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가 르노그룹의 프리미엄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개발을 전담한다. 한국에 있는 자동차회사가 글로벌 자동차회사의 특정 차종 전체의 R&D (연구개발)를 담당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때 문 닫을 뻔했던 국내 자동차회사가 세계 4위 자동차회사인 르노·닛산그룹 내에서 높은 생산경쟁력은 물론 독자적인 연구개발 수행 능력까지 갖춘 핵심 계열사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이뤄진 것일까.
◇르노그룹 프리미엄 SUV R&D 전담
르노삼성자동차는 "앞으로 르노그룹이 출시하는 모든 프리미엄 SUV의 차량 개발 프로젝트를 르노삼성 중앙연구소가 맡아 진행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르노그룹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르노삼성 중앙연구소의 경쟁력 덕분이다. 이 연구소가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디자인과 부품, 차량 개발 업무를 주도적으로 진행한 SUV QM6(해외 판매명 꼴레오스)를 성공적으로 출시해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QM6는 출시 후 3개월 동안 국내에서만 1만536대가 판매되고, 해외에서도 11월까지 4000여대가 팔려나가는 등 중형 SUV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안정된 차체 밸런스와 세련된 디자인, 닛산의 사륜구동 시스템에다 첨단 안전장치를 대거 장착한 것이 인기의 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대형 SUV 시장에 뒤늦게 진입한 르노그룹은 기존에 개발 성공 경험이 있는 르노삼성에 연구개발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중앙연구소는 르노삼성차뿐 아니라 르노그룹의 중요한 차세대 모델 개발에도 참여해왔다. 르노그룹에서 올해 출시한 이른바 프리미엄급인 중·대형 차종 3개 중 2개 모델(SM6와 QM6)을 한국에서 개발했다. 1000여명의 연구인력을 둔 중앙연구소는 한국은 물론 르노그룹의 아시아 지역 연구 허브 역할까지 담당해왔다. 특히 르노그룹이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위해 만든 르노둥펑자동차의 연구개발 지원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는 '르노 디자인 아시아'가 함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디자인을 차량 개발 착수 단계에서부터 즉각적으로 반영하면서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르노디자인아시아는 자동차의 내·외장 디자인, 클레이(점토) 모델링, 디지털 모델링, 자동차 컬러, 소재 등을 연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1997년 출범 당시 12명으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50명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르노 본사의 메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제외하고는 둘째로 큰 규모다.
◇SUV 연구개발을 넘어 생산 기지까지
르노삼성은 단순히 프리미엄 SUV의 연구개발 전담을 넘어서서 르노그룹의 SUV의 연구와 생산을 아우르는 기지가 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중앙연구소가 연구개발을 주도하면 이후 생산도 국내 몫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QM6의 경우, 중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의 수출을 부산공장이 맡고 있다. 르노그룹의 SUV 생산 기지로서의 역량도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앞서 르노삼성차가 르노와 닛산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개발해 부산공장에서 생산했던 첫 SUV인 QM5의 경우, 총 39만여대를 생산해 이 중 33만대를 수출했다. QM5의 개발·생산 과정에서 확보된 기술 노하우와 부산공장의 품질 경쟁력은 2014년부터 북미 수출용 닛산 로그(중형 SUV)의 위탁 생산으로 이어졌다. 올해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는 13만여대의 닛산 로그를 생산해 전량 미국으로 수출했다. 이 공장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폐쇄 위기에까지 놓였는데 지금은 높은 생산성 덕분에 일본 공장의 물량도 떠안았다.
여기에는 합리적인 노사(勞使) 관계도 큰 역할을 했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2011년·2012년 수천억원의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번이나 임금 동결을 받아들였고, 올해도 2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뤄냈다. 박동훈 르노삼성 사장은 "노조가 파업 대신 특근을 선택해줘서 QM6·SM6의 안정적인 물량 공급을 이뤄낼 수 있었다"며 "직원들의 이런 노력이 없었더라면 중형차와 SUV 시장에서의 인기를 계속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