이 있었고, 사회주의도 인기를 끌었어요. 정치적 욕심이든 어떤 의도였든지 간에 자유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국제 사회에서 정부 수립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승만이 리더의 역할을 했다고 봐요. 그다음은 먹고 사는 문제지요. 정치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있지만, 총체적으로 한 국가를 대외지향적인 수출입국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박정희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당시에 대내지향적인 자립 경제로 후퇴한 게 북한이었거든요.”

    -원론적이긴 하지만, 안보와 경제라는 관점에서 두 대통령이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었다고 보시는군요. 나머지는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백성을 지켜내고, 먹여 살리는 거로 물줄기를 만들었다면, 그다음은 물줄기를 어떻게 바꾸었느냐예요. 안보는 해방 이후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공존의 가능성을 연 사람이 김대중입니다. 이렇게 3명이고, 노무현은 절반의 성공이지만, 탈권위주의의 물꼬를 텄다고 봅니다. 그 선택이 반드시 옳았냐, 능력이 우수했느냐 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개인의 이해관계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큰 결단을 내렸다고, 저는 보는 거죠.”

    서울의 봄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진 최규하, 안전장치로 세운 친구에 의해 백담사로 유배된 권위주의적인 전두환, 거대 공사를 일으켰으나 정경유착으로 투옥된 노태우, 신한국을 창조하려 했지만 IMF 환란을 맞은 김영삼./일러스트 제공=김영사
    서울의 봄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진 최규하, 안전장치로 세운 친구에 의해 백담사로 유배된 권위주의적인 전두환, 거대 공사를 일으켰으나 정경유착으로 투옥된 노태우, 신한국을 창조하려 했지만 IMF 환란을 맞은 김영삼./일러스트 제공=김영사
    -그런 면에서 요즘의 정치인들은 역사의 큰 물줄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대의보다는 당장 대세를 따르니 세속화되었다고나 할까요. 국민들은 정치가 더 왜소해지고 품격이 떨어진다고 있다고 느낍니다.

    “한마디로 조악하지요. 그래도 옛날 정치인들은 이른바 낭만이 있었어요. 이승만도 한문에 조예가 깊었지요. 과거시험 여덟 번 떨어지면서 익힌 게 많아요. 그 과정에서 정치를 넓고 포에틱(poetic)하게 보는 태도가 형성됐어요.”

    -포에틱하다니요?

    “조조도 전쟁을 하고 나서 시를 읊었어요. 전쟁은 정치의 또 다른 면인데, 모택동도 한시를 사랑했거든요. 우리나라만 해도 해방 직후의 정치인들은 ‘모던보이'의 멋 같은 게 있어요. 김영삼 김대중 이후로 그런 전통이 끊겼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정치 수련의 과정이 생략돼서입니다. 정치하는 어른 밑에 들어가서 보고 배우는 수업 기간이 없어서죠. 검사를 하다가 기자를 하다가 공천받고 바로 정치판에 들어오죠. 정치 훈련 과정이 없는 초짜들이 거물처럼 행동하잖아요.”

    -정치가 얕아지면서 떨어진 게 또 ‘말의 품격’이 아닌가 합니다. 당장의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서겠지요?

    “막말 정치도 문제지만, 수련 과정이 없는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대표적인 실수가 용인술, 즉 인사예요. 군인 정치가들은 역설적으로 인사를 잘했어요. 육군 장교에서 고위직까지 가면서 여러 인물을 픽업하고 배신도 당하면서 사람 보는 눈이 길러지는 거죠. 양 김도 정당 인선을 하면서 실패를 통해 배운 게 큽니다. 박근혜는 2000년에 정계에 나와 2004년에 당총재를 했지만,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상징적인 역할에만 머물렀다는 게 문제였지요. 용인술을 못 배웠어요.”

    -말을 배우고 사람을 쓰는, 한마디로 한 나라의 경영자가 되기 위한 기초적인 준비를 다들 안 한다는 건데요.

    “그렇죠. 역설적이지만 대통령이 되기 전에 먼저 대통령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5천만이 피해를 입어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은 대권의 욕심이 강했던 만큼 그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이승만은 구국 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혀 사형수틀을 쓰고서도 언제 쓰일지 모른다며 영어를 공부했어요. 김대중은 학벌이 약하고 발음은 좋지 않았지만, 미국 기자들의 질문에 준비 없이 답할 수 있었지요.”

