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발표된 SK플래닛의 헬로네이처 인수 소식은 유통업계와 벤처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국내 대기업이 유통 스타트업(초기벤처기업) 지분 100%를 인수한 드문 사례였기 때문이다. 오픈마켓 11번가를 운영하는 SK플래닛이 신선식품을 24시간 내 수도권 지역에 배송하는 헬로네이처를 인수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의 코멘트가 쏟아졌다.

GS홈쇼핑 사옥 ‘GS강서N타워’ 전경.

그런데 이 거래로 함박웃음을 지은 업체가 한곳 더 있다. 국내 홈쇼핑 업계 1위 기업인 GS홈쇼핑이다. GS홈쇼핑은 2015년 말 헬로네이처에 투자해 1년 여 만에 21억원의 투자차익을 거뒀다. 신선식품 전문 전자상거래 업체가 주목받지 못하던 때 한발 앞서 이 분야에 투자한 것이다. 헬로네이처, 배민프레시, 마켓컬리 등이 급성장하며 신선식품 전자상거래는 최근 유통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로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GS홈쇼핑은 가장 활발하게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대기업 중 한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 GS홈쇼핑 벤처 투자금 1000억 육박…전자상거래부터 IoT(사물인터넷)까지

GS홈쇼핑은 TV 홈쇼핑 업계의 성장 동력이 둔화된 2011년부터 벤처 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미래전략본부 내 투자파트를 만들어 벤처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4일 GS홈쇼핑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말까지 GS홈쇼핑이 벤처 기업에 투입한 금액은 924억원에 이른다. 이 중 GS홈쇼핑이 직접 투자한 금액만 420억원이다. 나머지 500억원의 경우 벤처캐피털 알토스벤처스 등이 운영하는 벤처펀드의 LP(출자자)로 참여했다. 벤처펀드에 출자하기로 약속한 금액(약정금)까지 포함하면 GS홈쇼핑의 벤처 투자금액은 1360억원에 이른다.

GS홈쇼핑은 2011년 5월 영화감상평을 모아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버즈니’에 8억원(지분율 16.7%)을 투자한 후 매년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다. 총 15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GS홈쇼핑이 투자한 스타트업들.

투자 분야도 다양하다. GS홈쇼핑이 160억원(지분 80%)을 투자한 텐바이텐은 인테리어 상품, 특색있는 디자인 소품 등을 판매하는 업체다. 에이플러스비는 온라인 쇼핑앱 ‘29cm’를 운영한다. GS홈쇼핑은 이곳에 69억원(지분 96.8%)을 투자했다.

GS홈쇼핑과 직접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전자상거래 분야뿐 아니라 전자책 유통 플랫폼(탭온북스), 중고차 거래 1위 앱(헤이딜러), 관심사 기반 SNS 서비스(빙글), 실내 공기 품질 측정 사물인터넷(비트파인더), 동호회 기반 간편 송금 서비스(기프트업) 등에도 투자했다.

GS홈쇼핑 관계자는 “국내외 벤처투자를 통해 M&A나 신기술 확보 기회를 얻고, 성장 잠재력이 있는 신규 사업모델을 발굴해 육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 모바일 부문 실적 개선 등 시너지 효과…136억 이미 회수

GS홈쇼핑의 벤처투자는 투자차익을 보는 재무적 투자를 넘어 신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시도라는 평가도 받는다. 1석2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버즈니는 영화감상평을 모아 제공하는 업체였으나 GS홈쇼핑과 제휴, 홈쇼핑 상품 정보 및 평가를 결합한 ‘홈쇼핑모아’ 서비스를 모바일용으로 출시했다. 그 결과 GS홈쇼핑 이용객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홈쇼핑 관련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고, 모바일을 통해 홈쇼핑 상품을 사는 소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홈쇼핑모아의 작년 거래액은 1114억원으로 전년 대비 280% 급증했고, GS홈쇼핑 모바일 부문 매출과 거래액도 크게 늘었다. GS홈쇼핑의 작년 4분기 모바일부문 취급액은 379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2% 늘었다.

GS홈쇼핑의 모바일쇼핑 취급액·매출액 추이.

GS홈쇼핑이 다노에 투자한 것도 모바일 커머스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다. 다노는 다이어트 식단 전문 쇼핑몰 다노샵과 다이어트 매거진 다노앱 등을 운영 중이다. 다노앱은 작년초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2015년 10월 23억원을 투자한 비디오 스트리밍 회사 ODK 미디어와는 북중미 홈쇼핑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ODK 미디어는 한류 콘텐츠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여기에 홈쇼핑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재무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헬로네이처를 포함해 벤처기업 지분 매각을 통해 이미 136억원을 회수했다. 장기 투자가 대부분인 벤처 투자의 특성을 감안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GS홈쇼핑은 내부적으로 포트폴리오 기업의 현재 가치를 투자 원금의 170%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GS홈쇼핑 상거래 구조도.

CoE(Center of Excellency·전문가집단)을 통해 투자한 회사를 지원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것도 GS홈쇼핑의 특징이다. GS홈쇼핑 미래전략본부에 속한 CoE 멤버들은 마케팅, 재무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GS홈쇼핑과의 사업 연계방안도 모색한다. 헬로네이처의 대주주였던 패스트트랙아시아의 박지웅 대표는 “아무도 선뜻 믿어주지 않았을 때 GS홈쇼핑 등 투자자들이 헬로네이처 팀을 믿어줬다”며 “GS홈쇼핑의 CoE 조직을 통한 지원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