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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서, 내 손으로' 유통업계, '인스피리언스族' 잡아라

  • 유진우 기자

  • 입력 : 2017.03.09 06:05

    회사원 김소형(35) 씨는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코쿤족(cocoon·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에 머물려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집안에서 직접 소시지를 만들고, 생면을 뽑아 파스타를 만든다. 레시피는 단골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얻었다. 여기에 바로 섞어 만든 칵테일 한 잔을 곁들이면 남부럽지 않은 하루가 된다. 종종 외로울 때면 친구들을 불러 와인 파티를 즐긴다. 영화관 못지않은 음질을 갖춘 음향 시설과 120인치 대형 스크린을 준비해 어지간한 시내 바(Bar)보다 분위기가 좋다.

    집안에 설치된 안마의자에서 한주를 마무리한다. 일주일 간의 피로를 날리며, 홈 필링(peeling) 세트로 피부 관리를 하면서 또 한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다’ 집에서 다 해결

    '밖에서의 경험(experience)'을 '집 안(indoor)'으로 들여오는 '인스피리언스(insperience)'족이 유통업계를 흔들고 있다. 인스피리언스족은 집 밖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나 '신경써야 할 요소'로부터 벗어나 안락한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바깥에서 팔거나 제공되는 먹을거리나 서비스 수준에 만족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직접 돼지고기를 사다가 소시지, 베이컨 등을 집에서 만들어 먹거나, 맥주를 빚는 식이다.

    지난달 열린 ‘홈 브루잉 컴퍼티션’에서 심사위원들이 출품자들의 ‘집 맥주’ 향, 외관, 맛, 질감, 전체적 인상을 신중히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있다. /이태경 기자
    지난달 열린 ‘홈 브루잉 컴퍼티션’에서 심사위원들이 출품자들의 ‘집 맥주’ 향, 외관, 맛, 질감, 전체적 인상을 신중히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있다. /이태경 기자
    DIY(Do It Yourself·스스로 제품을 만드는 형태) 주방가전의 매출은 옥션·G마켓 등 인터넷 업체들을 중심으로 올해 들어 15% 이상 늘고 있다. 어린 싹채소를 직접 길러 먹을 수 있는 새싹 재배기, 요구르트·청국장제조기, 아이스크림 제조기, 반죽부터 굽기까지 45분 만에 자동으로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제빵기’ 등이 주요 주부 카페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집에서 직접 탄산음료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탄산수 제조기'는 지난해 주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방가전 부문 ‘가장 많이 팔린 상품’ 5위 안에 들었다. 국내 최대 홈 브루어(집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들) 모임 ‘맥만동’의 회원수는 2012년 1만명에서 최근 3만1800명으로 늘었다.

    제기동에 사는 투자 전문가 황인준(33) 씨는 “사먹어 버릇하던 제품들을 집에서 만들어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며 “직접 재료를 구해 만들기 때문에 공산품보다 품질이 좋다는 생각이 들고, 논란이 되는 유해 첨가물 걱정도 없어 좋다”고 말했다.

    ◆ 남들과 다른 경험을 우리 집에서 편하게

    인스피리언스족이 늘어나는 이유가 비단 안전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취미와 즐거움을 위해 경제력을 아끼지 않는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즐기는 음식이나 문화생활 수준이 전문업소에 뒤지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레스토랑 못지않은 음식을 스스로 만들 수 있고, 근사한 음향과 영상 시설이 갖춰진 집에서 연인 혹은 친지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남들과 차별화한 ‘최고의 경험’을 집에서 편하게 즐기려는 ‘럭셔리’ 인스피리언스족도 늘면서, 관련 제품도 쏟아져 나온다. 예를 들어 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수백만원을 투자하는 사람도 많다. 롯데·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에선 한 대에 200만~5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수입 에스프레소 머신 매출이 올들어 2월까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5% 이상 증가했다. 커피 전문점 수준의 에스프레소와 촘촘한 밀크 폼(우유거품)을 만들어 내는 300만원대 상품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 요리사 최현석씨가 롯데 하이마트 월드타워점 '일렉트로룩스 프리미엄 체험존'에서 개최된 '일렉트로룩스 프리미엄 쿠킹쇼'에 참석해 요리를 시연하고 있다./일렉트로룩스 제공
    유명 요리사 최현석씨가 롯데 하이마트 월드타워점 '일렉트로룩스 프리미엄 체험존'에서 개최된 '일렉트로룩스 프리미엄 쿠킹쇼'에 참석해 요리를 시연하고 있다./일렉트로룩스 제공
    홈시어터 제품 시장의 주력 제품도 고가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롯데 하이마트 관계자는 “또렷하고 웅장한 음질로 유명한 보스(BOSE)사의 홈시어터 제품은 최소 250만원에서 시작하지만, 가정에서 극장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은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팔려나가고 있다”며 “요즘 30대 소비자가 가장 사고 싶어 하는 제품으로 손꼽힌다”고 말했다.

    덴마크의 명품 오디오 브랜드 뱅앤올룹슨(Bang & Olufsen)의 제품 평균 구매 가격은 4000만원 선이지만, 2006년 한국에 상륙한 이후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다.

    김영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집을 '또 하나의 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남들과의 극적인 차별화를 위해 집 안을 활용하는 인스피리언스족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욕구를 파악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기업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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