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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경영시계 '올스톱'…창사 이후 첫 오너가 구속

  • 한동희 기자
  • 입력 : 2017.02.17 05:45

    삼성그룹이 1938년 창사 이후 79년 만에 처음으로 오너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법원은 17일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와 국외재산도피 등 5가지 혐의로 재청구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삼성그룹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삼성 안팎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총수의 구속으로 수십년간 쌓아온 브랜드 가치·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은 물론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부패기업으로 낙인찍혀 벌금 부과와 계약 파기 등의 사태가 벌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삼성은 2017년 사장단·임원 인사는 물론 사업·투자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리더십 공백과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재계 1위 그룹이 앞날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삼성 경영시계 '올스톱'…창사 이후 첫 오너가 구속
    재계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기업도 피해자'라는 논리가 깨졌기 때문이다.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설립을 주도한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낸 다른 그룹의 총수들도 구속영장 청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총수 사면 등 민원 해결을 바라고 출연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SK, 롯데, CJ 등이 다음 타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삼성 리더십 공백에 경영시계 ‘올스톱’

    이 부회장의 구속이 확정되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엔 불안감이 휩싸였다. 삼성의 한 직원은 "지난해 말 인사와 투자가 지연되면서 내부 업무가 정체된 상태"라며 "이런 문제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했다.

    삼성에서는 이 부회장의 공백으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데 특히 우려가 크다. 미래 먹을거리인 ‘바이오’ 사업 육성이나 80억달러(9조4000억원)짜리 미국 기업 하만 인수와 같은 결정을 미래전략실이나 전문경영인이 독단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9년 전 2008년 '비자금 특검'을 받으면서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이 한꺼번에 불구속 기소되면서 경영 일선에서 동반 사퇴했다. 하지만 그 때는 '이재용 전무'라는 확실한 후계자가 있었다. 현재의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할 구심점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조선DB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조선DB
    재계 관계자는 "삼성 총수를 비롯해 주요 경영진이 피의자 신분이 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지 악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전장(電裝)회사 하만이 오는 17일 미국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삼성전자로의 피인수 안건을 논의하는 데 이 부회장의 구속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뜩이나 하만의 일부 주주들은 삼성에 인수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갤럭시노트7의 실패 이후 삼성의 스마트폰 사업 성패가 달린 차기작 '갤럭시S8' 출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이 단순한 오너가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협상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외교관’이라는 점도 삼성그룹에 뼈아픈 점이다. 이 부회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같은 글로벌 거물을 직접 만나 사업상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담판을 지을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기업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특허전쟁을 벌이면서도 계속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부회장의 숨은 중재가 영향을 미쳤다고 전자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이 품질경영을 강화하고 내부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는 2017년 사장단·임원 인사와 조직개편 등의 작업이 필요한데 현재 상황에서는 구체적인 시기조차 예측할 수 없다.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이나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 출신 사외이사 영입 등 굵직한 안건도 사실상 논의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이 인사, 조직개편, 투자 등 기업의 일반적인 경영활동조차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면서 “‘현장형 총수’가 쌓은 글로벌 인맥과 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은 삼성과 재계 전체에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 삼성, 글로벌 평판 '뭇매'…부패기업 낙인찍히면 후폭풍 클 것

    삼성 입장에선 뇌물 공여와 범죄수익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부회장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이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인 상황이라 법정에서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섰다.

    이 부회장의 뇌물죄가 확정되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신뢰도 추락과 함께 한국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해외 사업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우려감의 정중앙에는 미국 사법 당국이 삼성을 해외부패방지법(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적용 대상으로 삼을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게 자리한다.

    FCPA 적용 대상이 되면 해당 기업은 최대 200만달러, 개인은 최대 10만달러의 벌금과 최장 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또 수출 면허 박탈, 미국내 공공사업 입찰 금지, 증권 거래 정지 등의 제재도 받을 수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영국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FCPA와 같은 부패방지법을 시행하고 있어 한국 법원이 향후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한다면 삼성은 ‘동네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금까지 FCPA에 저촉돼 고액의 과징금을 낸 상위 10개 기업 중 9개가 비(非) 미국계 기업이다.

    막대한 벌금 뿐 아니라 삼성전자의 사업 파트너가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거부한다면 이동통신사와 유통채널을 통해 판매하는 스마트폰·TV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버라이즌, AT&T, 스프린트 같은 북미 이동통신 회사는 모두 해외부패방지법을 준수하며, 국제 사업 거래시 해당 규정을 이행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TV를 제조해 공급하는 유통채널인 베스트바이는 미국 해외부패방지법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적용 중인 반부패 관련 법을 준수한다는 내부 규정을 갖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외국인이 삼성전자 지분의 50%를 가진 상황에서 (총수 부재를 우려해) 주식 매각에 나선다면 주가가 하락하고 경영간섭이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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