    햇별 정책을 폈지만 그 정당성이 부정당하는 곤욕을 치룬 김대중, 서민들의 꿈이었으나 퇴임 후 자살한 노무현, “내가 해봐서 아는데
    햇별 정책을 폈지만 그 정당성이 부정당하는 곤욕을 치룬 김대중, 서민들의 꿈이었으나 퇴임 후 자살한 노무현,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유명한 상인 대통령 이명박,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했으나 탄핵된 박근혜. 그러나 우리가 뽑은 지도자를 실패의 카테고리에 밀어넣지 말고 이제는 그 공도 부각시켜 보아야 할 때다./일러스트 제공=김영사
    -그분들은 ‘대통령병'이라고 조롱받을 만큼 개인의 욕구도 크지 않았습니까? 서재필 박사는 이승만을 가리켜 한평생 독립운동이 아니라 대통령 운동을 한 사람이라고 했다지요. 어쨌든 대운도 있어야겠지만, 권력에의 욕구가 강해야 대통령이 된다는 게 양날의 칼같습니다.

    “대권의 욕망은 중요해요. 김영삼도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이 없었던 중학교 시절부터 책상에 ‘내 꿈은 대통령'이라고 써 붙여 놓았거든요. 미래의 왕이 될 거라는 자기 확신이지요. 자기가 꿈을 꾸지 놓아버리면 그걸 심어주는 사람은 없어요. 반기문을 보세요. 보름 만에 나가떨어졌잖아요. 모욕을 견딜 정도로 욕망이 강하지 않았던 거예요. 김대중도 얼마나 안티가 많았고 공격이 많았습니까. 그걸 이겨낸 거죠.”

    -대권의 욕망이 그토록 중요한 거라면 그 욕망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되겠군요.

    “그렇지요. ‘나는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두 가지를 강하게 물어야 해요. 이 본질에서 정직한 답이 나와요. 파고들면 결국 자기가 잘 먹고 잘살고 싶어서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공부를 안 하죠. 선대 대통령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했어요. 장면도 회의 때도 파상 질문에 즉흥적으로 답을 했습니다. 준비가 돼 있었던 거지요. 최근에 보면 이명박도 박근혜도 TV토론에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합니다.

    그는 정치는 말로 하는 전쟁이라고 했다.

    “오바마가 사랑받는 이유도 연설 능력이거든요. 메시지를 던지는 거예요. 무대 위의 연극배우처럼. 그 시대가 원하는 대사를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 내는 거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구한말 연설을 들어봐도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그 암울한 시대에도 도산 선생은 항상 두 가지를 말했어요. 우리 국민은 참 위대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가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대통령 개인의 역사가 한 편의 동영상처럼 차르르 펼쳐지도록 각 페이지마다 무빙 트랙을 깔려고 노력했다고 한다./사진=김지호 기자
    그는 대통령 개인의 역사가 한 편의 동영상처럼 차르르 펼쳐지도록 각 페이지마다 무빙 트랙을 깔려고 노력했다고 한다./사진=김지호 기자
    -진부하지만 말의 진정성은 어디에서 옵니까?

    “근본적으로 공동체에 대한 마음이지요. 돈 많이 벌고 권력도 쥐고 싶었던 사람이 전두환, 노태우였어요. 그분들은 ‘정의 사회' 구현을 외쳤지만, 부정으로 재산 축적해서 재판도 받았잖아요. 박정희는 정치적으로 비판은 받지만, 자기 가난 탈출이 아니라 민족 가난 탈출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아야죠. 정치적으로 비슷한 성향이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인데, 영국 출신이었던 리콴유가 미래지향적인 경제 정책을 편 데 비해 박정희는 과거지향적이었어요. 그 모델이 명치 유신이었어요.

    어쨌든 요즘 머리 좋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법 고시 보거나 사업을 하잖아요. 그들은 자기밖에 없어요. 대통령이라면 공동체를 위하는 그런 애틋한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보여주는 말과 정치 행로가 있어야 돼요. 제가 얘기한 3.5명은 그런 마음이 좀 나타났다는 거죠.”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말로 국민의 신임을 얻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2세 정치도 요즘 곳곳에서 폐해가 드러나고 있지요.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요?

