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본에 발등 찍힌 한국... "日 통화스와프 정치적 이용은 예견된 일"

입력 2017.01.06 14:46

일본이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 협상을 중단, 정치 갈등이 경제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이 통화스와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전례가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했었다. 경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가 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일본 정부는 6일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대응해 나마기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총영사를 일시 귀국 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이런 결정을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아소다로 일본 재무장관이 지난 8월 정부서울청사에서 한일 재무장관회의를 시작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 한일 통화스와프 ‘굴욕의 역사’

통화스와프는 외화가 긴급하게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체결하는 협정이다. 협정을 맺은 국가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화 등을 빌려오는 시스템이다.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인 셈이다.

한국은 지난 2001년 처음으로 일본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130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한도를 확대했다. 애초에 일본은 통화스와프 규모를 확대하자는 한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외환보유고가 넉넉하고 재정이 튼튼한 일본 입장에서 통화스와프 체결은 경제적 실익이 거의 없는 일이었고, 한국에 도움을 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중 통화스와프 한도가 대폭 확대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를 중국과 같은 규모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중국만큼은 가져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실익은 없지만,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셈이다.

이 관계는 4년 후인 2012년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깨지기 시작했다. 일본은 지난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 사과 요구로 양국 관계가 경색되면서 경제보복의 하나로 통화스와프 축소를 단행했다. 양국 통화스와프 축소는 일본에는 해가 되질 않지만 한국에는 신인도 등에 영향을 미친다.

이후 양국 통화스와프 규모는 점차 줄었고, 2015년 2월 100억 달러 규모의 마지막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결국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일본 정부는 당시 “순수하게 경제 금융적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지만, 블룸버그·로이터통신 등 외신에서는 “독도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발생하는 가운데 발표된 것이어서 주목된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한국은 일본에 통화스와프를 체결 또는 확대하자고 늘 먼저 요청했다. 일본은 시간을 끌다 마치 선물이라도 주듯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치적인 갈등이 생길 경우 위협 수단으로 통화스와프를 활용했다. 체결부터 중단까지 모든 과정에서 한국은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 정부는 왜 통화스와프 서둘렀나

이번 통화스와프 협상 역시 한국 정부의 제안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한일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필요가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가결되며 세계 경제 불안 요인이 새로 생겼고, 미국의 금리인상도 임박하며 추가 안전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를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할 조짐이 보였던 것도 이유였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유일호 부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대신이 만난 제7차 한·일 재무장관회의에서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은 한일 재무장관회의가 열리기 전인 “한국 쪽에서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검토하겠다”며 일본이 나서 한일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었고, 결국 이번에도 한국의 요청으로 통화스와프 협상에 나서주는 모양새를 공식적으로 갖췄다.

경제계에서는 정치 문제와 별개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는 이득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외화를 직접 보유하면 비용이 들지만, 통화스와프는 직접 비용 없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로 꼽혔다.

하지만 당시 일각에서는 한국이 굳이 일본과 통화스와프 체결을 서두를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협상 개시 직전인 지난해 7월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3714억 달러로 넉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384억 달러를 인출할 수 있는 다자 통화스와프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M) 체제도 이용할 수 있고 중국과 3600억 위안(약 64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도 체결한 상황이었다. 당장 외환이 급격하게 빠져나갈 쇼크도 없었고, 웬만해선 버틸 체력도 있었던 것이다.

◆ “정부가 스스로 발목 잡은 셈”

한국의 외환시장에 위기 징후가 있었던 것은 아닌 상황이라 일본의 통화스와프 중단 선언이 당장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일본과의 통화스와프에 집착하는 모습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경제의 체력이 그리 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로 인식될 수도 있다.

특히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추진 중인데다, 다음 주 유일호 부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한국경제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인 시기여서 일본의 이번 조치는 한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기획재정부는 “정치·외교적 원인으로 한일 통화스와프 논의가 중단된 것에 대해 유감”이라면서 “정치·외교적 사안과 무관하게 한일 간 경제·금융협력은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 자료를 내놨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 경제 상황에서 사실상 실익이 없어 보이는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을 서두르다 정치적으로 악용당한 사례를 하나 더 만든 셈”이라면서 “중장기적으로 각국 중앙은행간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데, 일본이라는 세계경제 큰 축과의 협력 여지를 스스로 줄인 결과가 돼 아쉽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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