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삼성) 잡겠다"는 최태원 회장, 2개월새 19조 베팅…日도시바 지분 투자해 협공 나설까

입력 2017.02.07 06:00

“SK하이닉스가 더 강한 반도체 회사가 되려면 낸드플래시(Nand flash) 기술과 원가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10월 열린 SK그룹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박성욱 당시 SK하이닉스 사장(현재 부회장)에게 당부한 말이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최 회장은 박 사장을 SK하이닉스의 모기업인 SK텔레콤(사장)보다 높은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힘을 실어줬다.

최 회장은 이어 15조원 규모의 낸드플래시 청주 공장 건설을 발표했고, 지난달에는 LG계열의 실리콘웨이퍼 생산업체 LG실트론을 6200억원에 인수했다. 약 2개월 동안 무려 19조원의 인수 및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최 회장이 올해 경영화두로 말한 딥체인지를 몸소 보여줬다.

지난 2011년 1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하이닉스 인수 이후 처음으로 경기도 이천 공장을 방문해 당시 박성욱 하이닉스 부사장(가운데)의 공장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SK하이닉스 제공
최 회장은 세계 2위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업인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부문 지분 인수를 진두지휘하며 딥체인지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7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도시바가 메모리 사업부문 지분 매각을 위해 벌인 입찰에 지난 3일 제안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바 지분의 매각가는 3000억엔(약 3조310억원) 안팎으로 예상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매각 지분 전량을 사기 위해 3조원 이상을 적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이번 지분 참여로 D램에만 치중돼 있는SK하이닉스의 매출구조를 개선하고, SK하이닉스를 그룹의 핵심 ‘캐쉬카우(Cash cow·현금창출원)’로 키울 예정이다.

◆ SK하이닉스, 도시바 지분 인수 왜?…아듀! 낸드플래시 약점 꼬리표

그동안 낸드플래시는 SK하이닉스의 약점으로 지적됐다. 20%가 넘는 점유율로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던 D램 시장과 달리,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점유율 10% 수준으로 샌디스크를 인수한 웨스턴디지털에 이어 4위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낸드플래시는 D램과 더불어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산맥’을 이룬다.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낸드플래시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의 저장장치에 주로 쓰인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도시바(19.8%)는 낸드플래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36.6%)의 뒤를 잇는 2위를 업체다. SK하이닉스 점유율은 3위 미국 웨스턴디지털(17.1%)보다 약 7%포인트 뒤처진 10.4%다.

SK하이닉스 연구원들이 회로가 집적된 웨이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도시바의 지분 매각 발표 후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6일 2016년 4분기 실적발표 직후 애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한 컨퍼런스콜에서 “도시바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거래가 성사된다면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1위 기업인 삼성전자 추격에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또 도시바는 자금력이 탄탄한 전략적 협력사를 얻게 되는 셈이다.

입찰에는 도시바의 기존 합작사인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일본계 사모펀드를 비롯한 재무적 투자자(FI) 등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참여가 유력하던 도시바의 반도체 장비 협력사인 캐논 등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는 조만간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을 인수할 경우 적지 않은 시너지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도현우 미래에셋 연구원은 “전통적으로 도시바와 SK하이닉스는 제품 개발에서 협력해 온 관계였고 현재도 자성메모리(MRAM), NIL(Nanoimprint Lithography) 등을 공동개발하고 있다”며 “SK하이닉스의 출자가 가능해진다면 시너지 효과로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경쟁력이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 발 빠른 지분투자 결정에는 최 회장의 ‘통 큰 베팅’

SK그룹의 이번 투자 결정은 이례적으로 신속한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수조 원대의 투자금을 결정한 데에는 최 회장의 ‘통 큰’ 베팅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2015년에도 일본 오이타현에 있는 도시바 이미지센서 공장을 인수하려고 시도했지만, 당시엔 최 회장이 옥중에 있었다”면서 “SK하이닉스 경영진이 검토하는 사이 소니가 선수를 쳐 약 1800억원에 오이타 공장을 사들였는데, 이번 도시바 지분 투자 건은 최 회장이 경영 현장을 진두지휘하면서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이 CEO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 SK그룹 제공
최 회장은 지난해 8월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계열사 임원 50여 명을 불러 일대일 면담을 진행했다. 2012년 인수 이후 효자 역할을 해오던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개발 지연 및 D램 가격 하락 등으로 실적이 악화되자, SK하이닉스가 처한 상황과 개선 방안을 직접 들은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당시 최 회장의 임원 면담 결과 등을 바탕으로 SK하이닉스의 사업 전략과 변화 방향, 방법 등 구체적인 해법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었다.

업계에서는 보고서에 낸드플래시 생산능력 증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갔고, 최 회장이 흔쾌히 동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는 최고 수준의 2차원(2D) 낸드플래시 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3차원(3D) 분야에서도 처음으로 개념을 고안한 경쟁력 있는 기업”이라며 “3조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의 투자를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오너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 SK, 반도체 중심의 그룹사 수직계열화 기대…자동차 등 신사업에도 긍정적

전문가들은 반도체 사업이 SK그룹사의 모든 사업과 연결되는 기반 기술인 만큼, 반도체 사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과 4차산업혁명 속에 SK그룹에 속한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등 주요 사업들이 모두 반도체와 직·간접적인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SK그룹이 전사 차원에서 자동차 토털 솔루션 사업도 펼치고 있어 반도체의 중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고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3월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정기총회에서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을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이미 몇몇 고객에게 반도체를 납품하고 있으며, 현재 고객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일부 자동차 업체에 인포테인먼트용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해왔고, 차량용 DDR2와 DDR3 SD램 등을 양산하고 있다. 또 SK하이닉스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마그네티마렐리와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용 임베디드멀티미디어카드(eMMC) 공급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의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과 함께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네트웍스, SKC&C 등 그룹사의 자동차 부품·솔루션 경쟁력이 더해질 경우 큰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SK텔레콤은 매월 약 800만명이 사용 중인 T맵을 앞세워 커넥티드카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기아자동차, 르노삼성, 재규어 일부 차종에는 T맵이 탑재됐다.

SK이노베이션은 메르세데스벤츠와 차기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외에도 SK네트웍스는 전기차 충전시설과 렌터카, 중고차 사업을 펼치고 있고 SKC&C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정 자동화 시스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도시바에 지분을 투자해 1등(삼성전자)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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