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주 보통의 '제왕' 한석규

  • 김지수 기자
  • 입력 : 2017.03.25 07:00 | 수정 : 2017.03.27 08:03

    90년대 한국 영화 흥행 신화를 이끈 한석규…
    ‘접속' ‘넘버3’ ‘초록물고기'부터 ‘쉬리' ‘이중간첩' ‘그때 그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장르 무한대
    과거를 향한 감수성으로 인간 본능의 양면을 오간 도시인
    23편의 영화를 지나보니 54세… 젊을 땐 이루고 싶었지만, 이젠 계속한다는 마음
    개봉 영화 ‘프리즌'에서 절대 제왕 ‘익호'로 열연, 마키아벨리 ‘군주론' 읽고 모티브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주 보통의 '제왕' 한석규
    한 명의 영화 배우가 소중한 것은 그와 함께 지나간 시대를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석규라는 이름 석 자를 써놓고 보면, 그와 함께 누렸던 90년대의 삶이 영화의 몽타주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는 한때 한석규라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한없이 풍경에 젖고 싶은 춘몽이었고, 한편으로는 뭉크의 자화상처럼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악몽이기도 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초록 물고기'에서 꾼 ‘한석규라는 꿈’엔 가슴이 미어졌다.

    한석규의 영화를 보면서 어떤 인생을 살라고 이 도시에 놓여졌을까, 어떤 인생을 살라고 이 도시에 버려졌을까를 생각한다.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보이스 비 앰비셔스!’를 외치던 얄미운 서울 ‘제비' 한석규가 ‘빤스'만 입고 질주하던 한밤의 달동네, 죽기 전 늙으신 아버지에게 리모컨 작동법을 가르치려 애쓰던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반듯한 변두리 사진관, 조폭의 막둥이이자 가족의 막둥이였던 한석규의 죽음의 대가로 가족이 꿈꾸던 닭집을 차리고 모여 살게 된 ‘초록 물고기’의 엔딩 신에서 신도시 일산을 바라보는 뷰는 회한에 차서 스산하기까지 했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궁정동에서 총격전을 벌인 후 광화문 8차선 도로에서 오갈 데 없이 갈팡질팡 차를 몰다 터뜨리는 그의 절규 “에이, 씨발, 날더러 뭘 어쩌란 말이야”는 나자신, 대도시의 삶에서 공황에 직면할 때마다 불쑥불쑥 떠오르곤한다.

    아! 도시에 안전한 둥지를 튼다는 것은 얼마나 눈물겹고 또한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렇게 한석규는 이 도시를 살아가는 ‘아주 보통의 존재’로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우리가 혼돈의 21세기를 겪었듯, 그도 그러했다. 시대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듯한 하드보일드한 몇 편의 영화 속에서 ‘한석규’는 잊혀질 듯 잊을 수는 없는 ‘과거의 첫사랑'처럼 희미하게 깜빡거렸다.

    ‘서울의 달' 이후 헤어졌던 그를 16년 만에 브라운관에서 다시 만난 건 축복이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년)'의 걸출한 임금 세종으로, ‘낭만닥터 김사부(2017년)'의 낭인 같은 의사 김사부로 그가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아! 우리에게 한석규가 있었지'라는 기분 좋은 자각이 일었다.

    아주 보통의 존재로, 터뜨리지 않고 차곡차곡 눌러 담아온 한석규의 여백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주 보통의 '제왕' 한석규
    나긋나긋하지만 명료한 발성, 고요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한석규를 만났다. 개봉 영화 ‘프리즌'에서 그는 교도소의 절대 제왕 ‘익호' 역을 맡았다. 이 영화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는 누구도 교도소 밖을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교도소 높은 담장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며 감옥의 안팎을 지배한다.

    군청색 스웨터에, 단정하게 빗은 머리, 영화에서처럼 살짝 저는 듯한 걸음걸이로 그가 들어들어왔다.

