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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은의 바(Bar)람 불어 좋은 날] '역삼동의 변신' 룸살롱 줄줄이 폐업 후 매력적인 '바 천국'으로

  • 손기은 GQ코리아 피처에디터

  • 입력 : 2016.12.23 03:00 | 수정 : 2016.12.23 08:50

    김영란 법 이후 역삼동 룸살롱 폐업, 바 천국으로 변신
    한남동·청담동보다 캐주얼… 양조설비 갖춘 생맥주 바, 전통주 바도 많아
    테헤란로에서 즐기는 환상적인 야경 ‘루프탑 바’ 인기

    역삼동에 다시 바람이 분다. 오랫동안 역삼동에 단단히 박혀있던 룸살롱 문화가 천천히 녹아 없어지는 중이다. 그 자리엔 좀 더 특색 있고, 좀 더 캐주얼하며, 좀 더 대중적으로 다듬어진 바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역삼역 근처 루프탑 바 ‘클라우드’에서는 역삼동 일대가 별처럼 수놓아진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역삼역 근처 루프탑 바 ‘클라우드’에서는 역삼동 일대가 별처럼 수놓아진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역삼동은 늘 분주하다. 대기업 회사원들, 벤처기업 직원들로 높은 빌딩은 그득그득 차 있고, 큰 길가엔 커피전문점을 필두로 회사원들을 위한 가게도 바글바글하다. 저녁 6시 무렵, 높은 곳에 올라앉아 있던 회사원들이 일제히 땅으로 밀려 내려오는 시간, 그제서야 고층 빌딩 뒤 골목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뻗은 밥집과 술집은 장사를 시작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역삼동 술집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룸살롱’이었다. 통칭 ‘양주’라고 부르는 국산브랜드 위스키, 블렌디드 위스키 등을 최고급 술로 여기며 흥청망청 놀 던 곳들이 즐비하던 동네였다. ‘풀살롱’이라는 부끄러운 조어들도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그런데 ‘룸살롱’이 유흥의 중심이 되는 시절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역삼동 근처 중고가구 거래 판매점에서는 폐업한 룸살롱에서 쏟아져 나온 큼직한 소파들이 애물단지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강남구청에 신고되는 유흥업소 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된 룸살롱 수는 2010년에 3만4천 개였는데 2015년엔 2만9천 개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아직 집계에 잡히진 않았지만, 부정청탁 금지법인 ‘김영란 법’ 시행 이후로도 유흥업소는 경영난에 빠져 문을 닫는 형국이다.

    싱글 몰트위스키를 필두로 한 이른바 ‘바’ 문화까지 꾸준히 경쟁자로 힘을 키우고 있는 데다 혼술의 유행도 무시할 수 없는 터라 역삼동 술집의 문화가 완전히 뒤바뀌고 있는 분위기다.

    바 문화가 태동한 한남동이나 청담동은 아주 트렌디한 메뉴와 인테리어도 무장한 바가 즐비하다. 그 지역에 비하면 역삼동은 좀 더 대중적으로 다듬어지고 한 템포 여유로워진 분위기로 손님을 맞는 바가 많다. 그리고 맥주나 진토닉처럼 캐주얼한 음료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 편이다. 먼저 문을 연지 아직 한 달이 채 안 되는 새로운 곳부터 역삼동에 부는 새로운 바람을 따라 바 투어를 떠나봤다.

    역삼역 4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작’은 전통주를 잔술로 판매한다.
    역삼역 4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작’은 전통주를 잔술로 판매한다.
    ◆ ‘전통주 전문 바’, ‘양조 설비 갖춘 바’ 등 색다른 경험 선사할 ‘이색 바’ 인기

    역삼역 4번 출구에서 안쪽 골목으로 몇 발자국 들어가다 보면 ‘작’이라는 이름의 바가 하나 나온다.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백 바, 가지런히 정리된 바 체어를 보면 새로 생긴 칵테일 바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전통주를 잔술로 판매하는 전통주 바다.

    왁자지껄한 전통주점과는 아주 단호하게 선을 긋는,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 위스키처럼 잔으로 전통주를 팔기 위해서 증류주 위주로 리스트를 추렸고, 약주와 막걸리는 이곳의 대표가 몇 개를 골라 병으로 판매한다. 일부러 전통주의 ‘올드’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도자기 잔이 아닌 와인 잔에 서브한다.

    안동소주 5종을 비교 시음해볼 수 있는 ‘안동소주 샘플러’나 조선시대 3대 명주라고 불리는 감홍로, 이강주, 죽력고를 조금씩 마셔볼 수 있는 ‘조선 3대 명주 샘플러’도 구비했다. 오로지 전통주만 판매하는 곳이라 다른 바만큼 선택지가 다채롭진 않지만, 전통주를 이런 분위기에서, 한잔씩 마셔볼 수 있는 곳은 전국에서 역삼동 이 집이 유일하다.

    뱅뱅사거리 근처에 위치한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의 3층 루프바 모습.
    뱅뱅사거리 근처에 위치한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의 3층 루프바 모습.
    강남역에서 뱅뱅사거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보면 이제 막 손님을 받기 시작한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가 있다. 구스 아일랜드는 시카고에서 시작된 대표적인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로, 6개월 남짓 만에 3층짜리 브루펍을 역삼동에 세웠다.

