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적자 인생]④ 40평대 아파트서 월세아파트로...추락하는 은퇴자들

  • 세종=김문관 기자
  • 입력 : 2017.01.04 05:54

    자동차 회사 영업직으로 평생을 일하다 12년전 은퇴한 김모(62)씨는 퇴직당시 퇴직금에 은행빚을 더해 경기도 안양시 외곽의 5층 건물을 구입한 후 임대료를 받아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건물주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10년새 서울 여의도동에서 신도림동, 대림동, 구로동까지 거주지를 바꿔왔다. 불법 미등록 주식투자업체의 꼬임에 빠져 목돈을 날리는 바람에 집값이 싼 곳으로 이사를 거듭해서다.

    여의도에 살던 시절 그의 집은 10억원대 40평형 아파트였다. 현재의 구로동 아파트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을 내는 20평대 오래된 아파트다. 최근에는 불경기에 세입자도 줄어드는데다가 아들의 결혼까지 예정돼 있어 걱정이 태산이다. 김씨는 “하나뿐인 자식이 곧 늦장가를 가는데 집한채 마련해주기조차 불가능하다”며 “택시운전이라도 해야 하는게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전 중소기업 임원으로 은퇴한 박모(63)씨는 주택연금에 기대 상속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다. 자식 2명을 키우고 결혼까지 시키느라 적금 등 금융자산을 하나둘씩 까먹고 집 한채만 달랑 남았다. 박씨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직장생활중 연금에 가입하는 등 노후를 준비할 여유는 없었다”며 “주택금융공사 역모기지론(주택연금)을 신청해 상속을 포기한 채 연금에 의지해 살고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DB
    조선일보 DB
    직장 은퇴후 삶의 질이 추락하는 사례는 흔하다. 남은 삶에 대한 사전 준비를 못해서다. 사회안전망이 빈약한 상황에서 연금가입 등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려고 해도 생활이 빠듯해 이루지 못하고 은퇴만 최대한 늦추려고 애쓰는 실정이다. 특히 고령 노동에 대한 일자리 수요도 다양하지 못해 ‘쥐꼬리 임금’을 받는 저임금근로직에 일자리가 집중되고 있다.

    ◆ 은퇴해도 일해야만...고령층 경제활동참가율 OECD 최상위

    4일 한국노동연구원과 LG 등 민간경제연구소들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이르면 2017년중 65세 이상 인구비중이 14%를 초과하는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그런데 지난 2011년 기준 우리나라 고령층(65세 이상)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9.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2.7%보다 훨씬 높다. 34개 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 나라는 아이슬란드뿐이다. 1990년대 이후 변화를 보더라도 경기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하강이 나타난 적은 있지만, 고령층 경제활동참가율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고령층의 높은 경제활동참가율은 은퇴 전 노후대비가 부족한 상황을 반영한다. 연금제도의 수혜비율이 아직은 낮고 자녀들로부터의 지원(용돈) 등 이전소득도 줄고 있다. 보유자산을 처분해도 노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는 가구가 75%를 넘는다는 한 조사결과가 이런 암담한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나라 고령층의 모습은 다른 연령층과 대비하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2012년 기준 연령별 경제활동참가율을 미국, 일본과 비교해보면 65세 이상에서는 한국의 비율이 단연 높지만 59세 이하 연령층에서는 오히려 낮다. 즉 우리나라 고령층이 유독 일을 많이 한다는 의미다. 실제 우리나라 국민이 완전히 근로를 멈추는 실제 은퇴 연령의 경우 남성이 72.9세, 여성이 70.6세로 모두 OECD 회원국중 최고 수준이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 쥐꼬리 임금받는 저숙련 일자리에 몰려

    그러나 우리나라 고령층의 경제적 처지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낫지는 않다. OECD 분석에 따르면 한국 고령자의 빈곤율은 45%로 34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근본적인 원인은 은퇴자들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제한적인 관계로 ‘쥐꼬리 임금’을 받고 있어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6년 고령층 노동시장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1~10월중 고령층 근로자중 비정규직 비중은 53.8%로 절반을 넘겼다. 전체 근로자의 비정규직 비중이 30%대 초반에 머무른 점과 비교하면 훨씬 높다. 고령 노동에 대한 수요가 다양하지 못해 고용이 특정 부분에 집중되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2016년 고령층의 75.6%는 도소매업 18.6%, 택시 등 운수업 12.3%, 음식숙박업 12.7% 등에 주로 종사했다. 노동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고령층 일자리는 간병인과 환경미화원 같은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가 중심”이라며 “향후에도 저임금 일자리를 중심으로 증가할 전망”이라고 했다.

    노후 가구의 자산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보유자산으로 노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60세 이상 가구 비중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아울러 가구주 연령이 60~74세인 254만 가구중 71%에 해당하는 180만 가구는 보유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했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1인 가구에서 심각했다. 보유자산으로 적정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1인 가구의 비율은 83%를 기록했다.

    류상윤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고령층 가구의 절반 이상이 일을 하지 않거나 자녀의 지원 없이 보유 자산만으로는 노후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해 ‘은퇴하기 어려운 나라’로 지적된다”며 “은퇴자의 사적인 이전 소득이 감소하는 추세라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복순 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은퇴자들이 노후설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후를 맞은 결과, 취약한 일자리로의 진입이 늘고 있다”며 “정부가 노후소득 확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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