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세종 관료 열전] 법인세 인상 막아낸 기재부 세금 전문가 최영록 세제실장

  • 세종=이현승 기자
  • 입력 : 2017.02.08 06:07

    "덴마크의 조세부담률이 얼만지 아십니까?"

    지난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최영록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야당 측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법인세 인상에 대한 의견을 묻자 대뜸 덴마크 얘길 꺼냈다. 그는 설 연휴 전 3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덴마크 출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가 덴마크 이야기를 꺼낸 것은 덴마크의 조세부담률(GDP 대비 조세총액 비율)이 48%로 세계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다. 100만원을 벌면 48만원을 세금으로 낸다는 의미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작년 기준 19%로 추정된다.

    양국의 차이는 소득세에서 벌어진다. 덴마크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우리나라와 같다. 덴마크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25%에서 23.5%로, 또 22%로 지속적으로 인하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유독 법인세 인상론이 정치권에 자주 등장한다.

    최 실장은 "덴마크의 세제당국 관계자를 만나 어떻게 법인세를 낮췄냐고 물었더니, '이웃나라인 스웨덴이 낮췄지 않냐'는 답이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법인세율을 올리거나 낮추는 문제는 이웃 국가의 정책을 참고해 조세경쟁력 측면에서 결정하는 것이 선진국 추세"라고 덧붙였다.

    최영록 실장은 2017년 세법 개정 내용 중에서 '국외전출세 도입'이 주목받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국외 전출시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해 20%의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것이다. / 고운호 기자
    최영록 실장은 2017년 세법 개정 내용 중에서 '국외전출세 도입'이 주목받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국외 전출시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해 20%의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것이다. / 고운호 기자
    ◆ 법인세를 지켜라… “선진국 내리는 상황이라 조세경쟁력 필요”

    지난해 12월 3일 국회를 통과한 2017년 세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법인세 인상론'은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야당이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상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야당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법인세는 최고세율이 아닌 실효세율(법인소득에서 기업의 국내납부세액이 차지하는 값)로 비교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실효세율이 하락 추세라고 주장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4년 국내기업들의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은 14.2%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하락했다. 예산정책처는 그해 기업들이 부담한 총 세액을 소득금액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법인세 실효세율을 계산했다. 예산정책처 계산 방법에 따르면 국내 법인세 실효세율은 2008년 18.3%까지 올랐다가 이후 하락 추세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예정처의 실효세율 계산 방식엔 문제가 있으며, 제대로 계산하면 실효세율은 오히려 오르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는 기업의 소득금액 대신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실효세율을 산출했고 외국납부세액공제 부분은 제외하고 계산한다.

    외국납부세액공제제도는 이중과세 조정을 위해 외국에서 납부한 세금을 국내 법인세에서는 공제해주는 제도다. 기재부 방식대로 계산하면 법인세 실효세율은 2013년 17.1%에서 2014년 17.2%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최 실장은 “그동안 기업에 대한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온 결과 실효세율은 상승하는 추세이고 세수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현 시점에서 법인세율 인상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최영록 실장을 비롯한 세제실 직원들은 국회의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우리나라의 법인세 명목세율과 실효세율이 모두 낮지 않다는 점과 주변국의 법인세 인하 추세 등을 설명했다.

    빼곡한 데이터를 들고 국회 이곳 저곳을 누빈 결과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안은 최종 세법 개정에서 빠졌다. 여야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안을 철회하는 대신 정부가 누리과정에 예산을 투입하고 고소득자 소득세율을 인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최 실장은 "법인세 인상은 국제적인 추세와 한국의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적절하지 않다"면서 "우리나라의 법인세 최고세율 22%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2.5%와 유사한 수준이고, 주요 선진국들은 오히려 조세경쟁력 확보를 위해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추세다"라고 강조했다.

    최영록 실장은 존경하는 선배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꼽았다. 그는 1년 간 이 전 부총리의 비서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거의 유일한 세제 이외의 업무였다. / 고운호 기자
    최영록 실장은 존경하는 선배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꼽았다. 그는 1년 간 이 전 부총리의 비서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거의 유일한 세제 이외의 업무였다. / 고운호 기자
    ◆ "올해 세입여건 녹록치 않아…트럼프 등 불확실성 커져"

    매년 세제실을 골치아프게 하는 문제 중 하나가 세수 전망이다. 세제실에선 매년 하반기에 그 다음해 세금이 얼마나 걷힐 지 전망해 국회에 제출하는데, 2012~2014년에는 실제 걷힌 세수가 전망치보다 적어 이른바 '펑크'가 났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세수가 오히려 예상보다 더 많이 걷혔다. 세수는 경기에 연동해 걷히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기가 그다지 좋지 않은데도 세수가 많이 걷혀 국민들의 불만이 컸다.

    최 실장은 "매년 세수 추계 모델을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전망치와 실제 수치 간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법인세가 전망했던 것보다 많이 걷혔는데, 기재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장법인의 영업이익률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당초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4% 정도 될 것이라 판단했지만 매출은 그대로인데 유가가 하락하는 등 비용이 감소하며 이익률은 두자릿수로 껑충 뛰었다.

