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동전 없는 사회…9900원짜리가 1만원 될까?

입력 2016.12.23 16:17 | 수정 2016.12.23 16:19

1000년 주화 역사, 2020년 막 내린다… ‘동전 없는 사회’ 개막

우리나라 주화(鑄貨)의 역사는 약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주화는 996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건원중보(乾元重寶)다. 둥근 모양에 가운데엔 사각형의 구멍이 뚫린 모습이었다. 조선시대 상평통보(常平通寶), 일제시대 은화 등을 거쳐 지금의 동전으로 정착했다.

길고 긴 주화의 역사가 오는 2020년부터 서서히 막을 내린다. 한국은행은 ‘중장기 지급결제업무 추진 전략(지급결제 vision 2020)’을 통해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시범사업은 내년 상반기부터 시작된다. 소액, 단품거래가 많은 편의점이 그 대상이다. 편의점에서 계산하고 남은 잔돈을 그 자리에서 선불식 교통카드에 충전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2.2%의 응답자가 동전을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잔돈으로 동전을 받더라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응답자 역시 46.9%였다.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들고다니기 불편하다(62.7%)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동전없는 사회에 대해서는 50.8%가 찬성했다.

막상 동전이 없어진다고 하니 시원섭섭하면서도 한 가지 걱정이 생긴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990원, 9900원짜리 물건은 이제 사라지는가 하는 우려다. 1000원, 1만원 등 지폐 단위에 맞춰 물건 가격이 오르고, 그렇게 되면 안그래도 높은 체감 물가는 더욱 오를 수도 있다.

조선일보 DB
◆ 동전 없는 사회 환영하지만...물가 오를까 걱정

TV 홈쇼핑을 시청하거나 대형마트를 둘러보면 숫자 ‘9’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세일 제품이 90원, 900원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책 ‘스토리 마케팅’에 따르면, 판매자들은 소비자가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느끼고 경계심을 풀어 지갑을 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로 끝자리쯤에 숫자 9를 사용한다. 990원과 1000원, 9900원과 1만원은 사실 가격 면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 9를 사용한 것이 싼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전 없는 사회’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동전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숫자 9 마케팅을 쓰던 유통업계가 지폐 단위까지 값을 조금씩 올릴 가능성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동전이 사라진다 해도 숫자 ‘9’ 마케팅이 사라질 확률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동전은 사라지지만, 동전의 단위까지 실물 경제에서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동전을 없앤다고 해서 동전 단위 가격을 없애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가 오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오히려 가격이 상승할 이유가 없어지고, 각 물건이 제 가격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동전을 준비, 수거, 관리하는 인력과 시간 등의 비용이 모두 물건값에 반영되는데, 동전이 사라지면 이같은 비용도 들일 필요가 없어지고, 그럼 물건 가격도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내년 상반기 시범사업 대상인 편의점 업계는 한은의 이같은 설명엔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동전 없는 사회로 인한 물가 상승 가능성에는 역시 고개를 저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계산대에서 동전을 거슬러 주는 것은 종업원 작업 중 하나일 뿐이라 물건값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이미 편의점에선 10원 단위 상품 가격 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다”라며 한은의 설명을 반박했다. 그는 이어 “동전이 사라져도 편의점 물건 가격은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숫자 9 마케팅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형마트의 의견도 비슷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동전 없는 사회가 시작된다 해도 숫자 9, 8 마케팅이 사라질 가능성은 적다”면서 “이미 결제의 80~90%가 카드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금도 동전으로 인한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김성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적립 등 현장 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물건값이 오를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대형마트를 둘러보면 990원, 9900원 등 동전 단위로 마케팅 하는 물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사진 속 제품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이윤정 기자
◆ 세계는 이미 현금 없는 사회 진행 중…현금 거래만 사라져도 GDP 1% 이상 성장

우리나라는 이제서야 동전 없는 사회 연구를 시작한 단계지만, 해외 여러 나라들은 이미 동전은 물론 현금 없는 사회로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스웨덴 거리를 걷다 보면 가게 문 앞에서 ‘Vi hanterar ej kontanter(우리는 현금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안내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버스의 경우 아예 현금 결제가 금지돼 있으며, 교회엔 헌금 주머니가 없다. 신자들은 카드로 헌금을 낸다. 이 외에도 프랑스는 1000유로(약 124만2000원) 이상은 현금 결제가 금지돼 있고, 라오스엔 동전이 아예 없다.

왜 세계는 현금 없는 사회를 꿈꾸는 것일까. 우선 동전 제조, 유지에 드는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동전을 만드는 데만 540억원이 들었다. 지난해 지폐제조 비용 900억원을 포함하면 그 비용은 1000억원을 넘어선다. 현금 운송, 저장에도 추가로 돈이 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금 이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무시할 수 없다.

현금 사용으로 인한 비용을 줄이면 국가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현금 없는 경제 : 의미와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현금 사용으로 인해 정부, 소비자, 기업들이 부담하는 비용이 2012년 기준 한 해 2000억달러(약 238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김성훈 부연구위원은 “현금 없는 사회에서는 매년 그만큼 경제가 더 성장하는 셈”이라고 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려는 시도도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부추기고 있다. 현금이 사라지면 불법 거래나 탈세가 위축된다. 김성훈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현금 없는 경제가 되면 세율 인상 없이도 지금보다 20조~64조원 가량의 세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다”며 “지하경제 규모가 큰 나라일수록 세수 증대 효과 역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6~18%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은 OECD 평균의 절반 가량인 8.4%, 한국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높은 25.6%로 추정되고 있다.

◆ 동전 없는 사회, 아직 갈길 멀어…적립 방식 다변화, 보안 불신 해결해야

동전 없는 사회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준비할 것이 많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동전 없는 사회를 넘어 곧바로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아직 여건이 덜 성숙된 듯 하다”며 “한국 사회에서 전자 지급수단이 활발히 사용되고 있지만, 현금 없는 사회가 현실화되기 위해선 아직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동전 없는 사회를 정착하려면 먼저 동전 적립 방식을 다변화 할 필요가 있다. 한은이 내년부터 실시하는 시범사업을 살펴보면, 동전 적립은 선불카드, 즉 충전해 쓰는 교통카드로만 가능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체크카드, 신용카드 등과 연계된 후불식 교통카드를 사용한다. 선불식 교통카드는 청소년, 고령층 등 일부 계층에서만 사용된다. 한은 관계자는 “기타 송금, 포인트 적립 등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다른 방안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결제서비스의 보안 강화 역시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NH농협은행, KB국민카드, 롯데카드 등에서 대량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피해를 겪은 바 있다. 동전이 없어지고 전자 시스템으로 적립될 경우 해킹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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