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은행의 미래]① AI, 금융산업 패러다임을 바꾼다

  • 송기영 기자
  • 입력 : 2017.03.20 06:00

    세계적인 미래금융학자 브렛 킹(Brett King)은 2015년 자신의 저서 ‘핀테크전쟁’에서 “인터넷금융의 발전으로 기존 은행들이 운영해온 지점의 70~80%가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예언은 적중하고 있다. 글로벌 은행들은 혹독한 영업점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신기술로 무장한 핀테크(FinTech) 기업들에게 자신의 영토를 내준 결과다. 세계 금융산업은 대변혁기를 맞이했다.

    인공지능(AI)·로봇·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금융 산업에서 창조적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 금융산업은 ‘개혁(Reformation)’가 아니라 ‘혁명(Revolution)’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선비즈는 ‘은행의 미래’라는 주제로 6편에 걸쳐 국내외 금융 시장의 변화를 진단하고 한국 금융 산업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오는 4월5일 열릴 미래금융포럼에서도 ‘인공지능(AI)가 가져올 금융혁명’이란 주제로 이런 내용을 다룬다. [편집자 주]

    직장인 김영민(가명)씨는 주택자금 마련을 위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은행 인공지능(AI) 상담원에게 대출 상품을 문의했다. AI 상담원은 적합한 대출 상품을 추천하기 위해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아 김씨의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김씨는 평소 소셜네트워크에 일상에 대한 글을 자주 올렸다. 주제는 주로 가족과 직장, 친구들에 대한 것이었다. AI는 김씨의 글 수백건을 분석해 김씨를 ‘가족애가 깊고 업무에 성실하다’고 평가했다. 김씨의 소셜네트워크에 ‘약속을 잘 지킨다’, ‘검소하다’, ‘직장에서 인정 받는다’ 등과 같은 지인들의 평가가 반복해 등장하는 점도 평가에 반영했다. AI는 김씨가 통신료, 자동차 할부금, 보험료, 카드대금 등을 연체한 경험이 없다는 정보도 확인했다.

    AI는 김씨가 보험사에 안전 운전자로 분류돼 자동차 보험료를 할인받고 있다는 점도 알아냈다. 보험사의 AI가 김씨의 자동차에 부착된 사물인터넷(IoT)의 정보를 분석해 보험료를 산정한 결과다. AI가 김씨에 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데 걸린 시간은 수십초. AI는 김씨가 ‘부실 가능성이 낮은 성실 차주’라고 분석해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김씨는 AI 상담원을 통해 다른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세계 금융시장에서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AI 금융 서비스다. AI는 주식과 채권, 외환 등에 대한 투자 의사결정뿐 아니라 대출신청 승인 여부, 효과적 자산배분, 금융 상담, 핵심 의사결정까지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구글의 AI '알파고(AlphaGo)'가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 이세돌 9단에게 압승을 거둔 지 불과 1년만에 AI는 무서운 기세로 금융산업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AI는 시장 확대에 따른 한계비용이 낮아 '선점이 곧 독점'으로 연결되는 분야여서 국내 금융사들의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모바일시대로 바뀌면서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생산자와 바로 만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갖게 됐다”며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금융산업은 가장 큰 변화의 압력을 받은 산업이 됐다”고 말했다.

    ◆ 골드만삭스, 트레이더 600명 퇴사…글로벌 금융산업은 AI가 장악하기 시작

    AI와 금융의 결합은 세계적 흐름이지만, 가장 뚜렷한 변화를 보이는 곳은 미국이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이미 AI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는 골드만삭스 전용 부스에서 트레이더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블룸버그 제공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는 골드만삭스 전용 부스에서 트레이더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블룸버그 제공
    골드만삭스는 이미 주식을 사고파는 트레이딩을 AI인 ‘켄쇼’에 의존하고 있다. 2000년 초반 600여명에 달했던 골드만삭스의 뉴욕 본사 트레이더는 현재 2명까지 줄었다.

    골드만삭스 전 최고정보경영자(CIO)인 마티 차베스는 최근 한 심포지엄에서 “주식매매에 한정됐던 자동화 기법이 환율거래와 투자금융 부문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골드만삭스는 다음 달 차베스를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승진시킨다.

    미국 월가의 금융사들은 5년 전부터 AI를 이용한 매매기법을 앞다퉈 도입했다.

    미국 호주 등 서방권은 물론 일본에서도 활발하게 인공지능 기술을 금융업에 적용하고 있다. 미국 씨티그룹은 개인 대출업무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소셜네트워크 데이터를 모니터링해 개인대출시 신용등급 판단 등에 부가 정보로 활용하거나 소비자 트렌드를 모니터링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글로벌 자산관리부문에서 재무설계사 업무를 지원하는 시스템에 IBM의 AI인 '왓슨'을 활용하고 있다. ANZ는 왓슨을 통해 몇 주가 걸렸던 재무설계 자문을 단 한번의 미팅으로 해결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과 중국 금융사들이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중소기업 거래처 개척에 AI를 활용한다. 이 은행은 20개 언어를 구사하고 인간의 감정을 분석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나오’를 도쿄 일부 지점에 배치하기도 했다. 나오는 안내, 환전, 송금 등 단순 업무는 물론 500만명의 고객정보와 100개 이상의 금융상품 정보 저장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즈호금융그룹은 소프트뱅크와 함께 AI를 개인용 대출 심사에 사용하고 있다.

    중국 텐센트 산하 인터넷은행 ‘위뱅크’도 개인 신용대출에 AI를 이용한다. 위뱅크는 대출자의 소셜네트워크 지인, 거래기록, 소비 결제 등의 빅데이터에 분석해 신용평가를 한다. AI를 통한 대출심사는 2.4초만에 마무리되고, 40초 안에 통장으로 돈이 들어온다.

    AI가 금융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와…국내 금융사 대응 늦어

    AI 발전은 금융산업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오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산업 중 하나인 금융산업은 1~3차 산업혁명 때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금융거래가 모바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금융 영역은 인간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AI의 발전은 금융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컴퍼니(이하 맥킨지)는 핀테크 업체들이 소매금융부문을 중심으로 은행 수익을 크게 잠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맥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은행 이익 중 소비자금융 60%, 지급결제 35%, 중소대출 35%, 자산관리 30%를 AI를 앞세운 핀테크 업체들이 잠식할 것으로 전망된다. AI의 발전이 기존 대형 금융사에게는 큰 위기를 가져오지만, 핀테크 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는 셈이다.

    조선일보DB
    조선일보DB
    AI가 금융 산업을 잠식하면서 금융 일자리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씨티그룹은 2025년까지 미국∙유럽 은행권에서 현 인력의 30% 이상인 170만명이 해고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국내 금융사들의 대응은 다소 느린 편이다. 핀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AI를 활용한 금융 서비스가 나오고 있지만, 국내 대형 금융사들은 로보어드바이저나 챗봇 등 극히 제한적인 분야에만 AI를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분야가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종자)가 아닌 퍼스트무버(first mover·선도자) 전략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지적한다.

    강맹수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AI는 선점하는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고 후발주자는 추격이 거의 불가능한 승자독식 산업”이라며 “미래의 금융경쟁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국내 은행들의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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