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지금 '동전 전쟁'...동전 교환 거부했다 지점장끼리 고성

조선비즈
  • 송기영 기자
    입력 2017.02.22 06:00

    최근 서울의 한 상가 밀집 지역의 시중은행 점포 간에 갈등이 불거졌다. 하루에도 은행 영업점 한 곳당 십수억원이 거래되는 지역이지만, 갈등의 발단은 ‘동전’이었다. 최근 은행들이 혹독한 영업점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이 지역의 은행 점포도 7개에서 4개로 줄었다. 그러자 동전 교환하려는 상인들을 4개 점포가 모두 소화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몰려드는 동전 교환 고객들 때문에 창구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에 A은행 점포는 지정일에만 동전 교환업무를 하기로 했다. 이후 이 점포 직원들은 동전 교환 고객에게 “오늘은 동전 교환 업무를 하지 않으니 다른 은행을 방문하시라”고 권했다. 결국 동전 교환 업무를 아예 하지 않기로 한 은행 점포까지 나왔다. 지점장들끼리 서로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지역의 한 은행원은 “지정일에만 동전을 수납해도 ‘민원 넣겠다’며 무조건 해달라는 고객도 많다”며 “지정일은 오전 내내 동전만 교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은 지금 ‘동전 전쟁’ 중이다. 은행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영업점을 대폭 줄이면서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하던 동전 교환 업무도 애물단지가 됐다. 일부 상업 지역은 몰려드는 동전 교환 고객으로 영업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덩달아 2000년대 초반 은행들이 도입했던 셀프 동전교환기도 수명을 다해 사라지면서 ‘동전 전쟁’이 더욱 과열되고 있다.

    ◆ 은행 점포 10곳 중 동전 수납은 단 2곳…5만원 교환에 10분 소요

    20일 기자가 서울 종로구와 동대문구의 주요 상업지구 은행 점포를 돌면서 동전 교환 여부를 확인했다. 대부분 은행 점포는 특정일에만 동전 교환 업무를 하거나, 자행의 예금통장이 있어야만 동전을 교환해줬다. 같은 은행이라도 점포마다 동전 교환 업무 방침이 달랐다.

    B은행의 대형 점포는 특정 요일 오전에만 동전 교환 업무를 했는데, 점포 규모가 작은 곳은 동전 교환 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은행은 규모와 상관 없이 아예 창구에서 동전 교환 업무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은행 직원은 인근 다른 은행 점포를 가면 동전 교환을 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날 국민·신한·우리·KEB하나 등 4대 시중은행 점포 10곳을 방문했지만 동전 교환을 받는 곳은 단 2곳이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 동전 교환 업무가 가능한 요일과 시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좌)송기영 기자, (우)독자 제보
    금융공기업인 기업은행과 농협은행 등은 모두 창구에서 동전을 교환해준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농협은행 직원은 다만 “지역 상인들에게 창구 업무가 많은 월말에는 동전교환을 자제해달라고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그동안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동전 교환을 무료로 해줬다. 동전 교환은 금액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창구를 이용하는 일반 입출금 업무보다 3~4배의 시간이 걸린다. 보통 100원짜리 동전 5만원을 교환하면 10분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은행 점포들 입장에서 기피 대상 1호 업무다.

    동전 교환 형태도 바뀌고 있다. 소액 거래가 많았던 과거에는 주로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했다면, 최근에는 모인 동전을 가져와 지폐로 바꿔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동전을 지폐로 교환해줄 때는 반대의 경우보다 시간이 몇배는 더 걸린다”며 “창구에서 동전 교환만 하는 고객이 방문하면 점포 입장에서는 큰 손해”라고 말했다.

    ◆ 영업점 사라지고, 셀프 동전 교환기도 퇴출…수수료 부과 주장까지

    ‘동전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영업점 감소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 등 5대 은행의 전국 영업점은 총 4919곳으로, 1년간 177곳의 영업점이 사라졌다. 줄어든 점포 수만 2015년(58곳)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 은행은 올해 영업점 300여개를 정리할 계획이다. 그만큼 동전을 교환할 은행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특히 상가 밀집 지역의 경우 점포 1~2곳만 사라져도 인근 점포의 업무가 배로 늘어난다.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김장수(48)씨는 “과거에는 은행 직원들이 시장을 돌면서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해주곤 했는데, 요즘엔 쌓인 동전을 일주일에 한번 은행에 찾아가 지폐로 교환한다”며 “이 지역도 은행이 3~4개가 없어지면서 불편한 점이 많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은행 영업점에 설치된 셀프 동전교환기/사진=송기영 기자
    시중은행이 셀프 동전교환기를 대거 줄인 것도 원인이다. 셀프 동전교환기는 고객이 직접 동전을 넣은 뒤 지폐로 교환할 수 있는 기계다. 시중은행 가운데 국민은행이 가장 많은 셀프 동전교환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지난해 기계를 대폭 줄였다.

    국민은행의 셀프 동전교환기는 2015년말 641대였으나 지난해 287대까지 감소했다. 국민은행 영업점이 1100여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업점 2곳 중 1개씩 있던 셀프 동전교환기가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대부분 수명을 다했거나, 은행 점포가 사라지면서 함께 폐기됐다. 일부 점포는 셀프 동전교환기 유지·보수 비용이 부담스러워 기계를 철거하기도 한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국민은행 영업점 직원은 “동전 교환기가 설치된 국민은행 영업점은 고객들이 너무 몰려 영업점이 혼잡해지기도 한다”며 “기계가 고장나거나 오류가 발생하면 고객이 직원을 호출하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들 사이에서는 동전 교환 업무에도 수수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동전 교환을 할 때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해외 은행에서 셀프 동전교환기를 이용할 때도 수수료를 차감한 금액을 지급한다. 다만 국내 정서상 은행 수수료에 대한 거부감이 커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창구 업무가 무료라는 인식부터 바꿔나가지 않으면 동전 교환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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