    “왕정에서도 성군이 나온 경우를 보면, 서자로 들어와서 앉은 경우가 많습니다. 세종도 왕이 되기 전 태조와 바깥 생활을 겪었죠. 어려움을 겪어봤다는 거죠. 정치적 금수저 가령 부시만 봐도, 자기가 왜 정치를 해야 하는 지 몰라요. 모든 정권은 기본적으로 개혁을 해야 하는데, 2세 정치가들은 그 개혁이 어렵습니다. 국민은 한편으로는 개혁을 열망하면서도, 실제 개혁을 하면 리더는 인기가 떨어져요. 기득권의 피로감도 커져서 개혁하다 그 정권이 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보수하고 개혁하려면 뱃심이 있어야 하는데, 문벌의 아들딸은 개혁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모릅니다. 국민의 삶을 모르니까요.”

    많은 자료와 취재한 정보들을 활용해 역대 대통령들의 드라마를 추적한 책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대통령의 역사가 우리 한국의 현대사다.
    많은 자료와 취재한 정보들을 활용해 역대 대통령들의 드라마를 추적한 책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대통령의 역사가 우리 한국의 현대사다.
    -개혁과는 다른 관점으로, 모든 대통령이 이전의 대통령과 적대적으로 시작했다는 것도 참 비극입니다. 심지어 전두환이 지명한 노태우도 등을 돌렸는데, 그것이 권력의 속성일까요? 수평적으로도 수직적으로도 나눌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아들과 아버지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이에요. 세대 간에도 마찬가지예요. 50대가 대통령이 되면 60대는 뒷방으로 물러나게 되지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자기 정체성을 위해 전임 정권을 전면 부정했다. 장면은 이승만을 독재 정권이라고, 박정희는 장면을 무능·부패 정권이라고 부정했다. 김영삼은 신한국창조라는 이름으로 김대중은 제2의 건국이라는 이름으로 역대 정권을 사실상 부정했다. 이명박도 잃어버린 10년으로 노무현과 김대중을 부정했다.

    -한편으로 대통령들 사이에서 있었던 라이벌 의식은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고 보나요?

    “라이벌이 있어야 성장하니까요. 김대중의 라이벌은 현실적으로는 김영삼이었지만, 사실상 박정희였어요. 박정희는 김일성이 라이벌이었고, 이승만만 유일하게 라이벌이 없었죠.”

    -각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사를 기술하면서, 마지막에 슬하에 몇 자녀를 두고 어떤 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누린 해는 몇 년이다, 라고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어찌 보면 큰 영화를 누리고 당대에 ‘영웅' 대접을 받은 사람들인데, 마치 소설가 김훈이 패자의 생을 기술하듯 애틋한 마음이 보였습니다.

    “권좌에서 내려오면 사람이 선해져요. 권좌에 있을 땐 마치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를 낀 것 같지만요.”

    -권좌에 있을 때는 왜 이상해질까요?

    “당대만 봐서 그렇죠. 현실 정치의 지도자는 자기 가족, 지지자, 당대만 볼 게 아니라 역사를 봐야 해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그러면 역사와 대화해야죠. 그게 힘들어요. 오죽하면 헤겔도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것은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라고 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국민이 정말 대단해요. 이번에 촛불 시위도 폭력이 일절 없었다는 데 전 세계가 놀라고 있잖아요.”

    -쿠데타로 올랐든 선거로 올랐든, 한국의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로 그 힘과 정통성이 판단되곤 했습니다. 미국은 민주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만, 실제 맥락에서는 ‘제 3세계 터프가이에게 이상하게 감탄하는 경향이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칼럼을 인용하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을 주도하는 건 알다시피 유대인 논리에요. 유대인의 셈법은 간단해요. ‘이긴 놈하고 손잡는다'와 ‘싸게 먹히는 데 투자한다'예요. 미국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원하지 않은 것도 비용이 많이 들어서지요.
    미국 정계도 그렇게 움직입니다. 무엇이 싸게 먹히느냐…촛불 시위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겠지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정치 경멸하면 우리가 경멸받게 될 것" 전직 대통령 12명 추적한 작가 강준식
    -각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이승만 시절엔 원조 경제였지만, 그 시절에도 1959년엔 산업부흥부(현재의 상공부)에서 경제 개발 3개년 계획을 세웠어요. 4.19 끝나고 장면 정부가 전문가 2백 명을 불러 밤낮 토론해서 만든 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어요. 그 서류를 책상 빼다 서랍에서 발견해서는 실행한 사람이 박정희지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앞선 대통령의 작품이었다는 거군요.

