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약 중독된 제약업계… 씨 마른 신약개발

입력 2016.12.06 03:08 | 수정 2016.12.06 15:03

[한미약품發 신약 열풍 1년… 다시 시들해진 시장]

- 외국 제약사의 도매상에 안주
큰돈 들어가는 신약개발 대신 특허 만료된 약 베끼기 경쟁
제약사 매출 절반이 수입약 판매

- 톱20 제품 중 국산은 박카스D뿐
119년 동안 한국 신약은 27개 "벤처와의 공동개발이 돌파구"

이달부터 국내 제약시장에는 100가지 넘는 고혈압 치료제가 쏟아져 나온다. 국내 제약사들이 고혈압 치료제를 새로 개발해 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일동제약·LG생명과학·한독 등 국내 대표 제약사들이 내놓을 고혈압 치료제들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의 고혈압 치료제 '트윈스타'를 그대로 베낀 복제약(제네릭)이다.

지난해 한미약품이 8조원 규모의 신약 기술 수출에 성공하면서 반짝했던 국내 제약 연구개발(R&D) 열풍이 1년 만에 기세가 꺾였다. 제약사들은 여전히 특허 기간이 끝난 외국 의약품을 베끼거나 외국 약을 수입해 유통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산업이 신약 개발 대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분야에만 매달리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면 모방 기업이나 외국 제약사의 도매상 수준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고혈압 복제약 119종 판매 허가

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9월 일동제약을 시작으로 53개 제약사가 119종의 트윈스타 복제약 시판을 허가받았다. 이 중 최대 100종 정도가 실제 출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제약사들이 트윈스타 복제약 판매에 앞다퉈 뛰어든 것은 원조의 인기에 기대 시장을 나눠 먹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트윈스타는 연간 매출이 1000억원에 육박하는 블록버스터 약품이다. 복제약 시판 허가를 받은 한 제약사 관계자는 "신약을 만들려면 수천억원 이상이 들고 실패 확률도 높지만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은 수억원 정도만 투자하면 똑같이 베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판매 상위 의약품 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고혈압 치료제 광풍(狂風)은 국내 제약산업이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제약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리베이트(약품 채택에 대한 대가성 금품 지급) 같은 불법 영업도 결국 복제약 경쟁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리지널약이 갖고 있던 시장을 조금이라도 빼앗아 오려면 가격을 낮추거나 처방 권한이 있는 의사·약사를 잡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꾸준히 규제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제약사들이 복제약 경쟁을 펼치는 한, 리베이트가 쉽게 근절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상위사 매출 대부분 외국 약 판매

국내 제약사들이 앞다퉈 달려드는 분야는 또 있다.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수입한 약의 유통·판매 대행이다. 유한양행은 올해 3분기까지 9643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올해 국내 제약사 최대 매출 달성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매출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7148억원이 수입 약 유통으로 벌어들인 돈이다. 국내 1위 제약사가 판매 대행료만 남기는 의약품 도매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올 3분기까지 누적매출 2위인 녹십자의 경우 46.4%, 3위 종근당은 35.5%가 직접 개발하지 않은 '도입 의약품' 매출이다. 상위 11개 제약사 전체로 보면 3분기까지 매출 중 도입 약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4.7%나 된다. 3분기 누적 매출액 상위 20위 의약품에서 국내 회사의 제품은 동아제약의 자양강장제 '박카스D'가 유일했다. 순수 의약품으로 따지면 순위권에 국산 약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119년 역사의 한국 제약산업이 지금까지 개발한 신약은 27개에 불과하다. 세계 시장에서 블록버스터급으로 성공한 신약은 하나도 없다. 보령제약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와 LG생명과학의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가 올해 연 매출 500억원을 바라볼 뿐 나머지는 매출이 수십억원이면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신약 기술 수출로 제약업계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잠시 활기를 띠었지만 최근 신약 수출 무산과 늑장 공시를 둘러싼 악재가 겹치자 곧바로 시장은 싸늘하게 식었다. 특히 투자를 늘려 신약을 개발하겠다던 제약사들도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달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중단했고, 녹십자도 혈우병 치료제의 미국 진출을 포기했다.

신약 개발은 여전히 외면

유한양행은 올 3분기까지 R&D에 618억원을 투자했다. 매출의 6% 수준이다. 3분기 누적 R&D 투자가 1000억원을 넘는 회사는 한미약품(1063억원)이 유일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연 매출의 15%, 금액으로는 수조원을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점을 감안하면 흉내 내기에 불과한 수치이다. 올해 1조 클럽 진입이 확실시되는 광동제약은 3분기 누적 매출의 0.8%인 36억원을 R&D에 투자하는 데 그쳤다. 광동제약은 매출의 70%를 제약이 아닌 삼다수·비타500 등 음료와 인터넷 유통업에서 올렸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사들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결국 획기적인 신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성상현 서울대 약대 교수는 "전 세계 어느 제약사도 투자 없이 글로벌 신약을 개발한 경우는 없다"면서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뚝심 있게 투자하는 것만이 유일한 돌파구"라고 말했다. 벤처와의 협업이나 공동 신약 개발 등 한국적인 신약 개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선경 한국화학연구원 의약바이오연구본부장은 "신약개발에서는 실패가 다반사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프로젝트 수가 적어 실패할 경우 타격이 훨씬 크다"며 "국내 제약사들이 벤처들과 손을 잡고 신약 개발 경로를 다양화해야 한 번의 실패로 회사의 R&D 전체가 휘청거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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