    -감옥의 안팎을 드나드는 기분이 어땠습니까?

    “감옥에 처음 들어가 봤어요. 영화에 독방도 등장하고 그러잖아요. 그게 장흥에 있는 진짜 교도소 건물이예요. 처음 감옥엘 들어가 봤는데, 죄수들이 쓰던 물건도 있고, 엽서도 나뒹굴데요. 벽에 낙서도 그대로고요. 거기서 촬영하고 연기했다는 거, 그게 저한테는 복이에요. 큰 복이죠.”

    모데라토가 빠르기의 기준이라면 안단테에 가까운 속도로 이야기하는 한석규. 그는 너무 오랜만의 인터뷰가 조금 어색한 듯 보였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영화에 보면 저희가 거기서 아주 난장을 피워요. 나중엔 불도 지르고 그러죠. 특수효과팀이 붙었지만, 실제 상황처럼 대단했어요. 세트에서 했다면 그게 가당키나 했겠어요? 나중에 장흥 교도소에 군수가 오셔서 그래요. “아깝다!” 그래서 없애지 않고 다른 영화 촬영에도 쓰고, 일반인들에게 감옥 체험관으로 쓰겠다네요. 참 잘된 일이에요. 아주 잘 됐지요.”

    이번 영화로 ‘권력과 인간’을 얘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배와 피지배… 인간의 문명사가 있는 한 그 문제는 끝이 없겠지요.”

    -개인적으로 만난 건 ‘주홍글씨(2006년)' 현장에서 만난 이후 11년 만입니다.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터뷰는 잘 안 해요. 안 하죠. 싫어요(웃음). 배우라는 직업이 말이죠… 말로 설명하는 게 참 무상해요. 오히려 몸으로, 이렇게 몸을 움직여서 ‘액트’하는 거잖아요. 인터뷰에서 하는 말은, 어쩔 수 없이 미사여구가 된단 말이죠. 그렇게 돼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고 집에 오면 “으이구~ 이놈아~” 자책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쇼박스 대표가 저랑 동갑내기 64년생이에요. 인연이 깊어요. 그래서 이런 걸 합니다. 허허허.”

    64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54살이다. 한석규가 오십이 넘었다는 게 미처 실감이 나지 않는다.

    -90년대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한석규가 한국 영화 산업을 이끌어오는 듯한 흐름이 있었어요. ‘쉬리'나 ‘은행나무 침대 '같은 한국 최초 블록버스터 영화도 ‘8월의 크리스마스'나 ‘초록 물고기'같은 문학적인 영화도 모두 한석규이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그 열기가 사그라진 채로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혹여라도 어떤 마음의 분란이 있었습니까?

    “90년대나 2000년대나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은 변함없어요. 다만 90년대엔 ‘연기자 한석규'로서 뭔가를 이루고 싶고, 해내고 싶고 그랬어요. 목표에 정신이 팔렸다고나 할까요. 젊어서 그랬던가 봐요. 허허허. 지금은 ‘완성한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한다.' 혹은 ‘계속한다 마음이 중요해요. 계속 꾸준히 한다, 안되면 다시 찾아서 또 한다...하하하. 그런 거 아닐까요.

    제가 볼 때는 그래요. 저는 90년대에서 2000년대 영화를 살고 있어도, 70년대나 2100년도에도 환경은 비슷하지 않겠어요? 영화라는 매체가 없어질 것도 같거든요. 기술과 밀접한 분야잖아요, 영화가. 어쩌면 스크린으로 보는 연기는 없어질지도 모르겠어요. 연극이라면 다르죠. 눈앞에서 하는 진짜배기니까.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해요. 영화에서 CG가 발달할수록 연기자는 설 곳이 없겠구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주 보통의 '제왕' 한석규
    -연기자가 사라질까 봐 불안하신가요?

