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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술·골프·회식·의전 없는 차석용의 '5無 경영'…기적을 쏘다

  • 김기성 조선비즈 산업부장

  • 입력 : 2017.03.11 07:00 | 수정 : 2017.03.12 16:48

    LG생활건강 부회장의 경영 祕策

    차석용(64) LG생활건강 부회장은 '5무(無) 경영인'이다. 즉 술, 담배, 골프, 회식, 의전(儀典)을 모른다. 출퇴근 시간은 오전 6시와 오후 4시로 한결같다. 매출 6조원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오후 4시 '칼퇴근'하는 사례는 국내에서 진귀하다. 그런데도 2005년 1월부터 13년째 그가 이끄는 LG생활건강은 매년 신기록을 쓰고 있다. 2006년 1조원을 넘어선 매출은 2009년 2조원, 2013년 4조원, 지난해에는 6조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시가총액(時價總額·주가에 주식 총수를 곱한 금액)은 같은 기간 30배 넘게 불었다. 2004년 544억원이던 영업이익은 12년 만에 8809억원으로 16배 이상 늘었다. LG그룹 계열사를 통틀어 매출액, 영업이익, 주가 상승률 등에서 '트리플 3관왕'이다.

    부임 직전인 2004년 영업이익이 2002년 대비 반 토막 난 '골칫덩이' 회사를 맡아 'K뷰티'의 최선두 주자이자 '황금 복덩어리'로 만든 주인공을 위클리비즈가 만났다.

    차석용 및 그래픽
    사진 LG생활건강 제공

    도덕성은 최고 덕목이자 가치

    ―눈부신 경영 성적을 내는 비결이 궁금하다.

    "지난 10여년 성과에 나도 놀랄 때가 있다. 대표로 외부 노출이 많다 보니 회사의 모든 성과가 마치 혼자 만들어낸 것처럼 비치는 것 같을 뿐이다. 그런 '기적'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고 지금 회사 규모에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각자 위치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기본에 충실하고 자기 몫을 충실히 하는 모든 임직원의 노력이 가장 큰 비결이다."

    ―해태제과 대표까지 포함하면 CEO 경력만 20년이다. 관통하는 원칙이나 가치가 있다면.

    "고객과 한 약속을 지키고, 법을 준수하며, 법이 의도한 정신(intent of the law)까지 지켜나가고자 노력한다. 고객과 맺은 신뢰를 지키지 않거나 권력을 가진 외부에 의존해 기업을 키워가는 일, 직원이나 거래처에 군림해 부당한 요구를 하는 일은 아무리 교묘하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P&G에서 16년 근무했는데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나. 그때 익혀서 지금도 경영에 반영하는 게 있는가.

    "'뉴욕타임스 룰(New York Times Rule)'이다. 회사 내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라도 미국 최대 신문인 뉴욕타임스 1면 톱에 기사화됐을 때 부끄러움이 없이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는 행동 규칙이다. 기업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자 의무는 도덕성이라는 믿음을 P&G가 200년 가까이 최고의 가치로 삼고 지켜나가고 있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곳곳에 잠재해 있는 사회 분위기에서 '뉴욕타임스 룰'은 힘들지만 지켜나가고자 노력하는 최고 가치"라고 말했다.

    16전 16승의 M&A 名將

    차 부회장은 총 16건의 인수합병(M&A)을 모두 성공작으로 만든 'M&A 달인(達人)'이다. M&A는, LG그룹의 모태(母胎)인 '락희화학'이 만든 치약과 비누, 세제 등 생활용품 비중이 70%에 달했던 LG생활건강이 사업 구조를 화장품-음료-생활용품 등 삼각 편대로 재편하며 고속 성장하는 원동력이다. 그가 주도한 '후' '숨' 같은 럭셔리 화장품 전략도 적중했다.

    ―M&A 노하우나 원칙이 있는가.

    "비싸게 샀다가 회사 전체가 부실해지는 '승자의 저주' 를 최소화하고 명확한 중장기 전략 및 원칙에 맞는 인수 대상을 엄선해 추진하며, 안정적 사업 기반 위에서 M&A를 실행한다는 것이다."

