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니스밴드 최강자 핏비트(Fitbit)가 스마트워치 분야의 맏형격인 페블(Pebble)을 인수했다. 가파르게 성장해온 웨어러블 시장이 최근 정체 현상을 겪고 있는 가운데 스마트워치라는 신세계를 처음 선보인 1세대 업체 페블은 창업 4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페블의 노련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경험치를 흡수한 핏비트가 지금의 과도기를 잘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 킥스타터 투자유치 신화 헐값에 팔려
페블은 7일(현지시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더 이상 회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됐다”면서 “제품 생산과 판매를 모두 중단한다”고 밝혔다. 며칠 전부터 외신을 중심으로 두 회사가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페블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인수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4000만달러(약 463억8000만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당초 페블은 2억달러(약 2319억원)를 요구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인수가가 크게 낮아졌다”고 전했다.
페블은 핏비트으로부터 받은 돈을 소셜펀딩 자금 반환 등에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페블은 세계 최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를 통해 제품 개발에 필요한 투자금을 유치해왔다. 페블은 올해 6월에도 킥스타터에 페블2, 타임2, 페블코어 등 세 가지 신제품을 공개하고 1280만달러(약 148억4000만원)를 끌어모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매각으로 페블은 출시 예정이던 타임2와 페블코어를 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제품은 각각 올해 말과 내년 초에 시장에 나올 예정이었다. 이미 주문한 고객들은 킥스타터에서 환불을 받아야 한다.
페블은 애플(애플워치)보다도 2년 앞선 지난 2012년 세상에 스마트워치를 처음 공개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기업이다. 스마트워치 개발 계획서를 들고 투자자들을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외면당하던 창업자 에릭 미기코브스키가 고민 끝에 킥스타터의 문을 두드려 1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한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페블은 지난해 3월에도 킥스타터에 스마트워치 신제품 ‘타임’을 공개한 뒤 22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그러나 페블은 개미 투자자들의 열렬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제품 대중화에 실패해 4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불행히도 페블 신제품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 ‘페블 OS’ 노린 핏비트…SW 인력만 고용승계
페블을 인수한 핏비트는 현재 글로벌 피트니스밴드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업체다. 미국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중퇴한 한국계 재미교포 제임스 박 최고경영자(CEO)가 2007년 설립했다. 제임스 박 CEO는 대학을 그만 둔 뒤 총 세 차례의 창업 도전 끝에 지금의 핏비트를 만들었다.
외신은 제임스 박 CEO가 페블이 개발한 스마트워치 운영체제(OS) ‘페블 OS’와 여기에 속한 애플리케이션(앱)에 관심을 갖고 인수를 추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페블은 회사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자체 OS를 개발하고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실제로 핏비트는 이번 협상에서 페블의 소프트웨어 부문 엔지니어들만 고용 승계하기로 했다. 하드웨어 부문 인력들은 퇴직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박 CEO는 지난해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앱과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사용자들의 건강 관리를 책임지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페블 인수 사실을 공개하며 “피트니스밴드 등 기본 웨어러블 기기는 더 똑똑해지고 스마트워치는 인간의 건강에 더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며 “페블 인수를 계기로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 핏비트의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인수가 최근 성장 속도가 둔해진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세계 웨어러블 시장 규모는 2300만대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 성장하는데 그쳤다.
1위 핏비트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핏비트는 지난달 “올해 4분기 매출이 2∼5.4%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 회사는 지난 7개 분기 동안에는 두 자릿수 이상의 고속 성장세를 기록해왔으나 지난 3분기 때부터 성장 속도가 크게 둔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