    “연출자 입장에서 봐도 배우는 참 말고 드럽게 안 듣고, 허허허… 하라는 데로도 안 하고 뭐하러 쓰겠어요. 그런데 이 눈이(두 손가락으로 눈을 찌를 것처럼), 눈이 구현이 안 될 것 같아요. CG로는 그게 안 돼요. 저는 제 연기도 다른 사람 연기도 요즘엔 눈을 유심히 봐요. 액션도 몸보다 눈에서 나오는 힘이 세거든요. 90년대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환경은 점점 좋아지겠지만, 그런 면에서 후...(길게 한숨을 쉬며), 아시다시피 그럴수록 잃어버리는 것도 많거든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시군요.

    “70년대 극장을 생각해보면 냄새가 제일 먼저 기억이 납니다. 담배 냄새, 오징어 냄새, 지린내… 그 냄새가 잊혀지질 않아요. 요즘엔 극장에서 (허공에 대고 칙칙!) 인공 향수가 나와서 냄새랄 게 없잖아요. 깨끗하고 좋아졌지만, 과거라서 그리운 게 또 있어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법정 스님이 1973년에 쓴 책을 읽어봤더니, 그때도 불국사에 갔더니 단청도 탑도 싹 개보수를 해서 예전의 고즈넉한 맛이 다 사라졌다. 그러시더라고요. 풍경이 그래요. 뭐가 자꾸 삐까뻔쩍해질수록 쓸쓸해지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아차… 내가 영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영화도 그런 것도 같고… (또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그런데 영화라는 게 뭘까요?”

    서로 박자를 맞춰 손뼉을 치는 듯한 인터뷰가 아니라 무중력 공간에서 수신호를 하는 듯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놀라운 것은 헛다리를 긁는 것 같은 딴소리나 청중을 의식하지 못하고 내뱉는 혼잣말에 가까운 감탄사들이 한석규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영화나 인간에 대해 의미 있는 맥락과 통찰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오랫동안 말을 아껴온 자의 입이 열릴 때 들여다볼 수 있는 홀연하고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말을 하는 그의 태도는 마치 자기 숨에 공기가 다칠 것처럼 조심스러웠지만,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그 말의 자국들이 귓머리에 오래 남아 아른거렸다.

    -이창동 감독이 그러더군요. ‘한석규 연기의 바탕은 과거 지향성이다’라고요.

    “맞아요, 맞아. 이창동 감독님이 저한테 그러셨지요. ‘초록 물고기' 할 적에. 과거에의 향수로 연기를 한다고. 어찌 보면 저는 미래에는 관심이 없어요. 제가 하는 일도 오로지 연기하는 지금… 영화라는 것도 상상력으로 과거를 구현해서 지금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옛날 그리고 지금...”

    인터뷰를 한다기보다 과거의 어느 한때를 갈피 없이 고요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를 몇 가지 질문으로 단속적으로 불러낼 때마다, 그는 ‘어이쿠'하는 짧은 비명을 지르고 특유의 반원 웃음을 짓고, 두 팔을 으쓱하는 몸짓을 하고, 또다시 대답이 아닌 모놀로그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주 보통의 '제왕' 한석규
    -요즘엔 특히 제왕적인, 군림하는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 듯한데요.

    “제가 한 영화를 주욱 세워보면 23편이에요. 악한 역도 센 역도 많았어요. ‘구타유발자'의 경찰 역도 세고도 악한 역이지요. 최근에 보면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이나 ‘비밀의 문'의 영조도 연기했는데, 둘 다 센 왕이라도 제 참여 동기가 아주 달라요. 세종은 왕 역할을 하고 싶어서 맡은 배역이 아니에요. 그분이 왜 문자를 만들었나? 그런 의문이 있었어요. 게다가 음악, 과학 모든 면에서 탐구심이 어마어마하잖아요. 그 마음의 뿌리가 궁금했지요.

