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는 네이버로 인해 해산의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네이버의 약속 불이행으로 재단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6일 오전, 주요 일간지 1면 광고란에 중소상공인희망재단(이하 희망재단)의 ‘호소문’이 올라왔다. 희망재단은 2014년 중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재단으로, 네이버가 총 500억원을 출연하기로 돼있었다. 네이버에서 약속한 500억원 중 400억원을 출연하지 않아 재단이 해산될 위기라는 게 희망재단 측 주장이었다.
최승재 이사장을 포함한 5명의 이사진은 이날 이사회에서 네이버의 약속 불이행을 강하게 규탄하며 보직을 내려놓았다. 임기가 만료되자 연임을 포기하고 희망재단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 네이버·미래부 “약속 안 지킨 건 희망재단...기금 연계운용 약속 어깃장”
희망재단 ‘호소’의 전말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네이버는 물론 희망재단의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네이버가 출연한 또다른 재단인 인터넷광고재단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희망재단의 설립이 결정된 것은 지난 2013년 9월의 일이다. 같은 해 5월 네이버가 골목상권을 침해해 벤처·중소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지적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시작하자, 네이버측에서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협의체를 재단 형태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당시 네이버·소상공인연합회의 공동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김상헌 네이버 대표이사는 “재단 설립 및 운영 비용과 문제 해결에 드는 비용 모두 네이버가 전적으로 부담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네이버는 실제로 2014년 2월 희망재단 설립 직후 100억원을 출연했고, 나머지 400억원은 200억원씩 2년에 걸쳐 마저 출연하기로 했다.
희망재단 설립은 네이버가 공정위에 신청한 ‘동의의결’의 일환이었다. 동의의결제란 공정거래법을 위반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일으킨 사업자가 스스로 재발 방지 대책을 제안하고 피해 보상 등 시정 방안을 제안할 경우 공정위가 의견 수렴을 거쳐 과징금 부과 등 법적 제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과징금을 부과 받을 것을 염려한 네이버가 재단 설립을 조건으로 조사 종결을 제안하자,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네이버는 동의의결 조건으로 ‘기금 연계 운용’이 있었다고 말한다. 네이버 측이 주장하는 동의의결서에 따르면, 네이버는 각각 500억원, 200억원을 출연해 희망재단과 인터넷광고재단을 설립하되, 희망재단에 출연하기로 한 500억원은 인터넷광고재단과 연계 운용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희망재단이 500억원을 인터넷광고재단과 공동으로 운용한다고 합의해야만 네이버가 400억원을 추가 출연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네이버 관계자는 “그 당시 김기문 전 희망재단 이사장도 기금 연계 운용에 동의하는 합의서를 작성했다”며 기금 연계 운용은 두 재단 간에 합의가 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희망재단에서 뒤늦게 반기를 들며 연계 운용에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나오자, 네이버에서도 남은 400억원을 출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희망재단에서 기금 500억원에 대한 중장기 발전 계획 제출을 미루고 있는 것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희망재단의 주무부처인 미래부에 따르면, 재단은 설립된 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중장기 계획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
송상훈 미래부 인터넷제도혁신과장은 “지난해 희망재단에 기금 운용과 관련해 중장기 계획을 제출하라고 독촉 공문을 보냈고, 이에 광고재단에서 10월 희망재단에 기금 공동 운용과 관련된 논의를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송 과장은 “그러나 희망재단에서 ‘왜 내 돈을 다른 재단에 줘야 하느냐’며 반발해 중장기 계획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희망재단 “기금 연계 운용 정식 합의된 것 아냐...네이버 생색만 내”
두 재단 간 기금 연계 운용과 관련, 네이버와 미래부의 주장에 대해 희망재단측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최승재 이사장은 “희망재단은 애초에 네이버가 소상공인을 도와준다는 목적으로 만든 재단”이라며 “50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뒤늦게 동의의결에 연계 운용이라는 항목을 넣어,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생색만 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이사장은 동의의결이 확정된 뒤 2014년 2월 네이버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 이사장은 전임자인 김 전 이사장이 기금 연계 운용에 합의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정식 합의나 계약 형태가 아니라 협의서를 써줬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이사장이 변호사 비용 등 인건비 명목으로 1년에 7800만원을 광고재단에 지급하겠다는 내용으로 협의서를 작성했을 뿐, 기금 공동 운용에 대해 합의한 적은 없다는 주장이다.
최 이사장은 희망재단이 중장기 발전 계획서 제출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도 정면 반박했다. 그는 “출연금이 없으면 사업 계획을 못 만든다”며 “네이버가 약속한 돈도 내놓지 않는 상황인데 사업 계획부터 만들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2년만에 다시 재단 운영이 파행으로 치닫은 가운데, 400억원을 둘러싼 희망재단과 네이버·미래부·광고재단 간 신경전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더군다나 재단을 만든 주체인 네이버가 “우리는 이 문제에 직접적인 책임이나 권한이 없다”며 조심스레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이어서, 분쟁을 조절해야 할 주체가 누구인지도 오리무중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