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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칼럼] '알파고 충격' 10개월, 한국은 그동안 뭘 했나

  • 논설주간
  • 입력 : 2017.01.10 04:00

    [김기천 칼럼] '알파고 충격' 10개월, 한국은 그동안 뭘 했나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한층 강력해진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알파고는 최근 한국과 중국의 온라인 바둑 사이트에서 진행된 비공개 시험대국에서 한·중·일 최고수들을 상대로 일주일 동안 60전 전승을 기록했다. 속된 말로 ‘넘사벽’의 실력을 과시했다.

    알파고는 60번의 대국에서 단 한차례도 불리한 국면으로 몰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었고, 대부분의 대국에서 여유있게 불계승을 거뒀다. 포석부터 마무리까지 어느 한 부분 흠 잡을 데가 없었다. ‘바둑의 신’에 가까운 압도적인 기력(棋力)이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만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싱톈(刑天)’과 ‘딥젠고(DeepZenGo)’의 급성장도 눈길을 끈다. 온라인 바둑 사이트에서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90%대 승률을 올리고 있다. 커제, 박정환 같은 최고수들에게도 상당한 우세를 기록했다.

    최근 국내 바둑사이트 타이젬에서 본 딥젠고와 중국 기사의 대국은 인상적이었다. 초반에 딥젠고가 이른바 ‘떡수’를 두는 바람에 실리를 크게 내주며 당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슬금슬금 차이가 줄어들더니 중반 이후 대형 바꿔치기가 이뤄지면서 딥젠고가 10집 차이의 큰 승리를 거뒀다. 작년 3월 이세돌과 대국할 때의 알파고와 비등한 수준으로 보였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이 부분에서 아직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있지만 알파고는 물론 싱톈, 딥젠고와 비교해도 크게 뒤진다. 바둑 프로그램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인공지능 관련 기술개발에서 한국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가전쇼(CES)는 또 다른 사례다. 이번 ‘CES 2017’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첨단 기술과 거리가 먼 비(非)테크 기업이 대거 참가한 것이다.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이 만들어내고 있는 급속하고도 폭 넓은 변화의 한 단면이다

    세계 최대 유람선 회사인 카니발 코퍼레이션과 스포츠 의류·신발 업체인 언더아머의 최고 경영자(CEO)가 기조연설을 했다. CES 50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프록터앤드갬블(P&G)의 공기청정제 브랜드인 페브리즈, 앱솔루트 보드카 생산업체인 페르노리카, 던킨도너츠 같은 기업들이 참가한 것도 이례적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을 비롯한 첨단기술의 파장이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전반으로, 전통 산업 부문으로 스며들면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제 먼 미래가 아닌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격변의 현장에서 한국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한국과 관련해 국내외 언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은 삼성과 LG의 TV 화질(畵質)경쟁이었다. 혁신과 미래를 말하기에는 조금 식상한 프레임이다. CES를 장식한 혁명적 변화의 물결에서 한 발 비껴나 있는 느낌이었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알파고 충격’을 격렬하고 생생하게 겪었다. ‘국민 영웅’ 이세돌이 인공지능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면서 온 나라가 쇼크를 받았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소프트웨어 열풍이 불고, 코딩 교육 바람이 불었다. 금융업계를 비롯해 기업들도 다투어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알파고 대국 일주일만에 ‘지능정보산업 발전전략’을 급조해냈다.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며 대기업들을 끌어들여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을 만들었다. 지능정보산업협회를 출범시키고, 중장기 종합대책도 내놓았다.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발 빠른 대응으로 치면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 충격 10개월이 지난 지금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미래 기술 선점경쟁에서 갈수록 밀리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성과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편이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미래부의 올해 업무보고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미래부는 ‘지난 4년의 성과’를 거론하면서 ‘세계적 수준의 창조경제·과학기술·ICT 인프라를 구축하고, 융합과 규제개혁을 통해 융·복합 신산업이 본격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미래부가 한국 정부 부처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현실 인식으로 ‘지능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니 무슨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업적을 부풀리기 위한 과시적 사업, 전시성 행사로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선도자(first mover)로 올라서기는커녕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대열에서도 탈락할 수 있다. 국가적 경각심을 일깨워야 할 때다. 차기 정부의 몫이 되겠지만 알파고 충격의 교훈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바탕으로 기업의 혁신을 자극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방안을 찾고, 국가 미래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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