    그런데 훈민정음을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오잖아요. ‘백성을 어여삐 여겨'... 이렇게요. 허허.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큰 분이었어요. 그게 지도자가 지녀야 할 큰 덕목이지요. 자비심이라는 거, 그게 종교인이 아니라도 인간으로서 참 소중한 마음이거든요.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동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아!..’하는 이런 마음이요. 그게 직업으로 구현된 게 저한테는 왕이었어요.

    그즈음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었다.

    “그런데 그 책을 보면서 느낀 건 지은이가 그 자비한 마음과는 완전히 대척점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썼다는 거예요. 권력자에게 등용되기 위해서겠지요. 그 비뚤어진 마음, 지배하려는 마음, 탐욕스러운 마음도 인간의 한 부분이겠지요. 그걸 읽고서 ‘프리즌'의 익호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번 영화 ‘프리즌'은 시간상으로는 90년대를 다루고 있지만, 시간보다는 공간이 더욱 중요한 듯합니다. 교도소라는 공간은 감시와 통제의 구조화된 ‘푸코의 페놉티콘' 이론을 연상시켰습니다. 특히 절대권력자 ‘익호’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교도소 안과 밖을 내려다볼 때 그런 느낌이 더욱 배가되더군요.

    “저는 익호의 공간이 참 특수하다고 봐요. 익호가 사는 곳이 교도소잖아요. 그런데 익호의 목표는 보통 죄수들처럼 형을 마치는 게 아니라, 계속 감옥에 있는 거예요.

    - 거기가 자기 왕국이니까요.

    “네. 그렇죠. 그래서 중간에 소장이 모범수로 감옥을 나가라고 하니까 난리가 나잖아요. 자기 왕국을 박살 내려고 하니까요. 익호가 바깥보다 감옥을 더 좋아하는 게, 거기서 바깥세상을 통제할 수 있어서지요. 그러다 결국 감옥에서 최후를 맞지만, 제가 보는 엔딩은 유건(김래원)이 또 익호의 뒤를 잇는 거예요. 계속해서 또 다른 익호가 나오는 거죠. 그래서 감독이 그럽디다. 이게 부제가 ‘영원한 제국'이라고.”

     영화 ‘프리즌’의 한 장면. 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인간의 권력 의지에 대한 탐구심이 생겼다고 했다.
    영화 ‘프리즌’의 한 장면. 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인간의 권력 의지에 대한 탐구심이 생겼다고 했다.
    -영원한 제국이라… 드라마에서 한 번 더 왕 역할을 선택했던 것도, 그런 권력에 대한 탐구 의지가 작동한 건가요?

    “그런 생각은 또 안 해봤어요(웃음).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영조 역할을 한 건 또 아버지와 아들, 구체적으로 아버지와 장남의 사이를 살펴보고 싶어서였어요. 저는 막내지만, 제 친구들이 장남이 많아요. 그런데 다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아. 허허허. 저는 애가 넷인데 큰 애랑 저는 사이가 좋거든요. 나중에 미워하고 꼴도 보기 싫어하고 그런 건 상상이 안 간단 말이죠.

    그래서 영조가 돼서 아버지의 입장을 좀 들어봤더니, 그게 기대감 때문이에요. 장남에 대한 기대감. 그게 외국엔 없는 한국 사회의 문제예요. 게다가 영조는 콤플렉스가 없어요. 사도세자는 그런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권력자가 될 생각도 없었으니 그 부자 관계가 참 측은하지요.”

    슬하에 2남 2녀를 둔 한석규는, 네 아이가 투덕거릴 때마다 운명론을 들먹여 분쟁을 잠재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첫째는 책임의 운명. 둘째는 양보의 운명. 셋째는 배려의 운명. 막내는 귀여움의 운명. 둘째가 제일 낑낑대지. (아이 목소리를 내며) 나는 왜 양보의 운명이야!! (웃음)….”

    다정하고 엄격한 ‘운명 주의자 아버지’ 한석규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진다.

