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ㆍ사회

[진단 반기문]③ '노신영' 밑에서 승승장구 '노무현' 만나 화룡점정

  • 박정엽 기자
  • 입력 : 2017.01.12 14:13

    전두환정권 실세 노신영 전 총리와 인도에서 인연맺고 승승장구
    2001년 한러 정상회담 파문으로 시련...盧 '외교보좌관' 발탁으로 중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엘리트 관료로서의 공직생활은 노신영 전 국무총리와의 인연을 맺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후 외교부에서 승승장구하던 반 전 총장은 차관시절 한러정상회담 합의문에 미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과정에서 잠시 주변부로 밀려났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다시 발탁돼 중흥기를 맞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1일(현지시간) 오후 1시 미국 뉴욕 JFK공항을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있다. 반 전 총장은 공항에서 한국 언론과 간단한 인터뷰를 한 뒤 유순택 여사 등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 / 연합뉴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1일(현지시간) 오후 1시 미국 뉴욕 JFK공항을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있다. 반 전 총장은 공항에서 한국 언론과 간단한 인터뷰를 한 뒤 유순택 여사 등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 / 연합뉴스
    반 전 총장은 1970년 제3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 1972년 주인도대사관에서 첫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노신영 뉴델리총영사와 맺은 인연이 반 전 총장의 공직생활의 중요한 밑천이 됐다. 인도 근무를 마친 반 전 총장은 1980년 외무부 국제연합과 과장으로 일한 뒤, 1983~1985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시기(1985년) 반 전 총장은 미국 망명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동향을 파악해 주미한국대사관에 보고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1985년 노신영 국무총리 취임 후 총리의전비서관으로 발탁돼 본격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걸었다. 노신영 전 총리는 전두환 대통령 임기 동안 외무부 장관(1980∼1982년), 국가안전기획부장(1982∼1985년), 국무총리(1985∼1987년)를 지낸 정권 핵심이었다. 이 시기 반 전 총리는 외무고시 동기는 물론 선배들도 제치고 승진해, 이들에게 "일찍 승진해 죄송하다"는 취지의 편지를 써서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을 맡고 있는 이현재 의원은 이 때 반 전 총장의 직속 부하로 일하며 인연을 맺었다.

    반 전 총장은 이후 1987년 주미대사관 총영사, 1990년 외무부 미주국장, 1992년 2월 외무부장관 특별보좌관, 같은 해 9월 주미공사를 역임하며 미국통으로서의 내공을 쌓았다. 1994년 제1차 북한 핵위기 때는 주미 대사관 정무공사로 한미간 대북정책을 조율했고, 같은 해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체결과정에 기여했다. 1995년 외무부 외교정책실장, 1996년 외무부 차관보를 거쳐 같은 해 2월 김영삼 대통령 당시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을 맡았고, 같은해 11월에는 외교안보수석을 맡아 김영삼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1998년 12월까지 일했다. 이 시기 1997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시 밀사로 중국, 필리핀을 오가며 황 전 비서의 망명을 성사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에도 반 전 총장의 '관운(官運)'은 여전했다. 1998년 외무부 대사,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대사 겸 주비엔나 국제기구대표부 대사를 지냈고, 1999년 1월부터는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기구 준비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2000년에는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발탁됐다.

    승승장구하던 반 전 총장은 2001년 한국 러시아 정상회담 합의문 파문을 계기로 잠시 주변부로 밀려나는 시련을 겪었다. 당시 한러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 협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겼는데, 이를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문제삼고 나선 것. 당시 미국은 미사일방어(MD) 체제를 염두에 두고 ABM 제한 조약을 벼르고 있었다. 파문이 일고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반 전 총장은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반 전 총장은 5개월간 본부대기 후 2001년 9월 한승수 당시 외교부 장관이 겸하던 56차 유엔총회의장의 비서실장격으로 옮겼다. 이 자리는 이전까지 실국장급 보직으로 여겨지던 자리로 사실상의 좌천이었다. 일각에서는 이 시기 반 전 총장이 유엔 시스템을 익히고 각국 외교관들과 인맥을 쌓아 오히려 유엔 사무총장으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반 전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후 다시 중흥기를 맞는다. 2003년 2월 대통령의 가정교사로 불리며 신설된 '대통령 보좌관'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장관급의 국가안보 보좌관, 차관급의 국방, 외교, 경제, 정보과학기술 보좌관 등 총 5명 밖에 없는 자리였다. 2004년 1월 반 전 총장은 외교 보좌관으로 일을 시작한지 10개월만에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영전했고, 2006년 11월까지 장관직을 수행했다. 2004년 6월 이라크 무장단체가 김선일씨를 납치해 살해한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과 2006년 4월 동원호 피랍사건을 수습 과정에서 각각 책임론이 불거졌지만 노 대통령의 신임으로 장관직을 유지했다. 2006년 7월에도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및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로 야당이 경질론을 꺼냈지만 자리를 지켰다.

    2006년 반 전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을 업고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당선됐다. 아시아국가 차례의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노무현정부가 염두에 뒀던 홍석현 주미 대사가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낙마한 탓에 반 전 총장이 맞은 행운이었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