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패션 르포] 20만원짜리 패딩이 5백원으로... 고가 '신상'이 '의류 쓰레기'가 되기까지

  • 배정원 기자
  • 입력 : 2017.03.13 06:00 | 수정 : 2017.03.13 10:17

    SPA 브랜드 등장 이후, 한 철 입고 버리는 ‘의류 쓰레기’ 문제 심각
    백화점 신상품도 2주 뒤면 밀려나, 아울렛·온라인몰 거치며 몸값 급락
    한 해 7천5백톤의 안 팔린 옷, kg 당 3백원에 동남아·아프리카로 수출
    럭셔리 브랜드 ‘할인 땡처리’ 보다 소각, 불길 속으로 연간 40억원 어치 옷 사라져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폐섬유 소각 공장의 모습.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의류폐기물은 2008년 하루 평균 162톤에서 지난해 259톤으로 늘었다. 연간 기준으로는 8만톤 수준이다. 아울렛, 인터넷 할인 판매 및 아프리카·동남아 수출에서도 제외된 상품은 모두 소각된다./사진=연합뉴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폐섬유 소각 공장의 모습.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의류폐기물은 2008년 하루 평균 162톤에서 지난해 259톤으로 늘었다. 연간 기준으로는 8만톤 수준이다. 아울렛, 인터넷 할인 판매 및 아프리카·동남아 수출에서도 제외된 상품은 모두 소각된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명동 롯데 백화점 의류 매장은 화려한 패턴의 쉬폰 원피스, 핑크색 블루종(항공 점퍼) 등 봄신상품으로 가득했다. 얼마전까지 매장 앞 마네킹이 입고 있던 겨울 패딩은 매장 뒤편에서 20~30% 할인된 가격에서 판매중이다. 이 제품은 다음주면 아울렛에서 판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백화점 A 브랜드 판매사원은 “재작년부터 시작된 패딩의 인기가 계속될거라 생각하고 패딩의 종류와 색상을 늘렸는데, 예년보다 겨울 기온이 높아진 탓에 할인율을 높여도 재고가 줄지 않는다”며 “출시 한달만에 세일에 들어간 겨울 신상품들이 모두 처치곤란이 됐다”고 말했다.

    ‘쓰레기 유발자’는 패션업계의 오랜 오명이다. 2000년대 이후 싼 값의 의류를 수시로 선보이는 SPA 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한 철 입고 버리는 쓰레기를 만들어낸다는 비판은 더욱 커졌다.

    실제로 ‘신상품’으로 불리는 옷은 평균적으로 2주만에 매장 뒤편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한달 뒤면 5~10%씩 할인에 들어가고, 한 시즌이 지나도 팔리지 않는 옷은 아울렛 혹은 상설 할인 매장으로 이동한다. 그리고도 남은 의류 재고는 어떻게 되는걸까?

     아울렛에서 백화점 브랜드 여성복이 60% 할인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아울렛에서도 3월부터 봄 신상품을 매장 앞쪽으로 진열했다./사진=배정원 기자
    아울렛에서 백화점 브랜드 여성복이 60% 할인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아울렛에서도 3월부터 봄 신상품을 매장 앞쪽으로 진열했다./사진=배정원 기자
    ◆ 정가로 판매되는 기간은 길어야 한달, 남은 제품은 아울렛 혹은 소셜커머스로

    일반적으로 의류 유통시장은 1차 시장과 2차 시장(재고시장) 그리고 기타처리 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1차 시장은 신상품이 바로 진열, 판매되는 시장이다. 각 브랜드 대리점과 백화점 등이다. 하지만 최근 빨라진 트렌드 속도와 의류 시장 불황으로 1차 시장에서도 정상 가격으로 판매하는 기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정기 세일 외에도 요새는 브랜드 별로 할인을 하기 때문에 정가로 판매하는 기간은 2~3주 정도, 길어야 한달”이라며 “SPA 브랜드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7~8년전부터 모든 의류 브랜드의 신제품 수명이 짧아졌다”고 말했다.

    2차 시장에선 1차 시장에서 남은 제품들을 판다. 아울렛이 대표적이다. 홈쇼핑, 인터넷쇼핑도 이월상품을 취급한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아울렛 매장의 할인율은 30~50% 정도였는데, 최근 백화점 온라인몰과 할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70~80%까지 할인하는 경우가 많다.

     의류 브랜드의 2차 시장인 상설 할인매장의 모습. 이 곳에서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던 패딩이 보통 70~80% 할인된 가격에 나온다./사진=배정원 기자
    의류 브랜드의 2차 시장인 상설 할인매장의 모습. 이 곳에서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던 패딩이 보통 70~80% 할인된 가격에 나온다./사진=배정원 기자
    백화점의 신상품이 아울렛에 도달하는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신상품의 한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아울렛에서 동시에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 김포아울렛을 찾은 주부 전상미(34)씨는 “두달 전 백화점에서 40만원 넘게 주고 산 신상 원피스를 벌써 반값에 팔고 있는 걸 발견하고 속이 상했다”며 “이렇게 빨리 아울렛으로 넘어올 줄 알았으면 조금만 기다렸다가 살 걸 그랬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울렛에서조차 판매되지 못한 재고는 쿠팡, 티켓몬스터 등 소셜커머스로 넘어간다. 품목에 따라 90%까지 세일하는 경우도 있다. 티켓몬스터에서는 지난 한달간 ‘이월상품 기획전’을 통해 겨울 의류에서부터 운동화, 모자 등 잡화까지 대대적인 세일 판매를 했다. 백화점 매장에서 20만원하던 트렌치코트가 3만원, 5만원대 맨투맨 티셔츠가 6천9백원에 판매되는 수준이다.

