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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온 유럽 도자기, 박혀 있던 韓 도자기 빼냈다

  • 유진우 기자

  • 입력 : 2017.03.21 06:05

    한국도자기, 행남자기 등 한때 전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국내 도자기 업체들이 외국산 브랜드에 밀려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무렵 세계 도자기 업체 중 생산량 1위를 기록했던 한국도자기의 매출은 2011년을 기점으로 매년 5~10%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외국산 도자기 매출은 크게 늘었다. 이마트에서 지난해 판매된 덴비, 포트메리온 등 고급 도기류의 매출은 2015년보다 7배나 급증했다. 덴비는 국내 시장에서 매출이 급격히 증가하자 지난해 덴비코리아를 세우고 대중 마케팅에 벌이고 있다.

    덴비코리아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5년간 본토인 영국을 제외하고 이 브랜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 시장이다. 덴마크 도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은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백색 한식기에 파란색 핸드 페인팅 문양을 입힌 새 라인을 선보였다.

    ◆ 집밥·혼밥·스몰 럭셔리 바람에…수입 고가 도기류 매출 급성장

    덴비(영국), 포트메리온(영국), 로얄덜튼(영국)과 같은 서유럽 도기 브랜드부터 로스트란드(스웨덴), 로얄코펜하겐(덴마크), 이딸라(핀란드) 등 북유럽 브랜드까지 유럽에서 명성 높은 도기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들 브랜드는 한국 시장을 도기 시장이 이미 성숙한 일본보다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판단한다. 락앤락 등 ‘한국에서 유행한 상품은 중국에서도 인기를 끈다’는 생활용품 업계 전례를 살펴보면 한국이 아시아 시장으로 브랜드를 확대하는 관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 따르면 이들 브랜드는 시중 유통채널에서 월매출 30억원 수준을 기록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 매출로 추산하면 300억원 수준이다. 비공식 임의수입 유통과 개인직구 등을 합치면 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도 외국 자기 브랜드가 인기를 얻자 직매입(대량으로 직접 구매해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방식) 형태로 판매에 나섰다.

    유럽산 도자기는 국산 도기에 비해 값이 다소 비싸지만 사용자에게 높은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선물용, 손님 접대용으로 인기다. 최근 집밥(집에서 먹는 밥)과 혼밥(혼자 먹는 밥)이 인기를 끌고, 여기에 작은 사치 즉 ‘스몰럭셔리(small luxury)’ 바람이 부는 것도 상대적으로 값비싼 수입 도기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도예연구소 관계자는 “여전히 밥과 국 위주 식단이 많기는 하지만, 국내에 서양식 식생활이 퍼지면서 이전보다 한식기보다 양식기 사용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해외 브랜드들도 동양인들 식생활에 맞춘 밥그릇, 국그릇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생활 도자기로는 국내업체가 이들과 경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전통의 강자’ 한국도자기·행남자기는 고전

    이같은 외산 브랜드 홍수 속에서 국내 대형 도기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혼수 필수품목’으로 꼽혔던 한국도자기는 지난해 8월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매장을 뺐다. 한국도자기 매장은 더 이상 국내 일선 백화점에서 찾아볼 수 없다. 국내 도기 업체 2위 행남자기 역시 백화점 매장이 없다. 외국산 브랜드의 백화점 매장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집밥(집에서 먹는 밥)과 혼밥(혼자 먹는 밥)이 인기를 끌고, 여기에 작은 사치 즉 ‘스몰럭셔리(small luxury)’ 바람이 불면서 백화점에서 외국 식기를 쇼핑하는 남성 소비자가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집밥(집에서 먹는 밥)과 혼밥(혼자 먹는 밥)이 인기를 끌고, 여기에 작은 사치 즉 ‘스몰럭셔리(small luxury)’ 바람이 불면서 백화점에서 외국 식기를 쇼핑하는 남성 소비자가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국도자기 매출은 2013년 404억원, 2014년 384억원, 2015년 339억원으로 매년 줄고 있다. 수입유통(상품), 자재, 임대료 매출을 뺀 순수 도자제품 매출은 2015년 기준 284억원 수준이다. 당기순손실 규모는 2013년 35억3400만원에서 2014년 104억7200만원을 기록해 1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도자기는 최근 영국산 도기 ‘스틸라이트’를 수입해 홈쇼핑 등에 팔거나, 외국산 브랜드를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제조해 주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행남자기 역시 이 기간 매출이 438억원, 423억원, 413억원으로 줄었다. 결국 1942년 이후 3대째 행남자기를 이끌어오던 김유석 행남자기 대표 오너 일가는 2015년 11월 이 회사를 매각했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도자기 원료가 되는 유약과 뼛가루 같은 원자재 가격이 비싸졌고, 인건비도 올라 동남아나 중국산 저가 도기와 경쟁이 어려워졌다”며 “디자인 패턴 관리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복제품이 부지기수로 쏟아진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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