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ㆍ조세

[핫이슈분석] 차기 정권, 90일 예산전쟁에 추경도 편성할까... 효과는?

  • 세종=이현승 기자
  • 입력 : 2017.03.29 10:24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부터 편성하겠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통령이 파면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주춤했던 추경설(說)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5월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17일 민주당 경선 토론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국가 예산과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취업박람회에서 자녀들의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는 중년층. / 조선일보 DB
    취업박람회에서 자녀들의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는 중년층. / 조선일보 DB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할 구석이 많다. 우선 새 정권이 추경을 편성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가 논란이다. 여기에 추경 편성 요건, 추경의 효과 등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① 사상 초유의 90일 예산 전쟁…정권 바뀌면 원점서 검토 불가피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2018년도 예산 편성 작업에 한창이다. 지난 28일 각 부처에 내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통보했고, 각 부처에선 5월 26일까지 예산요구서를 기재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후 6~8월 기재부와 각 부처가 조율해 만든 최종 예산안을 9월1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기재부에선 내년도 예산안 편성을 '90일 전쟁'이라고 부른다. 5월 9일 대선으로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면 그 전까지 만들어두었던 예산안을 사실상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 정권의 국정기조에 맞춰 각 부처에서 예산요구서를 새로 작성하고, 이를 기재부에 제출해 검토하는 시간이 겨우 90일 정도에 불과하다.

    정권이 교체 될 경우 부처의 재량지출을 크게 손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 90일이란 시간은 상당히 빠듯하다. 문재인 후보는 당선되면 일자리 예산을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밝히는 등 기존 예산이 180도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시간에 맞춰 예산을 편성한다 해도 지금까지와 비교해 엉성하게 만들어져 집행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예산실에서 추경은 금기어나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2014년 한 번을 빼놓고 2013년, 2015년, 2016년 3년 연속 추경을 편성해 예산실 직원들의 피로감은 상당하다. 반면 경제정책국 등 정책 담당 부서에선 수출에 반해 내수가 여전히 위축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 등 금리정책도 여의치 않은 점을 감안하면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많다.

    ② 일자리 감소·中 사드보복, 추경 요건 되나

    문재인 후보는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추경 편성을 언급했다. 공약 중 하나인 '공공 부문 일자리 확충'을 위해서다. 문 후보는 소방관, 경찰, 교사 등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만들려면 17조원 규모 일자리 예산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등 전면 재검토 하고 기존 정책의 조기 집행을 위해 추경 편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추경 예산을 일자리 정책에 어떻게 쓴다는 것인 지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문 후보의 말대로 기존 정책을 조기 집행하려는 목적이라면 올해 예산을 빨리 쓰고, 부족한 분은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시각이 많다. 올해 예산도 다 쓰기 전에 추경부터 언급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법적인 추경 요건에 맞는지도 논란거리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추경을 편성할 수 있는 요건으로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중대한 대내외 변화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할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으로 특정하고 있다.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因爲理解 所以等待)’라는 내용의 중국어 안내판이 붙어 있다. 중국인들이 사드에 대한 오해를 풀고 다시 방문하길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因爲理解 所以等待)’라는 내용의 중국어 안내판이 붙어 있다. 중국인들이 사드에 대한 오해를 풀고 다시 방문하길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일각에선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인한 내수 위축도 추경 편성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사드 보복에 따른 경제 충격을 보는 시각은 분석기관마다 다르다. 해외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는 "중국의 한국행 단체관광 금지로 한국은 GDP의 0.5% 또는 GDP 성장분의 20%가 날아갈 것"이라고 추정한 반면, 영국 옥스퍼드대 산하 연구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려해도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가 한국 GDP에 미치는 영향은 약 0.8% 정도"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 추경의 법적 요건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량적인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와 국회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법적 요건을 해석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5년엔 메르스와 가뭄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추정하기 어렵지만 추경을 했고, 작년엔 조선 해운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실업이 현실화 되기 이전에 추경을 편성했다. 한국에서 추경은 법이 아닌 의지의 문제가 된 것이다.

    ③ 넉넉한 곳간 사정…추경 재원 1조 안팎

    초과 세수로 추경 재원도 여유가 있는 편이다. 지난해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히면서 추경 재원으로 쓸 수 있는 돈은 벌써 1조원 안팎이 됐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주로 국채를 발행해(빚을 내) 추경 재원을 마련했지만 2015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초과 세수는 약 9조8000억원에 달했다. 부동산 경기 호조와 수출 부진에 따른 부가세 환급 규모 감소로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3대 세금이 모두 예상보다 많이 걷혔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상 정부는 전년도 예산에서 쓰고 남은 돈(세계잉여금)을 지방교부세 및 교부금 정산,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채무 상환 등에 먼저 써야 한다. 남는 돈은 다음 해 세입에 포함하거나 추경 재원으로 쓸 수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잉여금은 6조원 내외로 이중 추경 재원으로 쓸 수 있는 돈은 1조원 안팎으로 추정됐다. 이를 활용하면 나라 빚을 늘렸다는 비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④ 방어전 나선 예산실? 내년 확장적 예산 편성 추진

    기재부 예산실에선 확장적인 기조의 내년 예산안 편성을 예고했다. 나라 빚을 의식해 긴축적인 예산 편성을 했다가 경기 부양을 위해 또다시 추경을 편성하느니 차라리 확장적으로 재정 운용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상황이다.

    28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18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을 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된 지침에서 강조해왔던 '지출 구조조정'이나 '재정개혁'과 같은 문구를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재정투자의 효율성 제고'가 강조됐다. 2017년 지침에서 '재량지출을 10%를 감축하라'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던 것과 달리 내년 지침에는 각 부처에 의무지출의 적정소요를 점검하라는 명시적 요구만 담겼다.

    이 같은 예산안 편성 지침의 변화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분석이 나온다. 출범 초기에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확장적으로 편성해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지출 구조조정은 새 정부와 합의하지 않고 부처에서 자체적으로 과감하게 추진하기 어려운 사항이다.

    ⑤ 예산만 짜면 뭐하나...거듭된 추경에도 경제 제자리

    그러나 거듭된 추경에도 경제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쓸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있는 돈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2015년에 6조원대 추경을 편성했지만 10% 수준인 6000억원 가량이 불용 처리 됐다. 불용액은 당해 회계연도 내에 사용하지 않은 예산을 말한다. 작년의 경우 하반기에 11조원대 추경을 편성했지만 정작 본예산은 상반기에만 13조원 넘게 집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추경을 포함한 작년 본예산 불용액은 11조원에 달했다.

    더구나 추경 예산은 본예산보다 편성에 쓸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어렵다. 또 조기 집행을 무리하게 추진하다보면 당장 돈이 필요한 사업보다 집행율이 빨리 올라가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예산이 과다 투입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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