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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혁명 생생현장]⑦ 폭설 버튼 누르자 KTX VR 시뮬레이터에서 흰눈이 펑펑...이노시뮬레이션을 가다

  • 노자운 기자

  • 입력 : 2017.01.11 06:00

    외딴 곳에 자리잡은 흉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싹한 신음 소리와 함께 신원 미상의 남성이 불쑥 나타나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든다. 녹이 슨 식칼 대여섯개가 칼날을 세운 채 맹렬하게 날아온다. 호흡을 고르고 선혈이 낭자한 나무 계단을 오른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단이 심하게 흔들린다. 2층으로 올라가자 갑작스레 바닥이 꺼지며 아래층으로 떨어진다. 희뿌연 물체가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그대로 돌진, 얼굴을 덮친다.

    이노시뮬레이션의 한 연구원이 HMD를 쓰고 VR 체험을 하고 있다. 의자 아래 설치된 모션플랫폼이 상하좌우로 흔들리며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노자운 기자
    이노시뮬레이션의 한 연구원이 HMD를 쓰고 VR 체험을 하고 있다. 의자 아래 설치된 모션플랫폼이 상하좌우로 흔들리며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노자운 기자
    놀이공원에 있는 ‘유령의 집’ 체험기가 아니다. 서울 상암동 한복판에 위치한 이노시뮬레이션 사무실에서 가상현실(VR) 안경을 쓰고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 경험한 일이다.

    이노시뮬레이션은 지난 2000년 설립된 VR 모션 시뮬레이터 전문 업체다. 기차나 굴삭기, 트럭 운전사들을 위한 산업용 시뮬레이터를 주로 만들다 최근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활용한 B2C VR 사업에도 진출했다. HMD를 활용한 VR 기기를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선보였다. CES에서 현대자동차가 선보인 아이오닉 자율주행 시뮬레이터도 이노시뮬레이션의 작품이었다.

    ◆ ‘서울역’ 그대로 재현한 KTX 시뮬레이터...노면까지 그대로 느껴져

    10일 오후, 조준희 이노시뮬레이션 대표이사를 만나 다양한 VR 기기를 체험해보고 회사의 기술력과 강점에 대해 물었다.

    조 대표는 자동차 부품 업체 만도(옛 만도기계) 연구원 출신이다. 만도 근무 중 국민대 대학원을 다니다 시뮬레이터를 접하게 됐고, 그 길로 회사를 나와 박사과정을 이수하며 교내 창업 보육 센터에서 이노시뮬레이션을 설립했다.

    이노시뮬레이션의 VR 기반의 시뮬레이터는 버스·트럭·굴삭기와 기차, 군사 훈련 장비를 그대로 재현해 낮은 비용에 생동감 있는 주행 연습·테스트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조준희 이노시뮬레이션 대표이사가 굴삭기 시뮬레이터를 시연하고 있다. 레버와 페달을 조작하자 실제 굴삭기처럼 작동한다. /노자운 기자

    조 대표가 굴삭기 시뮬레이터에 올라 앉아 열쇠를 꽂고 돌린 뒤 페달을 밟으며 레버를 조작하자, 모션플랫폼(시뮬레이터에 탄 사람이 사실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기계장치)이 화면 속 가상 이미지의 노면을 따라 상하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면 속 노면에 큰 돌이 놓여있을 경우엔 굴삭기가 돌을 밟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모션플랫폼이 “쿵”하고 들썩였다.

    조 대표는 VR 시뮬레이터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이 가상공간 안에서 발생하는 물리 현상을 실감나게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은 재미 위주의 콘텐츠이기 때문에 화면 속 자동차가 비정상적인 형태로 도로를 벗어날 수 있지만, 산업용 시뮬레이터에는 물리적 법칙을 정확하게 적용해야만 한다”며 “자동차나 기차 등 시뮬레이션하는 대상체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모델링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움직임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것 뿐 아니라 화면을 실제와 똑같이 재현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노시뮬레이션의 KTX 기관사용 시뮬레이터. 화면 속 가상 공간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 실제로 KTX산천 기관사들이 이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주행 시험을 본다. /노자운 기자
    이노시뮬레이션의 KTX 기관사용 시뮬레이터. 화면 속 가상 공간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 실제로 KTX산천 기관사들이 이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주행 시험을 본다. /노자운 기자
    KTX 기관실을 그대로 재현한 시뮬레이터 앞에 앉아 레버를 밀자, 기관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화면 속 가상 공간은 실제 서울역을 재현한 것으로, 대형 마트와 높고 낮은 건물 및 전신주까지도 있는 그대로 표현됐다. 주행 도중 조 대표가 컴퓨터를 작동해 ‘날씨’ 변수를 적용하자 화면 속 가상 공간에서 폭설이 내렸고 주행 환경도 바뀌었다. 기차역 안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기관실도 비상 모드로 전환됐다.

    “KTX 기관사들이 실제 주행 연습을 하거나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서울에서 부산, 목포까지 가는 동안 기관실에서 볼 수 있는 실제 풍경을 재현했습니다. 실제 장소를 찾아가 동영상을 촬영하고 위성사진, 도면 등을 참고해 컴퓨터그래픽으로 가상 공간을 그린 것이죠. 그래픽 작업을 빠르게 할 수 있는 툴을 자체 개발했습니다.”

    이노시뮬레이션은 굴삭기, KTX 시뮬레이터 외에도 교통안전공단의 운전적성정밀 시뮬레이터형 특별 검사 기기, 100억원 규모의 자율주행차 전용 도로주행 시뮬레이터, 해군 방수훈련 장비 등을 수주했다. 시뮬레이터로 주행 시험을 보면 운전자의 운전 습관 등을 간편하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조 대표는 설명했다.

    ◆ “B2C 사업에도 도전...내년에는 코스닥 상장 출사표”

    이노시뮬레이션은 B2B 사업을 넘어 B2C 영역에도 진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준비하고 있다. HMD를 활용한 VR 모션 기기를 VR 체험방 등에 납품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며, 글로벌 기업 2개사와 계약을 맺어 마케팅용 제품 1000대를 수출할 계획이다.

    또 양질의 콘텐츠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 및 업무 제휴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 IP는 3개며, 올 1분기 안에 10개를 더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조준희 이노시뮬레이션 대표. 공학박사인 조 대표는 과거 자동차 부품 업체 만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노자운 기자
    조준희 이노시뮬레이션 대표. 공학박사인 조 대표는 과거 자동차 부품 업체 만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노자운 기자
    조 대표는 B2C 사업 진출과 군수장비 수주 등을 토대로 올해 매출액을 지난해보다 2배 늘리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총 180억원이었다. 전체 매출액 가운데 약 4분의1이 일본과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등 해외에서 나왔다.

    이노시뮬레이션은 올해 실적 성장을 이룬 뒤 내년 중 코스닥시장 상장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증권과 상장 주관 계약을 맺은 상태며, 최근 5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다. 누적 투자금은 약 10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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