    최 실장은 올해 세수 여건은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무엇보다 트럼프 신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통상정책이 어떻게 흘러갈 지 알 수 없게 돼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졌다"면서 "세계 각국의 성장 흐름은 약세를 보이고 미국이 기준금리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탄핵 정국에 빠져 정책당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 갈 만한 여건도 안 돼 걱정"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초과 세수를 환급하는 방식으로 경기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최 실장은 "세금 환급 정책은 일회성 소득지원 시책"이라며 "과거 미국, 일본에서 추진한 사례를 보면 소득 지원이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저축이나 부채 상환으로 이어지면서 경기부양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 세금 환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영록 실장과의 인터뷰는 두 차례 미뤄졌다. 국회와 세종시로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탓에 기재부 국·실장 중에서도 가장 바쁜 간부로 꼽힌다. / 고운호 기자
    최영록 실장과의 인터뷰는 두 차례 미뤄졌다. 국회와 세종시로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탓에 기재부 국·실장 중에서도 가장 바쁜 간부로 꼽힌다. / 고운호 기자
    ◆ "상위 1% 소득자가 소득세 42.8% 부담…면세자 비율 축소방안 만들 것"

    지난해 국회에서 소득세 최고세율을 38%에서 40%로 인상한 것에 대해 최 실장은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OECD 회원국 평균인 35.8%에 비해 높다"면서 "우리나라는 상위 1% 고소득자가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소득세액의 42.8%를 내고 있어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근로소득자의 절반에 달하는 면세자 비율을 낮추는 방안을 올해 안에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은 2015년 기준 46.8%에 달한다. 미국 35.8%, 일본 16.1%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2013년 세법 개정 이후 생겼다. 당시 연말정산 제도 개편으로 일부 계층의 부담이 늘자 국민들이 크게 반발하는 이른바 '연말 정산 파동'이 일어났다. 정부와 정치권은 공제 항목 조정에 나섰고 결과적으로 면세자 비율이 2014년 48.1%로 급등했다.

    최 실장은 "작년 2015년 7월 국회에 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 최저한세 적용 등 면세자 비율 축소방안을 보고했다"면서 "현재 조세재정연구원에서 소득수준별, 가구형태별 세 부담 변동에 대한 심층평가를 진행하고 있으며 결과가 나오면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율은 OECD 국가에 비해 많이 낮은 수준이라고 최 실장은 말했다. 그는 "앞으로 조세부담율 조정 문제는 적정 복지수준, 부담방법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해 신중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영록 실장은 후배들에게 꼼꼼하고 치밀한 업무 스타일로 유명하다. 워낙 오랫동안 세제 업무를 맡아왔기 때문에 후배들은 잘 모르는 조세제도의 도입 배경을 거의 대부분 알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 고운호 기자
    최영록 실장은 후배들에게 꼼꼼하고 치밀한 업무 스타일로 유명하다. 워낙 오랫동안 세제 업무를 맡아왔기 때문에 후배들은 잘 모르는 조세제도의 도입 배경을 거의 대부분 알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 고운호 기자
    ◆ "세금은 국민이 수용하는 것이 중요...토초세 도입 실패하며 얻은 교훈"

    세제실 공무원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스스로를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세금을 내는 일은 누구 하나 반기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하고서도 욕을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 실장은 기재부에서 세제 업무로 가장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1965년생인 최 실장은 대구 출신으로 영신고,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30회로 국세청 일선 세무서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1992년 재정경제부 세제실로 옮겨 재산세제과, 법인세제과, 조세정책과 등에서 주요 업무를 두루 맡았다. 세법을 만드는 일부터 제대로 집행이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까지 세제실 업무 전반을 경험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조세 원칙으로 ▲공정성 ▲효율성 ▲수용가능성을 꼽았다. 최 실장은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담세 능력 따라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정부는 납세자의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제도로 뒷받침 해야 한다"면서 "동시에 세금을 내는 당사자들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수용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3년 연말 정산 파동 때도 국민들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국회와 언론을 상대로 세법 개정의 취지를 꼼꼼하게 설명하고, A부터 Z까지 이르는 다양한 대안을 검토해 보완방안을 만든 것은 유명한 일화다.

    최 실장은 국세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 도입 업무를 맡은 것이 이런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소개했다. 토초세는 1990년대 시행된 제도로 비업무용 토지의 가격 상승으로 생기는 초과이득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당시 국민들이 크게 반발했고 헌재에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폐지됐다.

    당시 칠곡 지역이 토초세 부과 대상지역이 되자, 이에 반발한 군민들이 사무실을 점거하고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최 실장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국민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세제실 내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로도 불린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개별 기업을 지원하는 일을 세계무역기구(WTO)의 반대로 못하게 되자 기업들이 합병, 분할 과정에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제·개정 하는 업무를 주도했다.

    최 실장은 세제실 공무원은 무엇보다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세청 등 관계기관에게 전문가로서 인정 받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스스로도 세제실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해온 경험을 살려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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