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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관객 몇 번 웃게 만드냐까지… 치밀한 사전 기획이 영화 성공 여부 결정

  • 최원석 기자

  • 입력 : 2017.02.11 03:00

    영화 '추격자' '곡성' 히트시킨 나홍진 감독
    '왜'라는 질문에 답할수 있나…

    "사전 기획이 얼마나 치밀한지 여부가 최종 작품의 성패를 결정합니다."

    '추격자'(2006년·국내 관객 505만명) '황해'(黃海·2010년·217만명) '곡성'(哭聲·2016년·688만명) 단 세 편을 내놓고 한국 대표 영화감독 반열에 오른 나홍진(43) 감독은 최근 위클리비즈와 인터뷰에서 "작품의 성공 가능성은 '그린 라이트(green light·상업화 승인)'를 받기 이전에 얼마나 그것을 면밀히 기획하고 설계했는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영화 시나리오 세 편을 전부 직접 쓴 그는 한국 영화계에서 독창성·작품성·상업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나홍진'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세 편 모두 프랑스 칸 영화제에 초대될 만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특히 '곡성'은 '최근 5년간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최고 시나리오'에 대한 설문에서 국내 대표 영화인 18명 중 8명의 선택을 받아 1위에 올랐다(영화 잡지 매거진M 조사). '곡성'을 지지한 8명 전원은 투자·배급·제작 관계자 즉 비즈니스 전문가들이었다. 나 감독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비결로 왜 사전 기획을 꼽았을까.


    나홍진 영화감독은 “이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면
    나홍진 영화감독은 “이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면, 그 방향이 자연스럽게 영화의 구조로 이어지고 명확한 플롯을 만들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 이태경 기자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뭘까.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만들어야 할까. 왜 봐야 할까. 왜 투자해야 할까. 영화 관계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영화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하면 오래 더 많은 극장에 걸리도록 해야 할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존재 이유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소재다. 하지만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를 이리저리 쫓아다니지 않고, 사회 문제나 상황 중에 계속 마음 쓰이는 것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 오래 기다리는 것은 그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뒤에 기다리고 있는 시나리오 작업, 촬영, 후반 작업 등 수년에 걸친 혹독한 시간을 견딜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재에서 그런 강렬한 확신이 들어야 한다. '추격자'에서는 중동의 한국인 피랍·살해 사건, '황해'에서는 이주 노동자 문제, '곡성'에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이상함, 정리되지 않는 혼탁한 분위기 등이었다."

    좋은 건축(촬영)은 의도된 설계의 결과

    ―소재에 관해 확신이 든 뒤 무엇을 하나.

    "아주 많은 반복과 수정을 통해 이야기 구조(플롯)를 만들어 낸다. '곡성'은 시나리오 작업만 3년 가까이했다. 개봉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염두에 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촬영은 물론, 배우에게 연기시킬 때의 상황, 관객이 몇 번 웃고 어떤 기분에서 어떤 변화를 겪으며 이 영화의 끝까지 가기를 원할지 전부 생각하며 썼다."

    ―플롯은 어떻게 꾸며가나.

    "'왜 만들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면 플롯은 점점 명확하고 단순해진다. '곡성'은 '분명한 이야기가 있음에도 영화가 걸어놓은 장치로 인해 이것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다. 영화에 여러 장치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관객은 깔끔한 플롯을 봤음에도 혼란을 느끼도록 의도했다."

    영화곡성기획과정
    좋은 기획에서 리더십도 나온다

    ―'곡성'은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고 화제가 된 영화였다.

    "그렇게 하려면 오히려 더 면밀한 초기 기획이 있어야 한다. 만드는 사람이 처음부터 방향성과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야 한다. 이 영화는 오컬트(초자연적 현상)적 요소가 들어 있다. 오컬트 영화가 유행한 것은 미국의 1970년대 오일쇼크 때였다. 베트남전 패배, 경제적 침체, 매카시즘(극단적 반공산주의)의 잔영, 광신도 집단의 출현 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했다. 이때 엑소시스트(1973년) 오멘(1976년) 등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추격자' '황해'는 하나의 사건에 초점을 맞췄는데, '곡성'은 사건보다는 어떤 분위기를 담으려 했다. 전체적인 것을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내용의 아귀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영화 안에 넣고자 하는 요소들을 꿰뚫고 나가는 공통의 방향성이 안 보였다. 왜 찾을 수 없을까를 오래 고민하다 오컬트 즉 초자연적 현상을 넣었더니 해결이 됐다. 그러면서 과거 오컬트 영화가 나왔던 시기와 지금의 세상 분위기가 흡사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 거다. 그리고 개봉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사회 상황이 더 좋아질까 나빠질까 그것이 영화 반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해서도 자문해가며 기획을 마무리해 나갔다."

    ―곡성의 경우 이십세기폭스라는 할리우드 제작사, 그리고 뛰어난 배우·스태프와 같이 일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나.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최고를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확신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촬영장에서는 이것저것 다 해볼 수가 없다.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대개는 하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때는 시나리오 작업 즉 설계를 했을 때 확신이 건축(촬영)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준다. 처음 시나리오 쓸 때 최대한 다양한 상황을 만들고 그 길을 가본다. 그런 길을 사전 기획 단계에서 다 가봤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창의성은 절실함의 산물

    ―기업에 창의적인 경영이 화두다. 당신 영화 세 편은 어느 하나 독창적이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 원천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는 절실함이다. 생각했던 것을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볼 것 같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 쓰는 과정에서 지치고 힘이 들더라도 그 이야기의 힘이 내 안에 살아 있다면 버텨낼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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