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ㆍ사회

‘피해자 VS 피의자’...삼성 '뇌물' 혐의 적용 두고 법리공방 예고

  • 정준영 기자
  • 전효진 기자
  • 입력 : 2017.01.12 17:57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최순실(61·구속기소)씨 일가를 지원하는 대가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얻어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 수뇌부의 혐의를 놓고 법조계에서 법리 공방이 뜨겁다.

    특검은 지난주 삼성그룹의 ‘2인자’인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데 이어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공개 소환해 ‘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핵심이 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수사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법조계 관계자들은 “상대가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강요’와 반대급부를 바라고 자의적으로 자금을 전달한 ‘뇌물 공여’가 피의자에게 동시에 적용되는 경우(판례)는 거의 없다”면서 “사상 초유의 사태로 법정 공방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 ‘강요에 의해 뺏긴 돈 VS 대가성 있는 뇌물’...법리 공방 치열

    기존 검찰 수사에서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냈던 재계에 대해 청와대 혹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관심사'라는 모종의 압력에 의해 돈을 낼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로 판단됐다. 하지만 특검팀은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재계에 대해 대가성 있는 뇌물을 제공한 뇌물수수 혐의 ‘피의자’까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기존 판례에 비춰볼 경우,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그룹 전반에 대한 대가성 여부 등 뇌물수수 혐의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기업의 자금 지원 및 대가성 여부에 대해서는 2000년 현대그룹의 대북 송금사건의 경우, 서울지방법원은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서 현대가 사업권 용인을 바라고 4억 5000만 달러를 송금했는지 여부에 대해 직무집행과 금품 사이 대가성에 대한 상호 인식이나 양해 없이 막연한 선처 기대 등 무관한 동기로 준 것은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당시 현대상선은 국정원의 협조를 받아 4억5000만달러를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가 지정하는 계좌로 송금하고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았다.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현대그룹이 부도가 나면 정부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산업은행에 "국책은행으로서 신속히 지원해달라” 등의 취지로 지시했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왕자의 난’)과 적자 심화로 대외신용도가 상당히 하락한 상태로 대출 기준에 한참 미달했지만, 산업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남북 관계에 미친 영향과 역사적 의미 등 고려했을 때 사람마다 대가성을 판단할 때 각자 다른 기준으로 판단되기에 주관적인 면이 있고 (대가성에 대한) 용어 자체가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대가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고 판결했다.

    현대상선 본사./연합뉴스 제공
    현대상선 본사./연합뉴스 제공
    제 3자 뇌물공여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판례도 있다. 2009년 1월 대법원은 변양균·신정아 사건에서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고 있던 변양균씨가 미술관 전시회 후원을 요청해 기업 관계자들이 성곡미술관에 후원금을 댄 것을 두고 ‘무죄’로 판단했다.

    뇌물죄 성립을 위한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지 않은 탓이다. 대법원은 “직무집행과 금품 사이 대가성에 대한 수수·공여자 쌍방의 인식이나 양해 없이 뇌물 제공이 막연한 선처 기대에 의한 경우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기업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일상적인 모든 현안에 대해 유리하게 해달라’ 같은 청탁으로 주머니를 열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다만, 뇌물수수의 주체가 대통령인 경우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은 신군부 수괴 뇌물 사건을 다룬 1997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뇌물성을 인정하는 데에는 특별히 의무위반행위의 유무나 청탁 여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서 “뇌물이 대통령의 직무에 관해 공여되거나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도, 직무행위가 특정된 것일 필요도 없다”고 판결했다.

    ◆ ‘피해자 VS 피의자’ 갈림길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특검 “배임⋅횡령 혐의도 검토"

    삼성그룹은 최순실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스포츠의 전신 코레스포츠와 2015년 8월 220억원 규모 컨설팅 계약을 맺고 78억원을 지원했다. 또 최씨가 조카 장시호(38·구속기소)씨를 앞세워 동계스포츠 이권을 노리고 설립한 것으로 지목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2015년 10월, 2016년 3월 두 차례 총 16억2800만원을 후원했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삼성이 박 대통령의 ‘직권남용, 강요’ 혐의 피해자라고 일단 결론내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삼성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피해자’를 자처하면서 구체적인 혐의를 파헤치기에는 수사기간이 짧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조특위 청문회에서도 "단 한 번도 뭘 바란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면서 출연하거나 지원한 적이 없다"며 대가성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특검은 그러나 이 부회장의 국회 진술이 허위라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을 조사한 뒤 삼성의 지원이 불법이라고 판단되면, 박 대통령에게 뇌물수수 또는 제3자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지원의 직접 수혜자는 최씨 일가지만,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를 이른바 ‘경제 공동체’로 볼 경우 직접 뇌물죄 적용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검팀은 법인 자금을 동원한 출연·지원 행위가 경영자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이규철 대변인이 장시호 씨가 제출한 태블릿PC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이규철 대변인이 장시호 씨가 제출한 태블릿PC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현재 특검팀 내부에서는 장시호씨가 특검에 제출한 삼성 갤럭시탭(SM-P815모델)을 이 같은 혐의를 좌우할 주요 증거로 보고 있다. 최씨가 2015년 7월~11월쯤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태블릿PC에서는 최씨의 코레스포츠 설립 과정 및 삼성 지원금 수수 정황이 담긴 이메일이 담겨 있다. 특검팀은 “최씨가 ‘승마선수 지원’이라는 명목과 달리 코레스포츠에서 자금을 빼내 부동산 매입이나 각종 생필품 구입 등에 유용하고, 관련 세무까지 처리한 내용이 상세히 담겼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태블릿PC 사용시기와 관련해서도 눈여겨 보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태블릿에서 발견된 최씨의 이메일 계정 사용일이 (박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하루 전인)7월 24일부터”라며 보건복지부의 외압으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한 것을 두고 연관성이 있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한편 법조계 일각에서는 태블릿PC 출시일이 2015년 8월 초인 점에 비춰 증거능력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특검 관계자는 “일반인 출시 전 삼성 임직원에게 시제품으로 나온 것이 최씨에게 전달됐을 가능성, 연동사용이 가능한 이메일(G메일) 계정 특성상 출시시점과 이메일 발견날짜가 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태블릿PC 현물 자체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이메일 송수신 시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특검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진술 태도, 불법 관여 정도에 따라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정할 방침이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삼성 수뇌부에 대한 신병처리도 함께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특검 관계자는 “원론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두고 있다”면서도 “수사 진행 이후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로 아직 특별히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낸 출연금이 ‘뇌물’ 성격을 갖는지 여부에 대한 법리 판단도 검토 중이다. 현재 대가성 의혹이 제기된 곳은 총수 사면이나 면세점 인허가를 바라고 비선실세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SK그룹과 롯데그룹 등으로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검 관계자는 “재단 출연금에 대한 검토 결과에 따라 관련 대기업도 (수사 여부를) 함께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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