    뉴욕주립대(회계학과) 졸업 후 코넬대 경영대학원과 인디애나대 로스쿨에서 공부한 그는 법률·회계·금융 등 실무에도 밝다. 차 부회장은 주간사 증권사를 통해 진행되는 대규모 공개 입찰 방식의 M&A를 꺼린다. 십중팔구 가치보다 가격이 크게 높다는 이유에서다. 가격 조건이 안 맞으면 협상을 포기하며 인수 후 그 회사에서 일할 인력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M&A 즉시 정상화 속도를 높이는 점도 남다르다.

    차 부회장은 "인수 직전 3년 연속 매년 2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던 코카콜라를 2007년 3521억원에 사들여 1년 만에 흑자 전환하고 지금 전 세계 코카콜라보틀링 회사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회사로 바꿨다"고 했다. 2010년 더페이스샵 인수는 중가(中價)와 고가 위주이던 화장품 사업을 저가(低價) 영역으로 확대하는 변곡점이 됐다.

    회식·골프·의전 안 해

    부임 초창기 어느 날 LG생활건강 대전 기술연구원 직원들은 갑자기 등장한 차 부회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KTX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온 것이다.

    CEO 방문을 통보하는 순간 의전·식사 등 불필요한 일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그는 퇴직 임원 송별 모임과 연말 송년회를 제외하면 회식은 물론 경조사에도 거의 가지 않는다.

    차 부회장은 이에 대해 "필요 없는 일은 하지 말자. 모든 일은 단순화해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즉 '필요한 것(core)만 살리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없애(compact)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자료 작성, 불필요한 회의, 형식적 의전 등을 모두 없애고 본질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 몰입해 구성원 모두가 고객 가치를 높이는 활동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컨슈머 포커스'(consumer focus)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근무시간 외에는 비서에게도 일정을 알리지 않으며, 휴일 출퇴근 시에는 법인차를 타지 않고 택시나 버스를 이용한다. 사내 보고 시간도 오전8~11시, 오후 1~4시로 제한해 놓고 나머지 시간은 사내에 있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고수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왜 매일 갖나.

    "새로움과 강한 임팩트를 낳으려는 절박함과 그런 고민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으로 봐 줬으면 한다. 소비자를 어떻게 대할까,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정말 재미있는 제품을 매일매일 줄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함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는 미국 유명 잡지 넷을 포함해 미용·헬스·리빙·럭셔리 분야의 여성 잡지 10여 가지를 정기 구독하며 매월 국내외 서적 10권 정도를 별도로 읽는다.

    "이런 노력을 해야 우리 고객들과 눈높이가 어느 정도 비슷해진다고 여긴다"는 믿음에서다.

    40년간 체중 똑같아

    ―'수도승 같다' '정(情)이 없고 너무 메말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에서 근무했을 때 CEO들은 회사에선 업무에 집중하고 인맥 확장 같은 업무 이외 일에 과도하게 나서는 일을 최소화했던 것 같다. 한국적 호탕함이나 보스 기질은 정치하는 분들 성향에 더 어울릴 것 같다. 퇴근 후에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백화점이나 거리 상점도 기웃거리면서 최신 트렌드를 체화(體化)하려고 노력한다."

    ―40년 동안 체중(65㎏)이 같은데 건강관리 비법이 있나.

    "3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아파서 결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특별한 건강관리 비법은 없다. 하루에 7시간 이상 푹 자려고 한다. 아직도 군대(강원도 화천 최전방에서 3년 근무)에서 익숙해진 취침 및 기상 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

    ―실패를 겪은 적은.

    "중학교와 고교 입학 시험에 모두 낙방해 재수했다. 미국 유학 시절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한국으로 돌아올까 하는 갈등을 수없이 했다. 미국 P&G 시절에는 아무도 일을 가르쳐주지 않아 일을 익힐 때까지 회사 숙식 생활을 한참 했다. P&G아시아 총괄 사장 시절엔 아시아 14국을 번갈아 방문하느라 어떤 해에는 낯선 나라 호텔에서 200일 이상을 지냈다."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나.

    "많은 실패로 힘들 때마다 무조건 믿어주시고 편지로 격려해 주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포기하려던 마음을 접곤 했다. 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주문한 문구 '실패하더라도 계속하라. 그리고 기적을 바라면서 계속하라. 실패에도 배우는 것이 있을 테고, 그럼으로써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도 고비마다 늘 기억했다."


    *이 기사는 조선일보 WEEKLY BIZ 3월 4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WEELLY BIZ 구독 및 배달 신청은 조선일보 홈페이지( https://members.chosun.com/subscription/appendweeklybiz.jsp ) 에서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독자는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무료로 배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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