    건물 안에 맥주 양조 설비를 갖추고 있어서 그 어느 곳에서보다 신선한 구스 아일랜드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 시카고 이외의 나라에서 브루펍을 오픈한 이력이 전혀 없으니, 역삼동 지점이 세계 분점 1호점이 되는 셈이다. 주변의 회사원들은 물론 동네 주민들까지 가볍게 들러서 맥주 한잔만 비우고 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다. 맥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도 구비해놓고 있으며 미국 브랜드인만큼 미국산 버번 위스키나 프리미엄 진도 홀짝일 수 있게 준비해뒀다. 날씨가 조금 풀리면 제일 꼭대기 층에 있는 야외 테라스에서 술 한잔 즐기기도 좋다.

    ◆ 테헤란로가 한눈에? 환상적인 야경 자랑하는 ‘루프탑 바’…“구름 위에 앉은 기분”

    역삼동의 또 다른 장점은 테헤란로의 고층 빌딩 덕에 끝내주는 야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역삼역 근처에 있는 머큐어 앰배서더 쏘도베 호텔의 꼭대기 층에는 루프탑 바 클라우드가 있다. 창작 칵테일 리스트도 풍성하고 굽어볼 때마다 두 눈에 꽉 들어차는 야경도 멋지다. 업무 스트레스와 세상 시름 다 잊고 구름 위에 올라 앉은 듯한 기분은 루프탑 바만의 매력이다. 그래선지 근처 회사원들이 회식 장소로도 자주 찾는 곳이다.

    역삼역 근처 루프탑 바 ‘클라우드’는 앰배서더 쏘도베 호텔 꼭대기 층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역삼역 근처 루프탑 바 ‘클라우드’는 앰배서더 쏘도베 호텔 꼭대기 층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행정구역상 역삼동에 포함되진 않지만 역삼동 바로 인근에 자리잡은 호텔 카푸치노도 역삼동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루프탑 바를 운영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칵테일 중에서 ‘진토닉’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술집을 일컫는 ‘진토네리아’를 표방하는 곳으로, 수십 종의 진과 다채로운 토닉 선택지를 조합해 입맛에 딱 맞는 진토닉 한잔을 주문할 수 있다. 위스키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사람들, 너무 달고 예쁘기만한 칵테일은 취향에 안 맞는 사람들이 찾기 좋은 루프탑 바다. 부티크 호텔 객실을 하나 잡아두고 느긋하게 술 마시면 해외 여행이 부럽지 않을 테다.

    ◆ “역삼동의 낮과 밤은 다르다” 가지각색 바들이 모여 독특한 분위기 뽐내

    역삼동 바의 가장 강력한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신라스테이 호텔 별관 2층에 자리잡고 있는 커피바 K다. 2007년 청담동에 처음 생긴 커피바K는 우리나라의 싱글 몰트위스키 문화는 물론이고 전문적인 칵테일 제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의미있는 공간이다.

    상징적이기까지 했던 커피바K 청담동 지점이 문을 닫고 역삼동으로 새롭게 이사 온 건 작년 5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춘 바텐더가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곳으로 오랜 전통이 있는 만큼 위스키의 구색도 깊고 넓다. 지금은 한남동과 청담동 두 군데 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청담동에서 그랬던 것처럼 역삼동에서도 바 문화를 향긋하게 전파하고 있는 중이다.

    사색적인 분위기의 역삼동 ‘스피크이지 마노’에서는 시가를 피며 천천히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
    사색적인 분위기의 역삼동 ‘스피크이지 마노’에서는 시가를 피며 천천히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
    커피바K 건너편에는 커피바K 보다 조금 일찍 영업을 시작한 ‘스피크이지 마노’가 있다. 크지 않은 규모지만 바를 중심으로 아늑하게 모여 앉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시가 한 대를 피면서 천천히 위스키를 즐길 수 있고 묵직한 칵테일을 주문해 퇴근 후 시간을 사색적으로 보내기도 좋다. 이 구역에서 역삼역쪽으로 좀 더 내려오면 몰트바 마릴린도 있다. 1층엔 와인바를 운영하고 지하엔 몰트바가 있는 곳으로 와인과 위스키 모두 간절하게 생각날 때 찾기 좋다.

    역삼동 대로와 그 뒤편의 좁은 골목은 한 눈에 보기에도 분위기가 확 다르다. 역삼동의 낮과 밤도 여름과 겨울처럼 완전히 다르다. 이처럼 역삼동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종류의 술집들도 제각각 다른 색을 띠고 있다. 완전히 다른 공기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지는 해가 있으면 뜨는 해도 있는 법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연말 연시, 역삼동 바 투어를 하면서 이 동네의 지는 술집과 뜨는 술집을 되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손기은의 바(Bar)람 불어 좋은 날] '역삼동의 변신' 룸살롱 줄줄이 폐업 후 매력적인 '바 천국'으로
    ◆ 손기은은 남성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GQ KOREA’에서 음식과 술을 담당하는 피처 에디터로 9년 째 일하고 있다. 이제 막 문을 연 레스토랑의 셰프부터 재야의 술꾼과 재래시장의 할머니까지 모두 취재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요즘은 제대로 만든 칵테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바와 바를 넘나드는 중이다. 바람이 불면 술을 마신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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