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파워라이터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치매 노모 살려낸 65세 아들... 9년간의 밥상 일기

  •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 입력 : 2016.12.03 07:00 | 수정 : 2016.12.04 11:08

    9년간 치매 엄마 밥 해먹인 블로그 요리왕 ‘스머프할배’
    생선스테이크, 양미리조림… 치매 진행따라 맞춤 요리만 500개
    어머니와 보낸 아름다운 유년 시절 떠올리며 고통 이긴다

    ‘선조들은 부모가 죽으면 3년간 시묘살이를 했는데, 나는 살아서 9년째 하고 있다. 징글맘과 지내는 처음 3년은 그냥 뭣 모르고 살면서 하였고, 다음 3년은 지옥의 투쟁을 하며 고통스럽게 보냈다. 지금 3년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채 모든 것을 추월한 득도의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정성기의 9년간의 밥상 일기 ‘나는 매일 엄마와 밥 먹는다' 중에서.

    항상 여왕처럼 당당한 어머니 ‘징글맘'과 낙천적인 아들 ‘스머프할배'. 흰머리가 성성한 아들은 매일 어머니를 위해 정성스레 삼시 세끼 요리를 한다./사진=박상훈 기자
    항상 여왕처럼 당당한 어머니 ‘징글맘'과 낙천적인 아들 ‘스머프할배'. 흰머리가 성성한 아들은 매일 어머니를 위해 정성스레 삼시 세끼 요리를 한다./사진=박상훈 기자
    기실 인간은 죽음으로써 지구 존속에 기여한다. 어떤 이유로든 이전 세대가 죽음의 강을 건너가지 않으면, 또 다른 세대는 숨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후손을 위해서 베푸는 가장 큰 은혜다. 그러나 이미 100세 시대, 죽음이 어디 제 뜻대로 될까.

    스머프할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정성기 씨(65세)는 94세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냥 모신 게 아니다. 쌀가루크림수프, 간장게장, 물김치…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로 삼시 세끼 극진한 밥상을 차려내며. 그 세월이 9년 째다. 아들은 어머니를 ‘징글맘'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요리 100개만 해주고 끝내리라던 작심이 508개까지 이어지자, 아들은 밥상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나는 매일 엄마와 밥 먹는다'.

    기실 ‘고통과 소진 속에서 절규하며 남기는 기록’이지만, 표면은 웃기고 파란만장한 모자의 동거담이다.

    대책없이 뻔뻔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니는 에미 덕에 서양 요리, 청요리, 일본 요리도 배웠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다. 고마워해라.”고 호통을 치고, “장조림 국물이 없구나. 내가 준 돈으로 뭐 했니?” 준 적도 없는 돈타령을 한다. 숟가락에 올린 굴비를 까먹고 “니는 왜 굴비를 안 주냐?”고 다그치다, 금세 “내가 너무 먹지? 식탐만 살아서 큰일이다.” 미안해한다.

    뿐이랴. “몇 날 며칠을 굶겨 에미 등짝이 허리에 붙었다!”고 식구들 앞에서 누명 씌우면 환장할 노릇이다가도, “식사 끝! ‘하늘에 계시는 우리 하느님, 똥깡이 놈이 만들어준 맛있는 수프 잘 먹었습니다. 저놈이 성질만 덜 내게 해주세요.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힘차게 읊조리니, 타고난 ‘밀당'의 고수 앞에 납작 엎드릴 밖에.

    하지만 육아가 그렇듯이 효도도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이 자립 능력 없는 한 인간을 온전히 돌본다는 것은, 우울증의 침입에 수시로 시달리는 일이며, 불쑥불쑥 찾아오는 자살 충동과 싸워야 하는 징글징글한 일. 현실이 그러할 진데, 돌봄의 물증으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대출받았던 ‘음식'이라는 빚을 착실하게 갚아나가는 그 삶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게다가 밥으로 똥으로 원색적인 시위를 일삼는 노모 옆에서, 60대 할배는 ‘파워블로거 요리사'라는 남다른 성취까지 이뤄냈다.