     소셜커머스에서 판매중인 의류 브랜드/사진=티몬 캡처
    소셜커머스에서 판매중인 의류 브랜드/사진=티몬 캡처
    B 의류 브랜드 관계자는 “특정 사이즈만 재고가 많을 경우 소셜커머스에서 원가 수준의 ‘반짝 세일’을 한다”며 “이렇게 할인율이 아주 높은 경우 브랜드 이미지가 손상될까봐 홍보를 하지 않고 조용히 판매한다”고 덧붙였다.

    ◆ 높은 할인에도 남은 재고는 kg당 3백~5백원에 동남아, 아프리카로 팔려

    2차 시장에서도 팔리지 않은 제품은 한 벌 당 최소 5백원, 최고 5천원 정도이 가격으로 재고 처리업체로 넘겨진다. 이런 제품은 길가나 지하철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임시 매장(땡처리 매장)에서 ‘장당 5천원’에 판매된다.

    B 의류 브랜드 관계자는 “여러 유통 경로로 판매하고도 남은 제품의 경우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사가는 업체가 있다. 보통 트럭 혹은 지하철 매장에서 팔기 때문에 파산 직전의 브랜드가 아닌 이상 이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요새는 경기가 안좋다 보니 재킷 한 벌 당 2천원 이상 받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의류 수거업체 덤핑헌옷을 운영하는 신영재(43)씨는 10년째 백화점 브랜드 이월상품을 매입해 유통해오고 있다. “보통 우리처럼 헌옷을 수거하는 업체에서 브랜드 재고처리도 합께 합니다. 수거할때 수량을 일일히 세는건 번거롭기 때문에 무게를 재고 박스 채 가져옵니다. 가끔 10장 정도의 재고를 가져가달라고 하는 분들도 계신데, 2백장 미만의 소량은 취급안해요. 무게로 치면 40~50kg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현금 거래가 원칙이기 때문에, 수거 당일 바로 자리에서 계산해드리고요.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서 가격은 다릅니다. 특히 아웃도어 브랜드는 아직까진 잘 팔리기 때문에 아우터 하나에 4천~5천원까지 쳐줍니다.”

     의류 수거업체에 헌옷과 남은 의류 재고가 널브러져 있다. 이 옷은 분류 작업을 거쳐 해외로 수출된다/사진=배정원 기자
    의류 수거업체에 헌옷과 남은 의류 재고가 널브러져 있다. 이 옷은 분류 작업을 거쳐 해외로 수출된다/사진=배정원 기자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는 업체들은 동남아, 아프리카 등에 kg 당 3백~5백원 선으로 수출을 선택한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수출하는 옷이 한 해 약 7,500톤이라고 추산한다.

    특히 최근 5년 사이 SPA 브랜드의 성장으로 의류 재고가 늘면서 해외로 수출되는 재고의 값도 많이 떨어졌다. 신씨는 “10년전만해도 덤핑재고로 가져온 옷을 동남아에 팔기만 해도 꽤나 짭잘했는데, 요즘은 SPA 브랜드 때문에 팔다 남은 옷 재고 자체도 늘고, 쓸만한 헌옷도 넘쳐나기 때문에 단가가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가정집에서 수거해오는 헌옷이나 일반 의류 업체 재고나 값이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 럭셔리 브랜드 ‘할인 땡처리’ 보다 소각, 불길 속으로 연간 40억원 어치 옷 사라져

    다만, 명품 브랜드의 경우 백화점에서 판매하고 남는 재고는 모조리 소각한다.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이렇게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옷은 연간 약 40억원 규모에 달한다.

    여주 아울렛에 위치한 베네통 매장 모습/사진=핀터레스트
    여주 아울렛에 위치한 베네통 매장 모습/사진=핀터레스트
    명품 브랜드 C사의 8년차 머천다이저는 “매 시즌마다 본사에서 가져올 품목과 수량을 결정하는데, 77 이상의 빅사이즈의 경우 재고가 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올해처럼 평년보다 겨울 기온이 높은 경우 아우터가 잘 팔리지 않는다. 이 경우 어떻게든 팔아보기 위해 아울렛에 보내지만, 본사 방침 때문에 할인율에도 한계가 있다. 이후 2년 이상 안 팔린 옷은 소각 결정을 내린다” 말했다.

    샤넬과 에르메스 등 초고가 명품의 경우 아울렛 매장조차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는 것 자체가 브랜드 위상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위급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 바니스뉴욕, 노드스트롬 등 백화점에서 구입해서 판매하는 제품이 아울렛으로 가는 경우는 있지만, 직접 아울렛 매장을 운영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명품 브랜드의 할인으로 한섬과 신세계인터내셔날(SI)이 최근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명품 브랜드 끌로에의 판권이 올해 2월 한섬에서 SI로 넘어오기 직전 한섬이 30~80% 수준의 대폭 할인을 하면서 끌로에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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