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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화학

국제 유가 떨어지는데도, 국내 정유사들이 웃는 까닭은…

  • 송원형 기자

  • 입력 : 2017.03.20 03:00

    [작년 최대실적 정유업계, 올해는?]

    미국 셰일 오일 생산 늘어나자 OPEC, 시장 점유율 방어 나서
    사우디, 한국 등에 원유값 할인

    석유제품 수요 계속 늘어나는데 시설 증설 없어 공급은 그대로
    "정제마진 좋으면 큰 타격 없어"

    최근 국제 유가가 내림세로 돌아서면서 국내 정유사들도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저유가가 지속되던 시절, 손실이 커져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 2014년엔 유가가 50% 급락하면서 도합 7000억원대 손실을 입은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오히려 "이 정도 유가 하락은 문제없다"면서 실적이 좋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업계에선 정유업체들이 작년에 올린 최대 실적 영업이익 8조원과 비슷하거나 이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사우디아라비아 사빅과 합작해서 만든 울산광역시 남구 고사동 넥슬렌 공장.
    SK이노베이션이 사우디아라비아 사빅과 합작해서 만든 울산광역시 남구 고사동 넥슬렌 공장. 넥슬렌은 SK종합화학이 개발한 고성능 폴리에틸렌 제품이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늘고 해외 업체들이 정유 시설을 증설하지 않으면서 국내 정유업계 실적이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국내 정유업체들은 중동 등 산유국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제해서 되판다. 도입 원유 중 중동산 비율은 80% 정도 되는데, 들여오는 데 40일 정도 걸린다. 그런데 유가가 떨어지면 원유를 비싸게 들여와 나중에 싸게 팔아야 하고, 대량으로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장부상 재고 평가 손실도 발생하는 셈인데 정유사들 표정은 그다지 어둡지 않다.

    유가 하락하면 원유 시장서 할인 혜택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최근 5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작년 11월 30일 이후 처음으로 WTI 가격이 40달러 선이 된 것. 지난 2월 평균 가격(53.46달러)보다 8.6% 낮은 상태다. 이렇게 WTI 가격이 내려간 건 미국 원유 재고와 생산이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은 작년 3분기 이후 계속 증가, 하루 910만배럴에 달했다. 원유 시추공도 2014년 10월 1609개로 정점을 찍었다가 저유가로 작년 5월 316개까지 줄었으나 3월 들어 다시 617개까지 늘었다. 덕분에 3월 첫째 주 미국 원유 재고는 820만배럴 증가했는데, 이는 시장 예상치인 200만배럴의 4배에 달했다. 전체 재고는 약 5억2800만 배럴이다.

    미국 하루 원유 생산량 얼마나 늘고 있나
    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합의한 하루 평균 감산 규모는 120만배럴. 감산으로 끌어올린 유가가 이로 인한 미국 원유 생산 증가로 상쇄되는 구조다. 그러자 원유를 수입·정제한 다음 석유제품을 되파는 한국 정유업체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달 초 "4월부터 아시아로 수출하는 원유의 판매 가격 조정계수(OSP)를 -0.15달러로 낮춘다"고 밝혔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원유를 팔 때 시장 가격보다 배럴당 0.15달러 싸게 팔겠다는 얘기다. 3월에는 OSP가 +0.15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가격 인하 효과는 배럴당 0.3달러에 달한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이 늘자 사우디가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우리 기름 좀 사달라'며 아시아 국가에 읍소하는 셈. 정유업체들은 원유 도입가가 싸지는 효과를 얻는다.

    석유제품 시장 수요 늘고 공급 줄어

    정유업체 실적과 직결되는 건 '정제마진'이다. 휘발유 등 정유업체가 정제해서 만든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 비용을 뺀 것으로 업계에선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정유업계에선 최대 실적을 낸 작년보다 올해 정제마진이 더 좋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등에 따르면 작년 정제마진은 배럴당 연평균 6.2달러였지만, 올해는 9.8달러로 추정된다.

    우선 사우디의 OSP 하락 등으로 원유 가격이 떨어지고, 원유 가격에 연동해 수송비도 줄어드는 등 비용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석유제품 가격 상승 가능성이 꼽힌다. 저유가가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석유제품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저유가로 석유제품 가격이 떨어지자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석유제품을 공급하는 정제시설 증설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즉, 수요가 늘었지만, 공급은 변화가 없기 때문에 석유제품 가격은 오르고, 이게 곧바로 정유업체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정제 설비 신축과 증설 등을 계획했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은 2014년 유가가 급격히 떨어진 이후 수입이 줄자 이를 포기하거나 공사를 미루고 있다. 정제 설비 증설을 발표하고 마무리하는 데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 정도 걸린다.

    아시아 시장에선 경쟁력을 잃은 일본 소규모 정제 공장 4~5곳이 올해 문을 닫을 예정이다. 작년에 호황으로 정기 보수를 미루고 정제 시설을 '풀' 가동했던 미국 정유업체들도 설비 피로도가 누적된 상황이라 올해 봄부터는 정기 보수를 해야 한다. 한 번 정기보수를 하면 3~4개월간 공장 가동을 멈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미국 정제 설비 가동률은 93%였지만 3월 85%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미국 정유업체들의 공급력이 떨어진 만큼 우리 업체들에게 물건을 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최동원 산업연구원 박사는 "정유업계에선 유가가 좀 떨어져도 정제마진이 좋으면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며 "유가 등락이 반복되면서 재고 평가 손실은 상쇄될 것이며, 중국 업체가 올해 석유제품 수출 물량을 작년보다 줄여 시장에 공급이 줄어든 것도 우리 정유업계에 호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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