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ㆍ사회

[진단 반기문]② '존재감 없는 유령' vs '조용한 외교'…엇갈린 유엔 사무총장 10년 평가

  • 정원석 기자

  • 입력 : 2017.01.12 14:12 | 수정 : 2017.01.12 14:16

    “반기문 사무총장은 실패한 리더다.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이다. 반기문 총장이 10년 동안 임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우수한 능력과 자질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다.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이 반대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무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 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5월 21일 자에서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에 대해서 이 같은 평가를 내렸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기사에서 반 전 총장에 대해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그의 성과이지만 의전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임기응변에 약한 것은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평가는 지난해 12월 31일 반 전 총장의 10년 임기 종료를 앞둔 시점에도 반복됐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28일 발간된 최신호에서 유럽 외교전문가를 인용하면서 “C급 사무총장으로 남을뻔 했지만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이끌어냄으로써 B급으로 기억되게 됐다”면서 반기문 전 총장의 업적을 평가했다. 기후변화협약에서 온실가스 감축안을 도출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각종 국제분쟁을 중재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에서 이 같은 평가가 나왔다.

    다만, 유엔 내부에서 반 전 총장에 대한 평가가 나쁜 편은 아니다.

    지난해 9월 개막한 제 71차 유엔총회는 반 전 총장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 의장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피터 톰슨 유엔총회 의장은 성명에서 반기문 총장이 "프로페셔널리즘과 지칠 줄 모르는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 유엔을 이끌었다"고 칭송했다. 구체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대항하는 전지구적인 조치 마련을 가능케 했던 리더십 ▲지속가능발전 의제 채택으로 세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 ▲양성평등 등 인권 부문에 대한 흔들림없는 지지 등을이 업적으로 제시됐다.

    ◆ 비우호적인 서구 언론들

    서구 언론들의 비난은 지난 2007년에 시작된 10년 임기 내내 반 전 총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아시아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오른 반 전 총장에게 서구 언론들은 적대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사진=조선일보DB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사진=조선일보DB
    서구 언론들은 반 전 총장에 대해 “어디에도 없는 사람. 유엔을 무의미한 단체로 만들었다”(2009년 포린폴리시),“유엔의 투명인간”(2009년 월스트리트저널), “반기문은 어디에 있나. 놀라울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인물에 무력한 관찰자”(2013년 뉴욕타임스), “미국의 푸들”(2014년 폴리티코)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판을 이어갔다. 포린폴리시는 반 전 총장 임기 10년에 대해 “시리아에서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각종 분쟁에서 반 총장은 허수아비였다. 잘 봐줘야 치어리더였고 보통은 방관자 노릇만 했다”면서 “평화를 중재하기엔 카리스마가 부족했고, 영민하지도 못했으며 창조성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비판의 배경에는 반 전 총장이 각종 국제분쟁에서 제대로 된 중재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2007년 취임 당시 반 전 총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 등은 수단과 이라크 내전 종식, 북한과 이란 핵 해결, 성범죄 등으로 실추된 평화유지군의 명예회복, 유엔 개혁, 지구 온난화 대책 마련 등이었다. 10년이 지난 현재 이중 해결된 과제는 이란 핵 협상 타결과, 파리기후변화협정의 국제조약화 등이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핵 협상 타결, 난민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리아 내전 중재에 실패한 것도 반 전 총장에 대한 서구 언론들의 평가가 야박한 배경이기도 하다.

    유엔 평화유지군 관리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반 전 총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이다. 지난 3월에 발간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 지역 등에서 어린이와 여성 등을 대상으로 자행한 성범죄 99건 중 69건이 최근인 2015년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지난 2010년 대지진이 발생한 아이티에서 콜레라를 유발해 9000여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은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던 네팔 군부대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군부대에서 방류된 생활하수를 통해 확산됐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확진에도 불구하고, 반 전 총장은 임기 막바지인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 연설에서 “아이티에서의 콜레라 발병과 확산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아이티 국민에게도 사과한다”면서 뒤늦게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 ‘조용한외교’ 내세운 반 전 총장, 기후변화협약 체결은 최대 업적

    하지만, 외교 전문가들은 이 같은 평가가 한쪽으로 치우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분쟁 당사자들과 마찰을 최소화하면서도 해법을 찾은 반 전 총장의 ‘조용한 외교’에 대한 이해 부족이 서구 언론들의 비난에 가까운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반 전 총장이 분쟁국의 독재자들에 대한 직설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반감이 서구 언론들의 비판의 주된 배경이라는 것이다.

    국제 분쟁 중재 해결에 성과가 없다는 서구 언론들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외교가에서는 코소보 독립, 미얀마의 민주화, 코트디부아르의 정권 이양 등에서 성과를 낸 것 등이 반 전 총장의 조용한 외교의 성과로 평가한다.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반 전 총장의 2010년 재임확정 후 이뤄진 언론 인터뷰에서 “몇몇 인권단체에서 반 총장이 너무 조용하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때로는 어떤 국가의 정상들에게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이 생명을 구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자유와 정치범들의 석방을 가져온다”고 말한 바 있다. 반 전 총장도 지난 2012년 톰 플레이트 전 UCLA 교수와의 대담에서 “인류의 보편적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되 상대방의 태도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내밀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제 21차 파리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후 각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사진=조선일보 DB
    2015년 제 21차 파리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후 각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사진=조선일보 DB
    무엇보다도 지난 1997년 교토 의정서 채택 이후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기후감축협약을 국제조약 수준으로 끌어올려 구속력을 갖도록 한 것은 반 전 총장의 최대 업적으로 손꼽힌다. 반 전 총장은 협약의 최대 이해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펑 중국 국가주석을 십 수 차례 만나 설득을 했다. 그 결과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195개국이 참여하도록 했다. 반기문 총장은 미국이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무려 26~28%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이끌어냈다.

    반 전 총장과 가까운 한 국내 정치권 관계자는 “유엔 사무총장은 전 세계의 각종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서구 언론들의 악평에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최초의 아시아 출신 사무총장’에 대한 편견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다”면서 “지난 10년동안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공과(功過)에 대한 균형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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