    “지금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게 달걀하고 우유예요. 갓난아기가 우유 먹고, 좀 크면 달걀 노른자에 밥 비벼 먹는 거랑 비슷해요. 소고기뭇국에 애호박 새우젓 볶음, 계란찜도 좋아하세요.” 밥상 치우면 또 밥 찾는 어머니./사진=박상훈 기자
    “지금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게 달걀하고 우유예요. 갓난아기가 우유 먹고, 좀 크면 달걀 노른자에 밥 비벼 먹는 거랑 비슷해요. 소고기뭇국에 애호박 새우젓 볶음, 계란찜도 좋아하세요.” 밥상 치우면 또 밥 찾는 어머니./사진=박상훈 기자
    모자는 부천 소사구 송내의 20평 남짓한 아파트에 둘이 산다.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던 초겨울 저녁, 심호흡을 고르고 문을 두드렸다. 1인용 소파 베드에 고양이처럼 앉아서 캐러멜을 까먹는 징글맘, 등받이도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스머프 할배와 눈이 마주쳤다. 눈을 뒤집어 쓴 듯 둘 다 머리가 새하얬다. 고목처럼 삭은 몸으로도 집요하게 먹는 자와 과로로 이빨이 빠진 채로도 집념으로 먹이는 자.

    스머프 할배가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살아요."

    널브러진 이불, 휠체어, 속옷 보따리, 1인용 탁자… 치매 노인과의 동거는 부끄러울 것도 없이 어수선하지만, 속수무책인 듯 보이는 이 공간에도 질서와 위용을 자랑하는 공간이 있다. 부엌이다. 무기고를 자랑하는 장군처럼 스머프 할 배가 의기양양하게 기자 앞에서 냉장고와 찬장을 열어 보였다.

    “간장도 종류별로 다섯 가지고요. 두반장,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월계수 잎… 달걀도 유기농만, 소고기고 한우만 드려요. 전 수입 고기 먹어도 어머니에겐 최고급으로 요리해 드립니다.”

    그는 오남매의 맏이다. 치매를 앓다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에 대한 후회가 컸던 터라, 형제들을 대표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 간병을 맡았다. 가족이 있는 보문동 집을 나서 어머니가 계신 부천 아파트로 트렁크를 끌고 올 땐, 길어야 1년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2008년, 그의 나이 57세였다.

    항상 웃는 낯의 스머프할배. 식구들과 생이별한 지 9년이지만, 매일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아 친밀감은 더해졌다./사진=박상훈 기자
    항상 웃는 낯의 스머프할배. 식구들과 생이별한 지 9년이지만, 매일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아 친밀감은 더해졌다./사진=박상훈 기자
    -1년 작정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덧 9년이 됐다고요.

    “처음에 어머니 변이 까맸어요. 의사들이 6개월 넘기기 힘들다고 했죠. 돌아가시기 전에 밥 한번 제대로 해드리자 해서 시작한 거죠. 그런데 그 밥을 드시고 점점 기운을 차리셨어요. 의사들이 다들 기적이라고들 해요.”

    노인에게 ‘식탐'은 살고 싶다는 의지다. 새벽밥을 안치고, 대소변 빨래를 하고 간식을 챙기고 잠시 깜빡 졸 새도 없이, 모친은 “배고프다, 밥 다고! 밥 다고!” 노래를 했다. 어린아이가 한 몸 안에 포개진 그 육체 안에, 먹는 환희와 못 먹는 노여움이 무질서하게 드나들었다.

    -한편으로는 독박 희생이 억울하다 싶기도 할 텐데, 식구들과 불화는 없었나요?

    “다른 식구가 하룻밤만 대신해줘도 좋을 텐데, “저것들은 오면 내가 밥해줘야 돼"하면서 거부하세요. 하하. 어머니가 오직 저만 원하세요. 지금도 식구들 오면 제가 어머니 말을 통역해야 해요. 아내는 저한테 고마워하죠. 정신 온전하실 때도 어떤 며느리도 비위를 못 맞췄어요. 아침이면 “이년아! 해가 똥구멍에 떴냐?” 소리부터 지르셨어요. 누가 대신해줄 수가 없어요.”

    -과연 우리 ‘징글맘’이 성격이 대단하시네요.

    “엄마는 함경도 여성이고 아버지는 경상도 남자였어요. 두 분 입맛이 참 안 맞았어요. 아버지는 칼국수를 엄마는 냉면을 좋아하셨어요. 아버지가 칼칼한 된장 찌개 먹고 싶어 해도 엄마는 끝끝내 맑게 된장국을 끓여내셨어요. 고집이 셌지요. 지금도 아들이라고 봐주는 게 없어요.”

