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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의 옷장의 인문학] 올해의 색 '그리너리'…각자도생 시대, 중립과 희망의 색 '녹색'을 생각한다

  •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입력 : 2017.01.09 07:00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색 ‘그리너리’… 각자도생 시대, 희망의 색 ‘녹색’을 생각한다
    빨강처럼 나서지도 파랑처럼 물러나지도 않는, 중립의 색 녹색
    19세기 이전까지 천한 색으로 여겨져 “녹색은 손에 쥐면 빠져나가는 것”

    팬톤이 선정한 2017년 올해의 컬러 그리너리(Greenery)./팬톤 제공
    팬톤이 선정한 2017년 올해의 컬러 그리너리(Greenery)./팬톤 제공
    색만큼 인간의 감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게 있을까? 푸른 바다의 파도소리는 그리움이란 감정을,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쿠키의 갈색은 맛의 환상을, 은색은 역동성과 속도를 연상시킨다. 그래서일까? 16세기 서유럽에서는 독성과 만나 검게 변한 은빛은 게으름을 상징하기도 했다. 우리가 색을 통해 특정한 감정을 떠올리고, 마음을 되짚어보는 것은 그저 우연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언어와 사고에 깊이 뿌리 내린 경험의 산물이자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마음의 습관이다.

    세계적인 색채연구소 팬톤은 2017년 ‘올해의 색으로 그리너리(Greenery)를 선정했다. 녹색 나뭇잎을 의미하는 이 색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팬톤의 수석 컨설턴트 리트리스 아이즈먼은 ’사회정치적 혼란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 우리 각자가 추구하는 희망을 담은 색상‘이라며 ’사회내부에 활력과 생동감을 불어넣고 개인에게는 용기와 자기 확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색‘이 될 것이라며 그 선정 이유를 밝혔다.

    ◆ “녹색은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의 색이다”… 변화무쌍한 녹색의 역사

    색채의 역사가라 불리는 미셀 파스투로는 ’녹색만큼 역사 속에서 의미가 변화무쌍하게 바뀐 색이 없다‘고 지적한다. 고대 그리스시대만 해도 녹색은 존재감이 없는 주변부의 색이었다. 녹색을 만드는 염료는 화학적으로 불안정해서 색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설령 녹색 물을 들여도 직물 위에 안착이 어려워 쉽게 색이 바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빨강과 하양, 검정, 황토색 같은 색에 항상 밀렸다.

    로마의 패권 아래서도 녹색의 사회적 인식은 낮았다. 로마의 노예들조차 갈색과 진청색을 선호했다. 녹색은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의 색이었을 뿐이다. 로마의 폭군 네로는 녹색을 매우 사랑했는데, 항상 녹색의 옷을 입고, 에메랄드를 얇게 잘라 만든 오늘날의 선글라스를 쓰고 검투사 경기를 봤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독특한 취향이었던 셈이다. 중세시대에도 녹색의 사회적 인식은 한없이 나빴다. 쉽게 빛이 바래는 녹색은 손에 쥐면 빠져나가고 마는 것들, 가령 유년기와 사랑, 돈을 상징하는 색으로 자리 잡는다.

    녹색이 자연친화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 부터다./픽사베이 제공
    녹색이 자연친화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 부터다./픽사베이 제공
    오히려 녹색을 좋아한 이들은 이슬람 신도들이었다. 녹색은 마호메트가 가장 좋아한 색이었다. 그는 녹색 외투에 터번을 두르고 다녔으며 정복전쟁에 나설 때마다 녹색 깃발을 들었다.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녹색은 그늘진 숲과 오아시스가 있는 신의 땅을 상징했다.
    그만큼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뜻하는 색이었다. 녹색이 이슬람의 색이 된 이유다. 반면 빽빽하게 들어찬 숲을 끼고 살았던 유럽인에겐 숲은 언제나 길을 잃기 쉽고, 자신들의 재산을 갈취해갈 산적들이 득시글거리는 무질서와 탐욕의 장소였다. 숲의 색, 녹색도 같은 의미로 이해되었다.

    ◆ 괄시받던 녹색, 회색 도시 속 ‘위로‘를 건네다…“녹색은 중립의 색이자 희망의 색”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자연친화적 의미로서의 녹색이 사용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접어들어서다. 이전 시대만 해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숲들이 하나둘씩 산업의 발달과 함께 사라지면서, 숲의 초록빛을 낭만적인 태도로 보기 시작했다. 우리 안에서 잃어가는 소중한 것들을 상징하는 뜻으로 초록을 쓴 것.

    녹색의 역사는 색을 둘러싼 인간의 인식이 극적 반전의 역사임을 증명한다. 오랫동안 잊혀지고, 무시되고, 거부된 녹색은 오늘날 도시 공간 속에서 한 뼘의 미래를 믿고 사는 이들을 달래는 색이 되었다.

    삶을 다양한 색의 크레용이 담긴 상자라고 해보자. 어떤 색을 삶 속에 초대하고, 덧붙이는가에 따라 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빛깔이 바뀐다. 인간에게 한 사회의 분위기를 색으로 표현하는 오랜 정신의 습관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한 시대를 어떻게 채색할지 고민해야 한다.

    각자도생의 시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깨지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심각하게 깨어진 시대에 초록빛을 생각한다. 빨강처럼 나서지도, 파랑처럼 물러나지도 않는다. 녹색은 중립의 색이며, 현재의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의 색이다. 초록에 담긴 극적반전의 역사를 생각하며, 우리의 2017년 삶에도 그 기운이 가득 들어차길 소망해본다. Green Forever!

    [김홍기의 옷장의 인문학] 올해의 색 '그리너리'…각자도생 시대, 중립과 희망의 색 '녹색'을 생각한다
    ◆ ‘옷장의 인문학’ 스토리텔러 김홍기는 국내 1호 패션 큐레이터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복수전공으로 연극영화를 공부하면서 영화 속의 패션에 빠져들었다. 현재 패션과 관련된 각종 교양 다큐나 방송의 자문을 하며, 신문 및 잡지의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샤넬, 미술관에 가다’, ‘옷장 속 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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