    올해 54세인 그는 배우로서 한평생 어떤 운명을 감내했던 걸까?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막내였던 한석규는 원래는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기자의 꿈을 품고(여기엔 둘째 형인 한선규의 역할이 컸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엔 성우로 활동하다 연기에 목마름을 느껴 1991년 MBC 공채 탤런트로 입사했다.

    평범한 외양의 그가, 90년대를 풍미하며 사랑받았던 건, 생생하고 모범적인 다이얼로그의 힘이 컸다. 성우 출신이었던 한석규는, 어절을 오징어처럼 잘근잘근 끊고 씹어서 분명하고 힘있게 발음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자 영화계는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빅3’로 이어지는 극적인 포효의 목소리를 선호했다. 송강호는 “배신이야! 배신! 배반!(‘넘버 3’)”을 잇는 엇박자 하이톤으로 기습했고, 최민식은 “누구냐? 너!(‘올드보이')” 문어체 말투로 명령했으며, 설경구는 “나 이제 돌아갈래!(‘박하사탕')” 목젖이 터지도록 비명을 질렀다. 한마디로 아우성의 시대였다.

    작은 목소리를 지닌 한석규는 추방된 국외자로, 몇몇 히스테리컬한 배역으로 스크린 주변을 맴돌았다. 일각에서는 그의 연기와 영화 선택을 두고 양식화되고 시대착오적인 반복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여백이 많은 얼굴, 나른하고 날카로운 그의 발성에 다시 주목한 것 TV였다. 한석규는 ‘뿌리 깊은 나무'와 ‘낭만닥터 김사부'의 괴상하지만 믿을만한 ‘어른'의 목소리로 다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주 보통의 '제왕' 한석규
    -괴짜 어른 캐릭터, 이를테면 ‘사부'라는 호칭이 참 잘 어울립니다.

    “사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김사부는 직업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저는 대학교 때부터 연기를 해서 이제 25년 째예요. 그런데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자문해보면 딱 답이 안 나와요. 저는 연기자, 액터 이렇게 저를 소개해요. 의식적으로 배우라는 말을 잘 안 썼죠.

    그런데 배우(俳優)의 배라는 한자를 보면 사람 인에 아닐 비를 써서,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이에요. 그게 광대라는 직업을 하대해서 그랬는지, 원숭이처럼 끼끼끼끼 대는 모습을 풍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연기라는 양식이 어차피 일본을 거쳐 들어온 문화니까.

    어쨌든 저는 제 직업에 딱 떨어지는 답을 못 찾았어요. 닥터는 고쳐주는 사람이고, 티처는 가르쳐주는 사람이고, 라이터는 쓰는 사람인데, 그러면 액터는 움직이는 사람인가? 허허허. 그런데 내가 왜 연기를 하나, 이 직업을 수행하고 있나… 그런 고민 중에 ‘김사부'를 하게 됐어요.”

    -직업이란 게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직업이 참 중요한 게, 그 일을 하면서 그 사람이 완성된다는 거예요. 일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을 있게 하는 강력한 이유인 거죠. 어머니도 어머니의 일을 하면서 완성이 되잖아요. 그러면 내 직업의 목표는 뭐냐? 생각을 안 하고 연기하는 거예요. 연기를 덜하는 거죠. 그래서 종종 오답도 내요. 생각해보면 사는 건 좀 쉬워야 해요. 의사는 아픈 사람 고쳐주는 게 일이죠. 딴 데 정신 팔려서 그 직업의 목표를 잃으면 사는 것도 가짜가 돼요. 말도 좀 쉬워야 하는데, 부처도 예수도 설교를 참 쉽게 했는데… 허허허. 내가 지금 말을 아주 어렵게 하네. 이런 븅신~ 허허허.”

    과거에 만났을 때도 그는 자기 직업에 대해 겸손을 넘어 진실한 부끄러움을 드러내곤 했다.

