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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르포] "한우·옥돔보다 김·버섯"…김영란법 시행 이후 확 바뀐 설 풍속도

  • 박수현 기자
  • 입력 : 2017.01.12 10:07 | 수정 : 2017.01.12 10:10

    “오시면 잘 해드릴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5만원 미만 실속세트도 있으니 보고 가세요.”

    지난 10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설을 맞아 예년처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선물세트 코너 판매원들이 지나가는 손님의 발길을 붙잡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 이후 유통가의 설 풍경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공식품과 건강식품 등이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설 선물의 대명사로 평가받던 ‘한우’ 등 비싼 상품의 판매량은 주춤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선물 받는 사람이 다 공무원은 아니지만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기업인들도 되도록이면 5만원이란 기준선을 맞추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 5만원 이하 선물세트 판매 증가…“10만원만 넘어도 부담돼”

    롯데백화점은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9일간 진행한 설 선물세트 판매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1% 늘었다고 밝혔다. 상품별로 보면 가공식품 및 생활필수품과 건강식품 매출이 각각 53%, 51%로 가장 많이 증가했다. 반면 한우가 대표 상품인 축산부문 매출은 10%, 청과는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5만원 이하 선물세트의 경우 매출 증가율도 45%로 높았다”고 말했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관 내 축산 선물세트 코너./ 박수현 기자
    서울 명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관 내 축산 선물세트 코너./ 박수현 기자
    실제로 백화점 선물세트 코너 판매대엔 3만원, 4만9900원 등 5만원 이하 가격대의 선물세트가 많이 보였다. 기본 10만원대가 훌쩍 넘었던 과일 코너에도 5만원에 맞춘 제품들이 다수 진열돼 있었다.

    가격대가 높은 상품에는 할인가가 붙었다. 롯데백화점 과일 코너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내용물도, 가격도 원하시는대로 맞춰드릴 수 있다”며 “대량으로 주문하면 더 할인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축산 코너 직원 역시 “대량으로 주문하면 가격별, 카드별 할인이 가능하다”며 “말만 하면 잘 맞춰 주겠다”고 했다.

    배송 서비스도 강화했다. 롯데백화점은 오는 27일까지 5만원 이하 상품도 무료로 배송해 준다.

    신세계백화점의 상황도 비슷하다. 10일까지 사전예약 판매 매출이 작년보다 40.7% 늘었다. 이중 5만원 이하 상품 매출은 작년보다 141% 늘었고, 상품 품목도 467개로 114개 증가했다.

    견과류 코너에서 만난 60대 부부는 “주변에 선물 돌릴 사람이 많아 5만원 이하 상품으로 100개 정도 주문했다”며 “처음엔 과일을 돌릴까 생각했다가 10만원이 넘어가는 건 너무 부담인 것 같아 가공식품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고 했다.

    서울 남대문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설 선물세트 행사장./ 박수현 기자
    서울 남대문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설 선물세트 행사장./ 박수현 기자
    ‘김영란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신세계백화점 곶감 코너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이젠 5만원이 넘으면 안된다면서요?”라며 운을 띄웠고, 수산 코너 직원 역시 “요새 5만원짜리 굴비도 많이들 사간다”며 “기업에서도 많이 주문하는 상품”이라고 했다.

    와인·주류 매출도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6%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 주류 코너 직원은 “3만~4만원대 와인세트와 약주, 과일주 세트 등이 잘 나간다”며 “그 가격대에는 술잔이 포함되지 않은 세트들이 많은데 저렴해서 그런지 다들 개의치 않고 사간다”고 말했다.

    주로 30만~40만원대(최고 110만원)의 값비싼 한우 선물세트를 파는 축산 코너에도 10만원대 상품이 마련돼 있었다. 롯데백화점 축산 코너 직원은 “18만원짜리 알뜰세트도 많이 본다”며 “명절 선물인데 이왕이면 한우로 면을 세우실 수 있게 부위별로 실속있게 구성했다”고 말했다.

