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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왓슨으로 환자 진단? 법 사각지대에서 헤매는 대한민국 의료혁명

  • 허지윤 기자

  • 입력 : 2017.02.17 06:00 | 수정 : 2017.02.17 11:36

    구글과 애플, 삼성·SKT·KT 등 전세계 IT·통신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로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의료기관들도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한 예방과 관리 중심의 개인맞춤형 ‘정밀의료’ 실현을 위해 빠르게 진화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정책은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와 국회 과학기술정책연구모임이 공동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바이오산업&의료’ 조찬 간담회에서는 국내 법체계와 정책을 재정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 “왓슨 환자 진단 및 처방은 현행법 위반”


     인천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 다학제진료실에서 의료진이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제시한 치료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인천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 다학제진료실에서 의료진이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제시한 치료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치과의사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전현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디지털의료(원격의료), 인공지능(AI) 왓슨, 빅데이터 수집 및 활용 등은 모두 현행법 위반일 정도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법 체계는 굉장히 보수적”이라며 “4차의료혁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의료기관 중에서는 가천대 길병원이 지난해 12월 가장 먼저 미국 IBM의 인공지능(AI)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을 도입했고 이어 최근 부산대병원도 도입해 암환자 진단에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왓슨과 같은 의료용 인공지능으로 환자를 ‘진단·처방’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라는 설명이다.

    보건의료분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료행위와 의료기기 등은 의료법과 의료기기법 등 관련 법을 따라야하며 대부분 사전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연말 ‘AI·빅데이터를 적용한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왓슨은 의료기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가이드라인은 환자의 진료기록, 심전도·혈압·혈액 등 생체정보, 유전정보 등을 분석해 질병을 예측·진단하는 제품은 ‘의료기기’로 분류돼 식약처 허가 절차를 받아야하지만 논문·가이드라인 등 문헌정보를 검색·분석하는 제품은 의료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IBM의 왓슨도 단순 문헌자료를 분석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참고서’ 정도로 여겨져, 의료기기로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왓슨의 진단과 처방에 관한 수가체계가 현재로는 없다.

    전현희 의원은 “정밀의료 시대에 국내 의료기관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불법을 감수하면서 의사도, 의료기기도 아닌 AI 왓슨을 환자 진료에 활용하고 있는 격”이라며 “의료용 인공지능 개발과 적용을 법과 정책적으로 어떻게 육성할지 또는 제대로 규제할지에 대해 정치권이 고민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또한, 의료용 인공지능에 따른 의료사고도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역시 상당한 문제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의료와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법적 여건도 미비한 상황이다.

    디지털 의료나 의료용 인공지능 개발의 경우 환자의 개인정보와 의료정보 등 빅데이터를 수집 및 활용이 관건인데, 현행 법은 연구 등 예외 사항을 제외하고는 데이터 수집 및 활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26조에 따라 ▲정보 주체로부터 동의를 받거나 동의를 면제할 수 있는 연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수행 또는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이에 준하는 공익을 위한 연구 ▲질병 및 사망의 원인과 예측 요인을 규명하는 추적 연구 등 주민등록번호 또는 외국인 등록번호를 통한 개인식별 없이는 수행이 현저히 어려운 연구 등은 고유식별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 등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 의원은 “의료계와 시민단체,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규제를 푸는 것도 쉽지 않다”며 “4차산업혁명이 다가오는 현실에서 우리나라가 특히 정치권이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정책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의료계 “정밀의료 투자, 지금이 적기” 한 목소리

    의료계는 정밀의료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과 투자를 촉구하고 있다.

    실제 정밀의료가 실현되면 환자의 생존율을 더욱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적으로 큰 성장을 거둘 수 있다는 전망 하에 미국, 중국, 영국, 일본 등 여러 나라들이 정밀의료를 선점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계획을 수립, 투자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초 미국은 ‘정밀의료 이니셔티브(PMI·Precision Medicine Initiative)’를 발표했다./백악관
    지난 2015년 초 미국은 ‘정밀의료 이니셔티브(PMI·Precision Medicine Initiative)’를 발표했다./백악관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은 “IT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DNA 염기서열분석비용이 저렴해졌고, 병원정보시스템과 같은 전자건강기록 인프라도 구축돼 풍부한 임상과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과 상호운영성이 향상됐다. 또 스마트폰, 웨어러블 등 모바일 기술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지금이 정밀의료의 적기”라고 밝혔다.

    김태유 서울대암병원장은 “현재 정밀의료는 초기단계에 진입하는 수준으로 향후 미래 가치는 더 크다”면서 “정밀의료에 대한 단기적이고 산발적인 투자가 아니라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꾸준한 투자와 육성이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공성이다. 모든 국민들이 정밀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만 진정 가치가 있다. 정밀의료는 우리가 꼭 추구해야하는 분야”라며 국가 차원의 정밀의료 플랫폼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백롱민 원장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헬스케어의 혁신적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ICT기술과 헬스케어의 융합에 선제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면서 “제도와 법령을 정비해 미래 의료체계의 기반과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산업화해 전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열홍 고대안암병원 교수는 “정밀의료는 정부 주도의 정책적 지원 계획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며 “컨트롤타워도 필요하지만 이를 제대로 주도할 수 있는 리더가 있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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