    정작 그는 어머니 말에서 답을 찾았다. “늘 자물쇠가 있으면 열쇠가 있다, 그러셨거든요.” 어머니는 새벽마다 깨서 쇼를 했지만, 그 시간에 깨서 밥해드리고 나면 책을 봤다. “노인에게 무슨 요리를 해드리나 공부를 했죠. 해보니 제가 요리사 체질이었던 거예요.”

    처음엔 양미리조림, 간장게장도 즐겨 찾고 생태회무침처럼 얼큰한 것과 아욱이나 근대를 된장으로 무친 반찬도 잘 드셨다. 이제는 소화 기능이 떨어져 모든 음식을 죽처럼 조리해드린다./사진=박상훈 기자
    처음엔 양미리조림, 간장게장도 즐겨 찾고 생태회무침처럼 얼큰한 것과 아욱이나 근대를 된장으로 무친 반찬도 잘 드셨다. 이제는 소화 기능이 떨어져 모든 음식을 죽처럼 조리해드린다./사진=박상훈 기자
    먹고 싸고 성내고 사랑하고... 그 지지고 볶는 모양을 인터넷 블로그에 연재한 지 9년. 사람들은 매일의 메뉴와 따뜻한 하소연을 담은 그의 효도 일기에 열광했다. 스머프할배라는 별명은 자동 검색이 될 정도로 블로그의 유명 인사가 됐고, 요리에 관한 한 네이버 지식인에서도 명답을 내주는 척척박사로 통한다. 하루에 달리는 공감과 응원의 댓글만 5백 개. 전국 각지에서 자전거 헬멧이니 프라이팬이니 음식이니 ‘구호 물품'이 답지한다.

    -요리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을 하게 된 건 정말 다행이군요.

    “안 그랬으면 젊은 날 광고한다고 날뛰던 놈이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버텼겠어요. 저는 블로그에 이것저것 사는 모습 글로 흥얼거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보시는 분들은 “저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하면서 안도를 하시죠. 부모님 가시고 효도 못 하신 분은, 또 제 노동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세요.”

    처음엔 된장찌개, 김치찌개나 하던 수준이 지금은 함박 스테이크에 미트볼, 일본 규돈에 중국 기스면, 함흥냉면에, 김치도 이북식 경상도 식 종류별로 척척이다. 서툰 칼질에 피도 흘리고 곰국 끓이다 화상도 입었지만, ‘한 여인'을 위한 맞춤 요리사가 된 것.

    생과일주스도 물김치도 농도와 간이 안 맞으면 탁하고 내려놓는 징글맘의 까칠함은 그를 살게도 하고 죽게도 했다. “밴댕이 소갈딱지야~” 욕먹으며 밴댕이 조림을 만들땐 천불이 나지만, “너도 옛날에 오므라이스 좋아했지.”라는 추억담은 감칠맛 나는 소스가 되기도 했다.

    공 없는 봉양 살이에는 때론 자학적 유머도 약이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내가 징글맘과 생활하는 일상을 보여주면 ‘제기랄!’하며 도망갈 거예요. 너는 돌대가리니 참지만, 나는 인공지능 로봇이니 거부할 거다,하면서요. 하하”

    “애비야, 내가 올해 아흔셋이니 딱 7년만 더 살련다.” “아이고, 우리 엄마 아들 집으시겠네. 이제 좀 그 강을 건너 가세요.” 모자의 대화엔 허물이 없다./사진=박상훈 기자
    “애비야, 내가 올해 아흔셋이니 딱 7년만 더 살련다.” “아이고, 우리 엄마 아들 집으시겠네. 이제 좀 그 강을 건너 가세요.” 모자의 대화엔 허물이 없다./사진=박상훈 기자
    -가장 큰 문제는 뭐죠?

    “잠이에요. 밤 11시, 새벽 2시, 5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 효자손으로 바닥을 두드리고 골룸처럼 괴성을 지르시죠. 시도 때도 없이 수라상 대령해야죠.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버스나 전철만 타면 코를 골면 쓰러져 종점까지 까무룩 이에요. 청소부 아줌마가 걸레질하며 “어르신, 숙박비 내세요." 하기 일쑤예요.”