    “사실 배우라는 일이 뒤집어 보면 얼마나 하찮은 일이에요. 때로는 사람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배우라는 일이 그러고 싶지는 않아도, 인간사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질 때도 있어요. 후미진 곳에서 묵묵히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 밝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고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한 발짝 한 발짝씩 움직이고 싶다고, 저 스스로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살자고 생각을 해요.”

    -23편의 영화 중에 그래도 마음에 남는 ‘짠한'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어조에 힘을 실어)‘8월의 크리스마스'지요. 그 영화를 좋아하는 건 사랑과 희망이 있어서예요. 결국, 창작자는 두 채널로 가게 돼 있어요. 사랑과 희망이냐 아니면 고통과 독이냐. ‘8월의 크리스마스'가 나온 게 98년이던가요. 그게 또 그 시대니까 가능했던 이야기지요. 죽음 앞에서도 가족의 사랑과 희망이 보여서 좋았어요. 허허허.”

    -막동이는요? ‘초록 물고기'의 막동이를 꼽으실 줄 알았습니다.

    “‘초록 물고기'도 좋아하지만, 그건 고통을 얘기하잖아요. 독이 있어서 보고 나면 씁쓸해져요.”

     영화 ‘초록 물고기'의 한 장면. 이 영화의 배역이었던 ‘막동이'는 그의 팬클럽 이름이 되었고, 한석규는 한동안 영화계 저변 확대를 위해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영화 ‘초록 물고기'의 한 장면. 이 영화의 배역이었던 ‘막동이'는 그의 팬클럽 이름이 되었고, 한석규는 한동안 영화계 저변 확대를 위해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가 쓸쓸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문득 그 얼굴 위로 ‘초록 물고기'의 한 장면이 겹쳐서 떠올랐다. 사람을 죽이고 형에게 전화를 걸어 공중전화 부스에서 울먹이며 하던 말. “큰 성, 기억나, 어렸을 때 철교 밑에서 있지도 않은 초록 물고기 잡는다면서 뛰어다니다 ‘쓰레빠’ 빠뜨리는 바람에 하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찾아다녔잖아.”

    어쩌면 터프한 리얼리즘의 세계를 뚫고 나오는 그 불가사의한 딴소리가 영화의 신비, 한석규의 신비가 아닐는지…

    “그런데 저는 평생 한번도 몰입한 적이 없어요. 연기하면서 제가 하는 걸 또 물끄러미 쳐다보는 식이지요. 너무 빠지려고는 안 해요. 그게 또 함정이거든요. 허허허.”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왜 한석규를 좋아할까요?

    “그게 함께한 세월이 25년이니까, 관객분들이 좀 알아주시는 거 같아요. ‘그래 니가 뭘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그런 거죠. 제 애티튜드랄까. 허허허. 그런데 또 그게 마냥 좋으냐? 그렇지도 않아요. 익숙해지는 게 연기에 썩 좋지가 않은 거죠. 서로 좀 몰라야 보는 맛이 새롭지 않겠어요. 허허.”

    한때 한석규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불성실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거나 이 시대의 변화무쌍한 트렌드가 한석규를 버려서가 아니라, 그저 그 스스로가 정한 시간표대로 자신에게 열광하던 한 시대를 조용히, 차갑게 흘려보냈다.

    결혼을 했고 네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때가 되면 그의 이름을 딴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가 열리는 한 신문사 회의실에 나타났다. 대중들은 연애의 수순처럼 처음엔 그를 달뜨게 사랑했고 그다음엔 곧 돌아오리라 간절히 기다렸고 그다음엔 분노했고 그다음엔 잊어갔고, 마침내 긴 시간이 흐른 뒤 ‘한석규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데면데면한 눈으로 “저는 아직 욕심이 많아요. 어서 나이 먹기를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근사한 오십 대 남자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추억의 뒷짐을 지고 홀로 걷는 남자.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케빈 스페이시를 목격할 때의 충격처럼, 어두운 밤 교도소 운동장을 홀로 어슬렁거리는, 저기 한석규가 있다. 우리 시대 아주 보통의 제왕이.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