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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칼럼] '가짜 뉴스'와의 전쟁, 이길 수 있을까

  • 논설주간
  • 입력 : 2017.03.21 04:00

    [김기천 칼럼] '가짜 뉴스'와의 전쟁, 이길 수 있을까
    작년 11월 미국 대선에서는 가짜 뉴스(fake news)가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렸다. 선거일 이전 3개월 동안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뉴스는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가짜 뉴스였다. 공유·반응·댓글 건수가 모두 96만건에 이르렀다.

    워싱턴포스트지의 진짜 뉴스가 84만9000건으로 2위였다. 이어 ‘힐러리가 이슬람국가(ISIS)에 무기를 판매한 사실을 위키리크스가 확인했다’는 것을 비롯해 클린턴 후보에 관한 가짜 뉴스가 3~5위에 올랐다. 1~5위 뉴스 중 4개가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주목받는 시대다. 가짜 뉴스가 미국 대선 판도를 바꿨다는 말까지 나온다. 주류 언론들이 좀더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주목도가 떨어졌다. 트럼프 후보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주류 언론의 뉴스를 가짜 뉴스라고 몰아붙였다.

    선거 때 재미를 본 기억 때문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가서도 돌출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부정 선거와 전화 도청 등 아무 근거 없는 이야기를 툭툭 던지고 있다. 명백한 거짓이나 오류로 드러난 뒤에도 사과 한 마디 하는 법이 없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때도 “영국이 매주 3억5000만 파운드를 유럽연합(EU)에 갖다 바치고 있다”는 등 EU 탈퇴파의 거짓 주장이 횡행했다. 사실(fact)에 입각한 반론은 유권자들 사이에 전파(傳播)되는 속도가 느리고, 영향력도 약했다.

    전세계가 가짜 뉴스로 몸살을 앓으면서 그 폐해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도 분주하다. 페이스북은 올 가을 독일 총선을 앞두고 가짜 뉴스 판별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구글은 프랑스 언론들과 협력해 허위 정보를 차단하는 크로스체크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가짜 뉴스나 특정 인종에 대한 ‘증오 발언’ 등을 차단하지 않는 소셜미디어 기업에 최대 5000만 유로(약 600억원)의 벌금을 물리는 강력한 법안을 마련했다. 언론 자유에 대한 논란을 무릅쓰고라도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등을 상대로 불법·위법 콘텐츠 유통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런 시도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왜곡·조작하고 유포시킬 수 있는 시대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가치있고 정확한 정보를 골라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국가적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번번히 괴담에 휘둘리는 한국의 경험은 하나의 사례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한 이후 이에 반대하는 온갖 괴담이 난무했다. “맹장 수술비가 900만원까지 오른다”, “물값이 폭등해 빗물을 받아써야 한다”, “한국 농업이 황폐해진다” “광우병이 창궐한다” “한국 영화산업이 붕괴할 것이다” 등등···.

    한국 경제가 거덜나고 서민의 삶이 파탄날 것이라는 저주와 악담이 쏟아졌다. 정치인들도 부화뇌동해 한·미 FTA를 제2의 을사늑약에 비유하며 나라를 팔아먹는 것처럼 선동했다. 대부분 터무니 없는 궤변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누구 한 사람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 객관적인 팩트에 대한 설명은 대체로 길고 지루하고 따분하다. ‘뇌송송 구멍탁’ 같은 간결하고 감각적이며 자극적인 거짓 구호를 당해내기 힘들다. 그래서 대중들은 쉽게 괴담과 음모론의 함정에 빠져든다.

    더욱이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습성이 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있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경향을 더 극단적으로 강화한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원리에 기반한 해결책을 찾기 힘든 이유다.

    가짜 뉴스와 선동에 당해본 경험이 면역력을 키워주지도 않는다. 반대로 끊임 없는 반복으로 거짓 주장을 대중의 뇌리에 새기는 세뇌(洗腦) 효과는 분명하다. 어렵게 진실이 밝혀져 괴담이 소멸한 뒤에도 “뭔가 문제가 있으니 논란이 일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오래 남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영화 문제다. 민영화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반대파들은 “요금 폭등으로 서민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라며 괴담에 가까운 주장을 줄기차게 되풀이했다. 그로 인해 한국에선 이제 민영화가 거의 정치적 금기어가 돼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개혁을 추진하면서 민영화의 ‘민’자도 꺼내지 않았다.

    한국이, 더 나아가 지구촌 사회가 가짜 뉴스·괴담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해도 가짜 뉴스 근절은 불가능해 보인다. 비용을 적게 치르는 방법이라도 찾아내야 한다. 독일 정부가 시도하는 것처럼 언론 자유에 대한 일정한 제약이 불가피할 수 있다. 더 나은 다른 방법이 없다면 최악(最惡)을 피해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도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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