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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사업 빅뱅]③ 해외서 길찾는 벤처·절름발이 치료 연구...시늉만 낸 유전체 분석 규제 완화

  • 김민수 기자
  • 허지윤 기자

  • 입력 : 2017.03.20 15:10 | 수정 : 2017.03.20 15:22

    생명공학의 발전과 컴퓨터 성능 향상으로 유전자 기술이 연구실을 벗어나 비즈니스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개인 유전체 분석에 기반한 맞춤형 치료 사업이 뜨고 배아 세포 단계에서 유전자를 편집해 선천적 기형을 방지하는 기술도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난치 희귀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전망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유전자를 다루는 기술이 산업적·기술적 ‘빅뱅’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비즈는 전 세계 유전자 사업의 흐름을 짚어보고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세 차례에 걸쳐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마크로젠은 설립된 지 20년을 맞았지만, 연 매출 1000억원의 고지를 넘기지 못했다. 199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91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90% 이상은 연구기관이나 병원 등이 의뢰하는 기업간 거래(B2B) 기반 유전체 분석 연구에서 나오는 데, 이중 70% 이상은 해외 매출이다. 국내 1위 유전체 분석 기업인 마크로젠도 국내에서는 사실상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작년 초 영국은 생명과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3세대 ‘크리스퍼(CRISPR) Cas9’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수정란에서 유산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밝히는 연구를 허용했다. 중국은 2015년 인간 수정란으로 유전자 편집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바이오벤처 툴젠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지만 국내 생명윤리법 등 각종 규제로 배아 관련 연구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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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DNA)를 기반으로 한 게놈(유전체) 비즈니스와 혁신적인 연구가 전세계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기술을 확보해도 각종 규제로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힘들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기업인과 연구자들은 “유전자 기반 사업 및 연구가 환자의 생명과 안전, 개인정보 등에 관여하기 때문에 시장 신뢰도, 연구 윤리 등 살펴봐야 할 문제가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미국, 중국, 유럽 등이 게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규제의 유연성을 발빠르게 확보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규제 완화 시늉만 내고 있는 양상”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 시늉만 낸 유전체 분석 규제 완화...해외로 눈 돌릴 수밖에 없는 국내 벤처

    지난해 6월 정부는 체질량 지수, 탈모, 비만, 카페인대사 등 12개 항목에 대해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소비자 개인이 직접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DTC(Direct-to-Consumer)시장을 허용했다. 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희귀성난치성질환에 대한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반 유전자패널 검사에 대해 건강보험도 적용키로 했다.

    유전자 검사에 대한 규제가 다소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관련 기업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기대와 달리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DTC시장을 타깃으로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출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허용한 12개 항목은 민감도가 낮은 탈모, 비만, 카페인 등으로 시장이 큰 희귀질환, 암질환 등은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최대한 민감하지 않은 영역만 골라 규제를 완화하는 시늉만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허가한 제품군으로는 세계 시장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큰 수익을 거두기 힘들다”면서 “국내에서 약 7개 회사가 해당 항목에 관한 제품을 만들었으나, 모두 판매 실적이 저조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설립된 유전체 분석 스타트업은 아예 한국이 아닌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비즈니스를 설계하고 있다. 작년 마크로젠에서 스핀오프한 유전체 분석 기업 쓰리빌리언은 5월 정식으로 출시할 예정인 희귀질환 검사 서비스에 사전 등록하면 최대 50%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프로모션을 기획했다. 하지만 국내 여러 규제 때문에 아예 국내환자들은 처음부터 서비스 대상에서 배제했다.

    금창원 쓰리빌리언 대표는 “한국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제품을 출시하고 사업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고객 발굴에 힘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이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다 안된다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보니 미국처럼 기발하고 다양한 사업 모델이 나올 수도 없다”며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 해도 국내에서는 쉽게 도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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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을 요구한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 대표는 “법이 산업적 측면을 배제하고 경계선에 있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불법인지 합법인지도 명확하게 규정해주지 않는다"면서 “창업자가 비전만 갖고 사업에 뛰어들기 어렵고 투자자들도 미국, 중국처럼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NGS기반 유전자 패널 검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유전자 검사기관으로 신고된 요양기관, 즉 병원으로 한정한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국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의료기관이 아닌 유전자검사기관의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질병의 예방과 진단, 치료에 관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현행 법상 유전자 분석 기술을 갖춘 기업이 대학병원으로 들어가야 하는 구조인데 기업의 서비스가 병원 시스템에 다시 세팅되기 위해서는 10억원 가량을 추가로 투자해야 한다”며 “미국은 모든 임상검사실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임상검사를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CLIA법, 식약처 허가 없이도 검사실 자체 개발 검사를 할 수 있는 LDT(Laboratory Developed Test)제도 등으로 열려있는데 우리나라는 차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환자 입장에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이 줄어들고 비용 부담만 커지는 셈”이라며 “규제에서 우려하는 개인정보나 생명윤리 등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 원천기술 확보해도 최첨단 혁신 연구에는 뒤처져

    유전자가위 기술 원천기술이 국내에 있지만 희귀 유전 질환을 치료하는 연구나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배아세포 연구 등도 국내에서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있어 최첨단 혁신 연구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사용해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DNA 교정 연구를 승인했다. 중국은 인간배아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가위 활용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없어서 가장 활발히 연구가 수행되고 있으며 일본은 지난해 5월 유전자 교정을 통해 인간의 수정란을 조작하는 행위를 기초연구에 한해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내 생명윤리법 47조는 유전질환, 암, 에이즈, 기타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으로 유전자 교정 연구를 제한하고 있다. 이마저도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 치료 효과가 다른 것과 비교해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돼야만 임상 연구를 허가해준다’고 못 박고 있다.

    연구 목적으로 인간 배아를 생성하는 것은 물론 배아의 유전자 치료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치료용 연구도 다른 치료제보다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돼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기준 자체가 모호한 데다가 연구를 진행해 봐야 치료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연구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주요 국가별 크리스퍼를 이용한 배아연구 허용 여부 및 GMO 표시제도 정책/한국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 제공
    주요 국가별 크리스퍼를 이용한 배아연구 허용 여부 및 GMO 표시제도 정책/한국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 제공
    이계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생명체에 어떠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다”며 “글로벌 기준에 맞는 합리적인 규제 가이드라인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연구를 점진적으로 허용하되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연구의 경우 강력하게 제재하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안되는 것’ 외에 모든 연구 행위를 허용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규제’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지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유전자가위 기술이 인간배아 연구에 상용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을 낳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가 선도해 온 기술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며 “법이 허용하지 않는 조치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처벌하고 나머지 실험과 연구에 대해서는 허용하는 한편, 시장에서의 활용에 관한 사후 책임 규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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