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최근 수년간 임대료가 급등했던 이화여대 앞 상권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대 앞 상권은 서울 명동, 홍대와 함께 2010년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호황을 누렸던 곳이다. 옷가게와 신발가게 등이 모여있던 이대 앞에는 특히 여성 중국 관광객이 많이 찾았고, 로드샵 중심의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들은 이들을 겨냥해 이대 앞에 경쟁하듯 매장을 냈다. 그 결과 이 일대 임대료와 보증금이 크게 올랐고,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건물주의 손바뀜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문제는 2010년 이후 이대 앞 거리를 점령한 유명 화장품 회사 직영점들의 임차 계약이 이미 끝났거나, 계약 만료를 대거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이 건물주와 5년 장기 계약을 맺고 들어왔는데, 작년 말부터 계약 만료와 동시에 매장을 철수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브랜드 화장품 직영점으로 임대됐던 곳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임대 물건으로 나오는 경우도 여럿 있다고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대 앞 중심 상권 거리. 손님이 없어 텅 빈 화장품 가게들 옆으로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실제로 이대 정문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전용면적 49.5㎡짜리 1층 매장의 경우 국내 유명 화장품 회사가 직영점을 내며 임차했던 곳인데 지난달부터 매장이 비었다. 보증금 1억원에 월세는 1300만원 수준이다. 권리금도 없지만 아직 임차인을 구하지 못했다.

이대 앞 A공인 관계자는 “화장품 매장 5곳 중 1곳은 건물주와 재계약을 안 한다고 보면 된다”며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부터 암암리에 임차인을 새로 구하는 건물주들도 여럿 있다”고 했다.

상권은 죽었지만 이대 앞 보증금과 월세는 내려갈 기미가 없다. 현재 이대 중심 상권 거리는 전용면적 33㎡ 기준으로 월세가 1000만원을 웃돈다. 보증금은 평균 2억~3억원 정도며, 일부 대로변 건물은 보증금이 5억~6억원에 달한다. 2012년 이대 중심 거리 1층에 위치한 전용 49.5㎡ 매장 월세가 600~700만원, 보증금이 1억~2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년 동안 임대료와 보증금이 모두 2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2010년 이후 이대 앞 상권이 뜨면서 투자 수요가 몰리자 기존 건물주들 가운데 상당수가 건물을 팔았고, 새로운 건물주들은 명도 소송을 통해 기존 임차인들을 내쫓는 경우가 많았다. 이 틈을 타 화장품 회사를 중심으로 한 기업들이 높은 보증금과 월세를 제시하며 매장을 임차했고, 이것이 결국 임대료 상승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대 상권이 지금같이 높은 임대료를 계속 유지할지는 불투명하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이대 상권의 사정이 더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 정문 앞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는 한 중국교포 점원은 “중국인 손님들을 상대하기 위해 고용됐는데 요즘은 한국어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매출도 지난해와 비교해 30~50%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옷가게나 신발가게가 많았던 이대 상권 이면 도로 쪽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중국 관광객 매출이 30~50%까지 차지했던 탓에 매출 타격이 더 크다. 건물을 계속해서 비워 둘 수 없는 건물주가 단기로 ‘깔세(몇 달 치 월세를 한꺼번에 받는 것)’를 받고 액세서리 가게나 뽑기방에 임대를 준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대 상권 이면도로에 위치한 상가 건물들. 매장 문을 닫거나 임차인을 찾는 곳이 여럿 있다.

소상공인진흥공단 관계자는 “이미 치솟은 이대 앞 임대료를 감당할 개인 사업자는 없다”며 “현재 이대 앞 상권은 정치적 상황이 맞물려 변화가 일어난 경우기 때문에, 유동인구나 시장 상황 등을 다시 면밀히 검토해 대체 업종을 찾을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