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경제학이 바뀐다]⑤ 전 美 재무장관의 변심, “세계화 대신 ‘책임있는 민족주의’ 필요할 때”

  • 조귀동 기자

  • 입력 : 2017.01.12 07:41 | 수정 : 2017.01.12 08:48

    올해 전미경제학회(ASSA)에 참석한 경제학자들은 세계화의 부작용과 불평등 문제에 경제학자들은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 배경 가운데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등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자유무역협정 등을 이끌어온 ‘엘리트'들을 공격해 많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올해 전미경제학회(ASSA)에 참석한 경제학자들은 세계화의 부작용과 불평등 문제에 경제학자들은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 배경 가운데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등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자유무역협정 등을 이끌어온 ‘엘리트'들을 공격해 많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글로벌 경제 협력의 기조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까지 경제협력 하면 FTA(자유무역협정) 등 경제 통합에 방점이 찍혀있었습니다. 이제 각국이 ‘책임있는 민족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국제 사회가 돕는 형태가 돼야 합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세계화를 완전히 다시 뜯어 고쳐야 할 때”라며 이 같이 말했다. 서머스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대표적인 세계화 찬성론자에 속했다. 그는 진보 성향의 세계화 반대론자들을 겨냥해 “미국의 경제적 번영은 무역의 확대 때문에 가능했다”며 “지금도 미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세계화가 진전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세계화와 그 불만’이란 책에서 1990년대 재무부 차관이었던 서머스 교수가 중국산 장난감 수입에 반대하는 여론을 묵살하는 모습을 대표적인 세계화 찬성론자의 행태로 소개했었다.

    서머스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등 포퓰리즘 성향의 정치 세력이 전세계적으로 득세한 것이 입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터키, 러시아, 중국 등에서도 자국 우선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포퓰리즘 성향의 정치인이 주도권을 쥐었다”며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한 유권자들이 불만을 폭발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생각을 각국 국민이 품게 된 것이 핵심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 “세계화 실패는 경제학이 정치 무시했기 때문”

    결국 ‘정치’에 대한 고려 없이, ‘경제’ 논리만을 내세워 세계화를 밀어붙였던 것이 부메랑이 됐다는 게 서머스 교수의 시각인 것이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미-중 양자간투자협정(BIT)을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했다. “많은 평범한 미국인들은 이 협정이 타결되면 중국 기업의 미국 내 활동을 제재할 방법은 사라지고, 미국 기업들이 자유롭게 공장을 중국으로 옮길 수 있게 될 거라고 보았다”며 “그들의 입장에서 이 협정은 하나도 얻을 게 없는 엘리트들의 일방적 정책 결정이었다”고 했다. 세계화에 필요한 국가 간 공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서머스 교수는 진단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모든 나라들이 재정적자 걱정에 긴축 예산을 펴면서 전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이 야기됐다”며 “세수가 줄어들면서 각국은 정부부채 감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그는 비판했다. 무역 및 금융은 통합되었지만, 각국이 자국 입장만 고려해 재정·통화 정책을 펴면서 1920년대 대공황 당시와 비슷하게 거시경제 운용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가 투자 유치를 위해 노동, 환경 관련 규제가 대거 완화하는 ‘바닥을 위한 경주’를 벌인 것도 문제로 거론했다.

    서머스 교수는 대안으로 “각국 중산층의 생활 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글로벌 기준을 새로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제시했다. 단순히 자유무역협정이나 상호투자협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칭다오 항구에 놓인 컨테이너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칭다오 항구에 놓인 컨테이너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6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경제학 최대 학술대회 ‘2017 전미경제학회(ASSA)’에 참석한 여러 경제학자들도 지금까지 경제 논리가 이끌어온 세계화에 비판적인 의견을 냈다. 200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저 마이어슨 미 시카고대 교수는 “신흥국과 무역이 확대되면 모든 미국인이 혜택을 보긴 하지만, 외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국산 제품을 밀어낼 경우 교역조건이 나빠지고 비교우위에도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무역 확대가 특정 계층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이어슨 교수는 “세계화로 인해 미숙련 근로자 등 저소득층이 어려움을 겪고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만 글로벌 교역 확대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란코 밀라노비치 미 뉴욕시립대(CUNY) 교수는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선진국 부유층은 더 잘살게 됐지만, 저소득층의 생활 수준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가결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때 지적재산권 보호보다 근로자들의 생활 수준 보장을 더 신경쓰는 조항을 넣는 등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이 바뀐다]⑤ 전 美 재무장관의 변심, “세계화 대신 ‘책임있는 민족주의’ 필요할 때”
    ◆ “美 정치 양극화, 무역 확대가 부추겼다”

    밀라노비치 교수는 지난해 4월 펴낸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라는 책으로 경제학계의 ‘스타’가 됐던 인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1988년부터 2008년까지 20년간 각국 계층별 소득증가율을 분석했다. 그 결과 세계 인구에서 최상위 1%와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 중산층의 소득만 늘었을 뿐 나머지 계층의 소득은 정체상태였다. 특히 밀라노비치 교수는 선진국 중간층 이하 근로자들의 소득이 거의 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 그리고 더 이상 정부가 자본통제 등의 강력한 정책 수단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그는 진단했다.

    데이비드 오터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정치적 양극화의 수입? 무역 노출도 증가와 선거 결과(Importing Political Polarization? The Electoral Consequences of Rising Trade Exposure)’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중국 등 신흥국과 무역이 늘어난 것이 2002~2010년 미국 정치 지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오터 교수는 수입 제품이 늘어난 산업이 많은 지역일수록 온건파 정치인이 낙선하고, 강경파가 당선되는 경향이 뚜렷했다고 설명했다. 이 변화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에서 모두 관찰됐다. 수입 제품이 늘어난 산업에서는 그만큼 일자리가 줄고, 해당 지역의 실업률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미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인 양극화(중도파가 사라지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 심해지는 현상)에는 세계화로 인한 실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오터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과의 무역이 확대되면서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98만~200만 개 가량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었었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