    “그렇죠. 다만 애초의 것은 자립 경제 모델이었어요. 박정희가 그걸로 2년 정도 하다가 안 돼서 수출경제 쪽으로 방향을 튼 거지요.”

    -중요한 건 실행 능력일 텐데요.

    “박정희는 명령은 5% 감독은 95%를 원칙으로 밀어붙였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보면 내용도 없지만, 사후 관리도 제대로 안 됐어요.”

    그는 책에서 박정희와 비교해서 김영삼의 개혁 실행 능력의 맹점을 지적했다. 박정희는 개혁 추진을 내각에 맡기고 청와대가 감독하고 독려한 반면, 김영삼은 불과 기십 명에 불과한 청와대 수석이 지휘하면서 내각이 얼어붙고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낳았다는 논리다. 결과는 용두사미였다.

    “군사 정부의 권력자들은 정통성에 약한 것을 상쇄하기 위해 경제에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전두환은 박정희를 모델로 3저 호황 속에 인프라를 잡았고, 노태우는 KTX, 주택 2백만 호, 인천 공항 등을 만들면서 그 돈을 많이 썼습니다. 모란꽃이 뿌리 썩는 줄 모르고 피어나는 것과 비슷했어요. 김영삼이 그걸 인수해서 금융실명제와 세계화를 추진하다 종금사가 단기 외채를 왕창 빌려 쓰는 바람에 IMF를 맞았지 않았습니까.”

    -이후 김대중과 노무현 집권 시기를 보수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판합니다만.

    “김대중은 IMF를 너무 빨리 졸업시켰고, 노무현은 거대한 도덕적 의제들을 던지느라 경제에서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으로 지나갔어요. 야당에서는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불렀지만, 그에 비해 사실 거시 경제 지표는 나쁘지 않았어요. 이명박 정부는 그들만의 리그를 열었죠. 4대강과 자원 외교의 공과는 차치하고서라도, 상인 정치가로서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그 이익을 과연 누가 누리고 있나? 질문하게 됩니다. 박근혜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요. 초이노믹스로 집값만 올려놓았지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정치 경멸하면 우리가 경멸받게 될 것" 전직 대통령 12명 추적한 작가 강준식
    -탄핵 이후 앞으로 대통령들의 자세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언제든지 탄핵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으니,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겠지요.”

    -개헌 논의는 어떻습니까? 대통령제가 제왕적 시스템이라 내각제로 바꿔야 한다거나 중임제로 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있는데요.

    “히틀러도 내각 총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 거로 막기 어려워요. 다만 미국 대통령제가 인사, 정책, 예산권이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 사정권, 정보권, 사실상의 당 운영권까지 있거든요. 그걸 분산 조정할 필요는 있겠지요. 대통령이 단임제라 정책 연속성이 없고 부패가 많다는 것도 잘 따져봐야 합니다. 한번은 눈치 보면서 해 먹지만, 두 번이면 기술자가 돼요. 대통령은 한 명이 해 먹지만, 내각제는 3백 명이 해 먹을 수도 있고요. 단순 논리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왜 5년 단임제를 선택했던가 이유를 잊으면 안 됩니다.”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서였지요.

    “그렇습니다. 87년 이후에 한국이 민주화가 안착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에요. 최근에 국민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발동된 건 그만큼 그동안 민주주의가 후퇴했기 때문이에요. 권력이 그렇습니다. 잘하면 권력 장기화의 욕구가 다시 생기겠지요. 전통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요.”

    -특별히 한국 대통령에게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일까요?

    “우리 국민이 정말 대단합니다. 6.25 폐허 위에서 자동차를 만든 국민이에요. 각자가 의견이 강한 벤처사업가지요. 역으로 타협도 동업도 잘 못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대통령 하기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자살하고 탄핵당하고… 이런 치열한 현실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지금 한국 대통령의 절실한 사명은 ‘사회 통합'이에요. 강남 강북이 나뉘고, 서민과 금수저의 갈등이 얼마나 치열합니까. 우산 장수 양산 장수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마음으로 통합해야 합니다.”

    -앞으로 대선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시계추는 우로 갔다가 좌로 갔다가 하는 게 정상입니다. 균형이 잡히는 거죠. 미국이 민주당 8년에서 공화당으로 바뀐 것처럼 예외가 없어요. 8~10년 주기로 진보와 보수 사이를 오가는 건 정치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신호로 봐야지요. 분명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정치를 경멸하게 되면 우리가 경멸받게 될 거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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