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in
depth Trend

[Weekly BIZ] 충격 뒤에 또 충격… 국가 부도 위기에 빠진 신흥국

  • 시카고(미국)=남민우 기자

  • 입력 : 2017.02.11 03:00

    [Cover Story] '국제 금융 석학' 라구람 라잔·카르멘 라인하트의 경제 진단

    2013년 12월 9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양적 완화 규모를 줄이겠다는 '테이퍼링(tapering)'을 공식 선언했다. 양적 완화는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행했던 대표적인 돈 풀기 정책이다. 버냉키 의장은 그해 5월부터 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공식 발표가 나오자 신흥국 주가와 통화가치는 속절없이 급락했다. 금융시장이 한 달 넘게 요동쳤다. 신흥국 경제 수장들은 너도나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위기에 대응할 능력을 갖췄다"며 방어에 나섰다. "주가와 통화가치 폭락은 투기 세력의 음모"(아르헨티나 경제부 장관)라는 극단적인 발언도 터져나왔다. 침묵을 지켜온 라구람 라잔 당시 인도 중앙은행 총재 역시 "미국이 국제금융 협력 체계를 무너뜨렸다"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흥국 투자금을 급격히 회수하면서 신흥 국가 가운데 '희생양 찾기' 게임이 벌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흥국 부채 위기설'이 처음 등장한 것은 연준이 통화정책 기조를 선회한 이 무렵부터다. 골드만삭스는 신흥국 부채 위기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10년 유럽 재정 위기의 뒤를 이을 '제3의 파동'이라 불렀다. 모건스탠리는 브라질·인도네시아·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를 대외 충격에 약한 '취약 5개국'으로 분류했다. 신흥국 대표 주자인 중국의 금융 위기설도 신흥국 비관론자들의 단골 주제다. 실제로 미국이 테이퍼링을 선언한 다음 해인 2014년 아르헨티나는 디폴트(부도)를 선언했다.

    그래픽
    사진=Getty Images, 그래픽=김현국 기자
    미국발 이중 악재 맞은 신흥국

    신흥국 부채 위기는 연준이 지난해 12월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증폭되고 있다.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신흥국들은 경제 규모 대비 국내외 부채 규모가 큰 탓에 금융·외환 위기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하다. 둘째, 외화 부채가 많은 반면, 외국인 투자는 공장 설립 같은 직접투자(FDI)보다 주식·채권 같은 금융 투자에 편중됐다. 따라서 투자 환경 악화 시 외국인들이 자금을 급속히 빼내갈 가능성이 과거보다 더 커졌다. 셋째, 신흥국 수출은 원자재 비중이 높은데,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 외환보유액 등 외환 위기 대응 수단이 약해졌다.
    연준은 미국의 고용 상황이 좋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흥국을 압박하는 변수가 하나 더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미(對美) 무역 흑자국을 상대로 선포한 환율 전쟁이다. 미국 제조업체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대체로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화 가치도 같이 오르기 때문에 신흥국은 무역 흑자를 내기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환율 조작'을 거론하며 무역 상대국의 통화가치 상승을 압박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무역 보복에 나서면 신흥국은 금리 인상 압력과 무역 수지 악화의 이중고를 겪게 된다. 신흥국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정부·민간 부채를 늘려왔기 때문에 부채가 많은 신흥국의 경우 부채 폭탄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기준금리 인상에 트럼프 대통령의 환율 전쟁이라는 변수를 맞은 신흥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위클리비즈는 최근 국제 금융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라구람 라잔(Rajan·54)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와 카르멘 라인하트(Reinhart·61) 미국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를 만나 신흥국 위기에 대한 의견과 전망을 들었다. 두 교수 모두 경상수지 적자와 대외 부채 규모가 큰 신흥국은 올해 외환·금융 위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흥국 경제가 연쇄 위기를 겪은 것은 1980년대 초반 중남미 외환 위기와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외환 위기가 대표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상당수 국제 금융기관은 과거 사례에 비춰봤을 때 통화 팽창기 이후 선진국이 통화정책 기조를 바꾸면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신흥국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 21%에서 2014년 36%로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은 신흥국 위기 가능성에 예전보다 더욱 주목하고 있다.

    라구람 라잔 외
    라구람 라잔(사진 위) 카르멘 라인하트 /블룸버그
    논점1 신흥국 부채 위기 확률은

    ―신흥국을 향한 경고가 숱하게 쏟아졌지만, 지금까지 대체로 잘 견뎌오지 않았나.

    카르멘 라인하트: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신흥국이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 덕분이었다. 또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많은 신흥국이 재정적으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신흥국의 '번영기'였다. 선진국이 경기 침체에 빠진 반사 이익으로 신흥국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기간에 부채 또한 많이 증가한 게 문제다. 2013년부터 최근까지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빚으로 경제성장을 지탱해온 신흥국 경제 성장률이 뚝 떨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지난해 말 기준 금리를 올리면서 경제 체력이 약한 일부 신흥국이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천문학적인 부채 수준도 문제다. 1997년 한국·태국·필리핀 등 동아시아 국가가 외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대외 부채 수준이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는 다르다."

