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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뉴 삼성 2.0]② 전문성·여성·외국인 없는 '삼성' 사외이사…GE 이사회엔 퀄컴 CEO 참여

  • 설성인 기자

  • 변지웅 인턴기자
  • 입력 : 2017.03.07 11:12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세계 170개국에서 조명, 헬스케어, 에너지, 금융, 항공엔진 등의 사업을 하는 그룹이다. 기업 지배구조의 모범사례로 불리는 GE 이사회는 경영진이 주주, 이해관계자 이익에 부합하게 회사를 운영하는지 감시한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이 배석하지 않아도 이사회를 열 수 있으며, 정기적으로 사업장을 방문해 회사 실정을 파악할 수 있다. 이사회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도 GE 홈페이지에 공개, 누구라도 문의나 제안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GE 이사회는 총 17명의 이사로 구성됐다. 세계 최대 반도체설계기업 퀄컴의 스티브 몰렌코프 최고경영자(CEO), 북미 최대 이동통신 회사 버라이즌의 로웰 맥아담 CEO,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의 마진 데커스 같은 유명 기업인이 사외이사로 활동한다. GE 사외이사의 국적은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케냐 등으로 다양하다. 17명의 이사 중 4명은 여성이다.

    삼성이 지난달 28일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계열사 CEO·이사회 중심의 ‘선진경영’ 도입을 선언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삼성 계열사 이사회가 GE처럼 전문성과 다양성을 가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갖고 경영진을 감시해야 하는데, 지금의 이사회는 학계·권력기관 출신이 대부분이라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 전문성·여성·외국인 없는 ‘삼성’ 사외이사…삼성전자 이사회 인적 쇄신 필요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이사회에서 활동 중인 사외이사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학계, 권력기관 출신이다. 삼성전자 사외이사 중 IT와 관련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이병기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가 유일하다.

    삼성전자 사외이사 5명 중 4명(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장, 송광수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김한중 차병원그룹 회장, 이인호 전 신한은행장)은 고위 경제관료, 법조인, 의료인, 금융인 출신이다. 삼성물산이나 삼성생명 이사회에도 기업인 출신 사외이사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경영위원회에는 회사의 경영진인 사내이사들만 들어가 있다.

    전문성뿐 아니라 삼성 계열사 사외이사들은 다양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16개 삼성 상장사 중 외국인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곳은 일본 세콤과의 합작사인 에스원 밖에 없다. 나머지 기업들은 한국인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여성도 찾기가 힘들다. 사내이사로는 호텔신라의 이사회 의장인 이부진 사장이, 사외이사로는 삼성물산 이사회에서 활동 중인 전성빈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감안하고 이사회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2017년 정기주주총회에서 글로벌 기업 CEO 출신 사외이사를 1명 이상 추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 최순실씨 일가 등을 지원, 검찰·특별검사 수사를 받는 탓에 이사회의 인적 쇄신 시기는 늦춰졌다.

    비벡 워드화 카네기멜론대 공대 교수는 “삼성 소비자의 대부분이 외국인인데, 이사회에 다양성이 없는 이유는 무엇이냐”며 “글로벌 시각을 담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삼성이 투명경영을 추진한다고 하나 지금의 사외이사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며 “주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선임하고, 올바른 경영 관점의 판단을 이끌 수 있는 이사회의 인적 구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장에 이사진이 착석해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조선DB
    삼성전자 주주총회장에 이사진이 착석해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조선DB

    ◆ 글로벌 기업에는 ‘스타 CEO’ 출신 사외이사 많아

    삼성전자와 비교되는 애플, 구글에는 스타 CEO 출신은 물론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산업 융복합화가 활발히 일어나는 시기에 다양한 산업군의 경험은 회사의 전략적 판단이나 리스크 관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례로 애플 이사회에서는 아서 레빈슨 제넨텍 CEO(바이오), 제임스 벨 보잉 사장(방산·항공), 로버트 아이거 월드 디즈니 CEO(미디어)가 활동 중이다. 8명의 이사 중 2명은 여성이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 이사회에는 폴 오텔리니 전 인텔 CEO(반도체), 앨런 멀랠리 전 포드 CEO(자동차), ‘실리콘밸리의 대부’로 불리는 존 헤네시 전 스탠퍼드대 총장도 포진해 있다. 12명의 이사 중 3명은 여성에 할당됐다.

    삼성이 계열사 CEO·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선언한 만큼 실리콘밸리 기업처럼 산업계에서 검증된 인사를 영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 네이버는 이달 17일 주주총회에서 ‘벤처 1세대’ 변대규 휴맥스 회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할 예정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삼성이 자율경영 체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이사회의 경영 판단 능력이 중요하다”면서 “오너의 경영권 강화와 대정부 관계를 위해 사외이사를 구성해서는 안되며,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특수관계인 범위 등의 제한을 풀어 기업인이 사외이사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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