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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르포] 전선명가 재건 꿈꾸는 대한전선 “올해를 자생 원년으로 만들겠다”

  • 당진=조지원 기자
  • 입력 : 2017.02.17 11:27 | 수정 : 2017.02.17 11:32

    지난 14일 충남 당진시 고대면 장향리에 있는 대한전선 당진공장을 찾았다. 길게 늘어진 전선처럼 공장도 폭이 좁고 긴 형태였다. 공장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인재개발원 건물은 새끼줄을 꼬아 전선을 만드는 모습을 형상화한 ‘X’자 형태를 하고 있었다. 공장 한 켠에는 두꺼운 케이블이 감겨 있는 나무 드럼통이 크기별로 300~400m가량 놓여 있었다.

    대한전선은 2011년 생산 설비를 안양에서 당진으로 이전했다. 초고압케이블, 해저케이블, 데이터케이블, 구리선 등을 생산하는 당진공장에는 대한전선 직원 500명과 하청업체 직원 200명 등 700명이 근무하고 있다.

    무리한 투자로 한때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대한전선이 올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생(自生) 원년’을 경영 목표로 내세웠다. 대한전선은 지난해부터 미국, 싱가포르, 중동 등에서 연일 수주 소식을 전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나서고 있다. 경영 위기를 겪었던 대한전선이 전선 명가 재건을 노리고 있다.

    김윤수 대한전선 당진공장 총괄공장장(전무)은 “올해 목표는 외부 지원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며 “지속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 “품질에 ‘올인’하겠다”…연구개발 확대하고, 미국 대응도 강화

    농경지 한 가운데 위치한 당진공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높이 160.5m의 VCV(Vertical Continuous Vulcanizing‧수직연속압출시스템) 타워였다. VCV 타워에서는 전력케이블을 수직으로 끌어올린 뒤 수직으로 내리면서 절연체를 덧입히는 작업을 한다.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 수직 상태에서 절연체를 입히면 도체 역할을 하는 구리가 전선 가운데 위치할 수 있다. VCV 타워가 높을수록 한 번에 많은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빠르다. 이 타워는 VCV 타워로는 세계 최고 높이다.


    대한전선 당진공장 전경 /대한전선 제공
    대한전선 당진공장 전경 /대한전선 제공
    이날 방문한 VCV 타워에서는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한 380kV급 초고압케이블에 절연체를 입히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상황판에는 작업 시작일이 2월 6일, 2월 9일로 각각 적혀 있었다. 한 번에 생산되는 케이블의 길이는 7000~8000m 수준이다. 절연 작업은 1분에 0.8m씩 진행되기 때문에 케이블 하나를 작업하는데 최소 5일 이상 걸린다. VCV 타워 바로 아래에서는 절연이 끝난 케이블을 나무 드럼통에 감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마주친 대한전선 직원들은 ‘완벽 품질’과 ‘원가 생존’이라는 문구가 앞뒤로 적힌 검은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작년까지 작업복에는 ‘품질 생존’과 ‘불량 죽음’이 적혀 있었다. 품질을 강조한 결과 안양공장 시절 내부 품질 검사 과정에서 한 달 평균 3~4회 정도 불량 사고가 났지만, 지난해에는 두 달에 1번꼴로 줄었다. 대한전선은 올해 내부 품질 검사에서 단 한 건의 불량 사고도 내지 않는 게 목표다.


    지난 14일 당진공장에서 대한전선 직원이 전선 피복 작업을 하고 있다. /조지원 기자
    지난 14일 당진공장에서 대한전선 직원이 전선 피복 작업을 하고 있다. /조지원 기자
    회사가 안정되면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특히 직류전력(DC) 케이블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직류는 교류전력(AC)보다 전력 손실이 적고 2배 이상의 전류를 전송할 수 있다. 고장이 나더라도 인근 전력망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직류가 교류보다 사고났을 때 발생하는 고장전류 크기가 작고, 지속시간이 짧아 손쉽게 전력망을 분리할 수 있다. 고장전류란 전력계통에 고장이 발생했을 때 생기는 전류로, 합선으로 열이 생기는 것처럼 고장이 나면 큰 전류가 흐르게 된다.

    전압 변환 기술의 한계 때문에 세계 전력망 95%가 교류전력이었지만, 최근 변압기 등 주변기기 기술 발달로 직류가 주목받는 상황이다. 직류전력 케이블을 만들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진 고수익을 낼 수 있다. 전력 손실이 적기 때문에 업체들의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전선은 연구개발(R&D)을 통해 기존에 개발된 HVDC(초고압직류케이블)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의 DC 케이블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기존 AC전선 분야에서는 송전 효율을 높이면서도 규격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응 방안도 마련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항을 자국에 유리하게 수정하거나 다른 국가와의 교역을 중단할 경우 경기 침체로 이어져 전선 수출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대한전선은 미국 현지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늘려 트럼프 대통령 정책에 발 빠르게 대응할 계획이다.

    ◆ ‘국내 최초 전선회사’ 무리한 사세 확장에 발목 잡혀…IMM PE 인수 이후 안정

    설경동 창업주가 1955년 설립한 대한전선은 국내 최초 전선회사다. 2008년까지 53년 연속 흑자를 냈던 알짜기업이었지만, 무리한 사업 다각화 과정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대한전선은 남광토건, 명지건설 인수로 건설사업에 뛰어들었을 뿐 아니라 무주리조트, 쌍방울, 온세텔레콤 등 비주력 사업체를 인수하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대한전선은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2년 채권은행과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설 창업주의 손자 설윤석 사장은 경영권을 포기했다. 2014년에는 연결기준 자본잠식률이 완전자본잠식에 가까운 98%에 이르면서 상장폐지 직전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2015년 9월 사모펀드인 IMM 프라이빗에쿼티(PE)가 대한전선을 인수하면서 채권단 자율협약이 종료됐고, 경영정상화 작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IMM PE는 대한전선에 3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투입했고, 채권단도 800억원을 출자전환했다. 그 결과 대한전선의 부채비율은 2500%에서 300%로 대폭 축소됐다.


    지난 14일 대한전선 당진공장에서 생산 중인 초고압케이블. /조지원 기자
    지난 14일 대한전선 당진공장에서 생산 중인 초고압케이블. /조지원 기자
    대한전선은 개선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해외 프로젝트 수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4분기에만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각각 1억달러, 7800만달러 규모의 초고압케이블 납품 계약을 수주했다. 올해 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각각 4300만달러, 1900만달러 규모의 초고압케이블 납품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영업, 생산 등 기능별로 나뉘었던 조직을 초고압케이블, 통신케이블 등 사업부별로 재편한 것도 수주 실적에 도움이 되고 있다. 사업부별 조직으로 개편되면서 영업 수주와 생산 원가 연계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등 이익 구조를 개선하고 있다. 지난해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23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했다.

    김윤수 총괄공장장은 “최근 한 프로젝트에서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남겼던 것이 동기 부여가 됐다”며 “사업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이 성장을 멈추지 않으려면 공장이 감내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영업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영업사원들에는 일단 수주를 저지르라고 독려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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