    라구람 라잔: "일부 신흥국은 금리 인상 등 급변하는 국제 금융 환경에 대처할 준비가 미비하다. 최근까지 세계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세계경제가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크고 대외 부채 규모가 큰 신흥국에선 이미 이상 징후가 보이고 있다. 지금은 글로벌 유동성(자금)이 넘쳐 흐르지만, 유동성은 한 번 마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증발한다. 금리 정상화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국가가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저금리로 밀물처럼 몰려온 달러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때 해변에는 무엇이 남아있을지, 즉 금리가 오르면 정확히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아직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어느 신흥국이 특히 위험해 보이는가.

    라인하트: "이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는 달러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사회가 더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브라질·터키 등 경제 규모가 큰 신흥국이다. 국가 부채는 치솟는데, 경제 회복력은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부채 폭탄'이 갑자기 터지는 게 아니다. 누적 요인이 쌓여 한꺼번에 터지는 것이다. 또 과거 위기와 다른 점은 신흥국이 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신흥국마다 처방전도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공공 부채 규모가 너무 커서 정부가 재정 확대에 나설 여력이 거의 없다. 중국은 오히려 거꾸로 부실기업에 돈을 계속 빌려주고 있어 정부가 오히려 위험을 키우는 모양새다."

    논점2 트럼프 환율 전쟁, 어떻게 대응?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이 수년간 환율 시장을 조작해 시장을 농락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도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큰 폭으로 절하해 미국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전 세계는 트럼프 정권이 본격적으로 '환율·무역 전쟁'에 돌입할 것인지를 두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일본은 중앙 부처가 집결해 있는 가스미가세키 지역에서 경제 부처 장관들이 일제히 기자회견을 갖고 "트럼프의 발언에 오해가 있다"며 해명에 나섰다. 중국·독일 등 트럼프에게 공격받은 다른 나라들도 장관급 인사나 대변인이 직접 나서 트럼프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트럼프의 보호주의 환율·무역 정책이 신흥국에 미칠 영향은.

    라잔: "이 추세대로라면 세계 무역량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미국의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금리 인상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세계 곳곳에 트럼프처럼 강한 이미지를 갖고 싶어하는 리더들이 많아져 무역·환율 전쟁이 더 심해질 수 있어 우려스럽다. 신흥국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발언을 보고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상당수 신흥국이 미국의 요구와 압박에 따라 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시장에 따른 희생과 비용도 대부분 신흥국이 감수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미국 등 선진국이 개방했던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게임의 룰'을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금리 인상기에 보호주의 무역까지 득세하니 신흥국 경제 당국자들이 잠 못 이루는 날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

    라인하트: "트럼프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팔고 위안화, 엔화 등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달러화 약세 없이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1980년대처럼 일본은행과 손을 잡을 수도 있는 일이다. 미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했던 것은 1990년대 클린턴 정부가 마지막이었다. 미국이 인위적으로 통화 가치를 끌어내리면 신흥국은 여지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의 달러화 약세 정책은 신흥국 부채 부담을 일부 줄이는 효과가 있겠지만, 한국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또 이는 무역 보복이 동반되는 조치라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신흥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라인하트:"한국이나 중국처럼 무역에 의존하는 신흥국과 브라질·아프리카 등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신흥국의 대응 방법이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에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신흥국은 달러화 약세가 위기 가능성을 줄여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정 여력을 비축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교훈 삼아 신흥국도 정부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부채 구조조정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압박에 맞불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무역 전쟁이 '치킨 게임'으로 흐르면 모두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온다. 1980년부터 2008년까지 전 세계 무역 규모는 매년 6%씩 늘었다. 2009년부터 최근까지는 증가세가 절반 수준에 그친다. 세계 무역 규모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무역 장벽을 더 쌓아올리면 세계경기 침체는 더 오랜 기간 이어질 것이다."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무엇인지.

    라잔: "트럼프가 협상용 압박 카드로 무역 장벽을 올리겠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경제학자들의 걱정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트럼프가 본인의 말을 실천하기 시작한다면 세계경제는 순식간에 더 침체에 빠질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는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트럼프가 돌출 행동에 나서지 않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라인하트: "중국과 미국 경제가 회복을 이끌면서 원자재 가격이 오름세로 돌아서면 신흥국의 위기 발생 가능성도 낮아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트럼프의 행보로 볼 때 아직 세계경제를 낙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논점3 신흥국도 금리 올려야 하나

    ―신흥국도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하나.

    라잔: "금리 인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금리 인상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것은 감내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 국가에서 저금리 환경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기간 초저금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투자나 소비를 늘리는 데 제 역할을 못했다. 오히려 저축 생활자나 연금 수령자의 이자소득을 낮춰 소득 격차를 벌렸다.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다른 신흥국도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도록 숨통이 트였다고 생각한다."

    라인하트:"통화정책이 경기 부양의 주요 수단이 될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일부 신흥국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금리를 더 인하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점은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 결국 신흥국은 미국보다 더 많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저금리의 부작용은 점진적으로 쌓여오다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때 한꺼번에 쏟아진다."

    ☞ 라구람 라잔

    2013~2016년에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스타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최연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으며, 현재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 카르멘 라인하트

    쿠바 태생으로 금융위기 분야의 권위자이다. 2001년 IMF 근무 시절부터 과거 수백년간 발생한 각종 금융위기의 특성을 집중 연구했다. 2009년 발간한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며 대중에도 이름을 알렸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