    페루산 애플망고(5만원)와 러시아산 명란 세트(러시아산, 5만5000원) 등 수입산 품목들도 눈길을 끌었다. 신세계백화점 과일 코너 직원은 “오히려 사과나 배보다 망고가 더 인기가 많다”며 “다른 과일들도 섞어서 가격을 낮게 맞춰 팔고 있다”고 말했다.

    ◆ ‘한우 미니세트’, ‘훈제 연어’ 등 이색상품에 다양한 할인 혜택까지

    대형마트들도 이색적인 선물세트를 내놓는 한편 다양한 할인 행사도 벌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올해 5만원짜리 미국산 냉동 찜갈비 세트와 4만9800원짜리 민어 굴비 세트를 내놨다. 통조림 선물세트 등 5만원 미만 주력 선물세트의 물량을 지난해보다 30% 이상 더 확보했다.

    또 설 선물세트 행사 기간에 제휴 신용카드로 관련 상품을 구매하면 최대 30%를 할인하고, 대량으로 구매할 경우 최대 50만원의 상품권을 증정하거나 최대 50만원의 할인 혜택을 준다. 샴푸, 과일 등 특정 품목에 한해서는 세트 구매 수량에 따라 한 세트 더 얹어주기도 한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롯데마트 서울역점 내부. 설 선물세트 할인 행사 광고가 천장마다 달려있다./ 박수현 기자
    서울 중구에 위치한 롯데마트 서울역점 내부. 설 선물세트 할인 행사 광고가 천장마다 달려있다./ 박수현 기자
    롯데마트의 설 선물세트 매출(본 판매+사전예약 판매)은 작년보다 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버섯 등 건강식품과 조미식품은 각각 119.7%, 67.9% 급증한 반면 축산, 수산은 각각 0.9%, 12.7% 증가하는데 그쳤다. 과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 줄었다. 5만원 이하 상품의 매출 비중은 54.1%로 작년(43.7%)보다 10.4%포인트 증가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저렴한 상품들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는 11일까지 선물세트 가격을 10~30% 할인해 판매했다. 5만원 미만 세트는 지난 설보다 50종 늘어난 220종을 준비했다. 한우, 굴비 대신 저렴한 민어, 긴가이석태, 부세 등으로 구성된 ‘499 기프트 세트’와 3인 이하의 가족이나 혼밥족·싱글족을 겨냥한 ‘한우 미니세트’가 눈길을 끈다.

    이마트의 올해 5만원 미만 선물세트 예약 판매 매출은 지난해 대비 173.2% 늘어났다. 비중 역시 전체의 90%를 넘어섰다. 이마트 관계자는 “12일부터 시작되는 본 판매에는 더 많은 소비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다음주 주말쯤에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실적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도 오는 15일까지 전국 모든 점포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온라인 몰에서 설 선물세트 사전 예약 판매를 실시한다. 지난해 170여 종이었던 5만원 미만 선물세트는 220여 종으로 확대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세븐일레븐 M시청역점에 설을 맞아 선물세트들이 진열돼 있다./ 박수현 기자
    서울 중구에 있는 세븐일레븐 M시청역점에 설을 맞아 선물세트들이 진열돼 있다./ 박수현 기자
    CU·GS25·세븐일레븐 등 편의점들도 5만원 이하 선물세트를 대폭 늘렸다.

    CU는 전체 설 선물세트 230여 개의 상품 중 71%를 5만원 미만의 상품으로 구성했다. 이는 지난 설(59%)보다 10% 이상 높아진 수치이며 지난 추석(68%)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가격대별로 종류도 다양하다. 생필품, 통조림 등 전통적인 인기 명절 선물들로 구성된 1만~2만원대부터 어묵, 잣, 더덕 등 지역특산품이 주된 3만~4만원대, 훈제 연어 등 해외 유명 식재료로 구성된 4만~5만원대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GS25도 작년보다 40종(10%) 늘어난 480종의 5만원 이하 상품을 준비했으며, 세븐일레븐은 이번 설 선물세트의 약 60%를 5만원 미만의 저가 상품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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