    옆에 앉은 징글맘은 지루한 인터뷰 시간을 못 참고 계속 ‘날 좀 봐달라'고 보챘다. “엄마야! 캬라멜 까주까? 커피 우유 줘?” 보살핌을 받은 노인은 또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기운이 없어서, 그저 앉아서 저 괴롭히는 게 낙이지요.” 그가 웃는다.

    -어머니가 언제 사랑스럽고 언제 미우세요?

    “어머니도 정신이 돌아오시면 고마움을 표시하세요. “애비야, 고맙다. 맛있는 거 만들어줘서 행복해.” 그러면 너무 사랑스럽지요. 미울 때는 밤에 잠 깨울 때, 그리고 치매 등급 검사하러 온 기관 사람들 앞에서 얌전한 척, 멀쩡한 척하실 때에요. 외부인만 오면 영어도 일본어도 툭툭 나와요. “나는 똑똑해. 멀쩡해" 이러시니 너무 얄밉죠. 내 엄마지만 부지깽이로 이마를 쪼사 버리고 싶다니까요. 하하.”

    좁은 방에서도 모자의 티격태격은 끝이 없다.

    “문디 자식, 에미에게 두부를 주고 있어. 니나 처먹어.”-두부를 싫어하신다.
    “애비야! 냉면은 배달시키면 맛이 별로야. 네가 만든 육수로 해 다고.”-선주문 후 밥상에 앉아.
    “어느 년들도 이런 거 만들어 주지 않았어. 정말 니가 최고야.”-과격한 감사 표시.
    -‘나는 매일 엄마와 밥 먹는다' 중에서.

    -음식 만들 때 기본 육수 내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책도 원고지에 직접 육필로 2년 여간 쓰셨다고요. 매사 정성스러운 건 기질입니까?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그림 그릴 때도 스케치며 색칠을 정성껏 했어요. 뭘 하나 해도 잔머리 굴리는 성격이 아니에요. 우리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책의 출판 비용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충당했다. 공고가 나자마자 열흘만에 130% 초과 달성했다고. 그는 엄마와의 시간을 모두 손으로 써내려갔다.
    책의 출판 비용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충당했다. 공고가 나자마자 열흘만에 130% 초과 달성했다고. 그는 엄마와의 시간을 모두 손으로 써내려갔다.
    -내 삶의 남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습니까?

    “강미정 시인이란 분이 그러데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해 10년을 계속하면 인생이 바뀔 거라고요. 세상의 모든 큰일이 자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10년 동안 외박 한번 못했어요. 그런데 제 아내와 딸들이 지금 저를 “존경한다"고 해요. 6개월이나 할까 했는데, 10년을 해낸다고. 아내 핸드폰에 제 이름이 처음엔 ‘좁쌀영감' ‘'밴댕이'였는데, 이젠 ‘캡틴'이라고 바뀌었어요. 손주들도 “할아버지 최고!"래요. 이제 제 엄마 요리보다 할아버지 간장떡볶이가 더 맛있답니다.”

    -그래도 독소처럼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처음엔 자전거를 탔어요. 얼마 전부터 요양보호사가 하루 3시간 오는데, 그 틈을 타서 30km~80km를 냅다 자전거로 달렸죠. 달리며 노래도 불러요. ‘백치 아다다'도 부르고 ‘바닷가에서’도 부르고. 노래 부르고 자전거를 타도 우울해서 자살할 뻔 했어요. 잠이 부족해서 사고도 당했고요.

    지금은 3시간 동안 송내역 광장에 나가서 벼룩시장 배포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요. 어머니 반찬값, 제 담뱃값도 벌고 바람도 쐬는 거죠. 거기서 또 미화원 일이나 전철 검표 일하는 노인들을 보면서 생각해요. 저 노인들 아침도 못 먹고 나왔을 텐데, 나는 어머니 밥상 차려드리며 먹고 나왔으니, 내가 참 복이 많구나.”

    -낙천적인 성격에도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나요?

    “기저귀 차길 싫어하셔서 똥칠해놓으시면 제가 밑을 닦아드리는 게 참 송구해요. 어머니도 움찔하시고. 아들이 전지전능한 슈퍼맨처럼 쓱쓱 다해드려야 하는데, 그런 건 요양사께 부탁을 드리죠. 밥은 내가 다 해드리니 속옷 갈아 입히고 목욕만 좀 시켜달라고요. ”

    젊고 건강했던 엄마가 하시던 말씀처럼 ‘자물쇠가 있으면 반드시 열쇠가 있는 법’. 퇴직한 친구들처럼 ‘삼식이’ 소리 들으며 민폐 끼치며 살 수도 있었는데, 삼시 세끼 요리사가 됐으니 성공한 인생이다./사진=박상훈 기자
    젊고 건강했던 엄마가 하시던 말씀처럼 ‘자물쇠가 있으면 반드시 열쇠가 있는 법’. 퇴직한 친구들처럼 ‘삼식이’ 소리 들으며 민폐 끼치며 살 수도 있었는데, 삼시 세끼 요리사가 됐으니 성공한 인생이다./사진=박상훈 기자
    -본능과 추억만 남은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게 하는 진짜 힘은 뭐죠?

    “나 아니면 누구도 해줄 수 없다는 거죠. 모든 걸 나한테 의지하는 이 한 여인을 제가 떠날 수가 없는 거예요. 요양원에 보내드릴까, 했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가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또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요.”

    -우문이지만, 그게 도리인가요? 육정인가요?

    “어린 시절, 고향 사람한테 사기를 당해서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웠어요. 그때 엄마가 10년을 고생하시며 또순이처럼 집안을 일으키셨어요. 어머니도 그리하셨는데, 저도 해야지요. 아유… 그래도 이게 진짜 9년이 될 줄 알았으면 시작을 못 했죠. 치매 초기 때, 제가 “엄마, 무슨 일 있으면 무조건 핸드폰 1번 눌러" 그랬더니 시도 때도 없이 눌러대셔서...”

    -어머니가 2~3일 정도로 정신이 돌아오신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몸이 허약해서 자동차는 못 타시니 기차 타고 바닷가에 가서 바닷 바람 쐐드리고 싶어요.”

    -2~3일간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자전거 타고 아는 사람 찾아가서 술 한잔하고 싶어요. 하루만 자유 시간이 있다면 6시간만 안 깨고 푹 자고 싶고요.”

    -스스로 치매가 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내가 어머니께 했던 일을 자식들에게 바랄 순 없어요. 전 요양원으로 들어갈 거예요.”

    -어머니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다정하신지요?

    “엄마가 제 표정을 읽어요. 짜증난 것 같으면 금세 한소리 하시죠. “야, 이놈아. ‘죽어라, 죽어라’하면 더 안 죽는다는 옛말도 모르냐? ‘오래 사세요’ 해야 빨리 죽는다. 그러면 저는 그래요. “네, 엄마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세요.””

    누구나 나이 칠십에 백세 부모와 함께할 날을 맞이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들을 회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사진=박상훈 기자
    누구나 나이 칠십에 백세 부모와 함께할 날을 맞이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들을 회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사진=박상훈 기자
    -다 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을 텐데요.

    “성경의 에스겔서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신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도 이길 수 있는 것만 허락하신다는 거죠. 다 놓고 싶은 마음과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갈등하다 결국은 사랑과 책임의 마음이 이겨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습니까?

    “초등학교 때요.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어머니가 학부형 대표로 노래도 멋드러지게 부르시고, 맏이인 저를 아껴서 많이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때 어머니와 함께했던 날들이 아름답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게 버틸 수 있는 힘이에요. 성내고 욕하실 땐, ‘어여, 그 강을 건너가세요.' 하다가도 추억의 힘으로 또 살아요.”

    효자도 뭣도 아니고 그저 한 인간으로서 스머프 할배의 성실한 악전고투 속에서 엄마와 아들, 사랑과 절망의 구획은 허물어진다. 생로병사를 함께 통과하는 모자의 몸은 그 신체발부와 오장육부의 구석구석이 음식의 집이며, 오직 사랑과 책임이 거기에 깃들여 산다.

    그리하여 65년 전 어머니 탯줄을 달고 피투성이로 세상에 나왔을 때처럼, 우리의 스머프할배는 아침마다 늙은 ‘피투성이'로 눈을 떠 마음의 밧줄을 붙잡는다.

    “혼돈의 밑바닥까지 다 보았지만, 언제까지라도 징글맘은 훌륭하고 헌신적이었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시다. 그러니 부디 징글맘도 우리 5형제에게 쏟았던 내리사랑을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지 않으시기를…아멘!”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