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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의 옷장 인문학] 최순실의 프라다가 '블레임 룩'? 기실 원조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입력 : 2016.12.06 07:00 | 수정 : 2016.12.06 09:14

    블레임 룩의 원조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
    ’최순실의 프라다’는 사회의 부당함 보여주는 시각적 자료일 뿐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이의 패션과 스타일을 대중이 따라하는 것을 뜻하는 ’블레임 룩’은  사건의 영향력이 클수록 파급효과도 커진다./Pixabay 제공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이의 패션과 스타일을 대중이 따라하는 것을 뜻하는 ’블레임 룩’은 사건의 영향력이 클수록 파급효과도 커진다./Pixabay 제공
    2016년 한국사회를 수렁으로 빠뜨린 비선실세 최순실. 어찌나 꼼꼼하게 해먹었던지 사회 곳곳에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과히 우주의 기운을 읽는 무당, 샤만(Shaman-널리 아는 자란 뜻)이라 불릴 만했다. 촛불시위 푯말 그대로 우리는 세금이라는 이름의 ‘복채’를 내고 있었다.

    ◆ ‘블레임 룩’에 숨어 있는 본질…비난을 통해 사회를 재확인하다

    지난 10월 31일 수백 명의 취재진과 시민들을 뚫고 최순실씨가 청사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신발 한 짝이 벗겨지며 그녀의 옷차림이 회자됐다. 그녀가 신은 프라다 구두와 토즈 가방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점유했다. 촛불집회에선 그녀의 패션 스타일을 따라하며 조롱하는 코스프레도 등장했다. 이렇게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이의 패션과 스타일을 대중이 따라하는 것을 패션에서는 블레임 룩이라 부른다.

    블레임 룩은 사회에 미친 사건의 영향이 클수록 파급효과도 비례한다. 이 경우 브랜드의 간접광고는 물론 매출도 급상승한다. 과거 1999년 탈옥수 신창원이 입었던 이탈리아 미소니의 알록달록한 패턴의 니트나, 2000년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이 검찰에 소환될 때 착용했던 '에스까다' 선글라스, 학력 위조 파문과 현직 장관과의 불륜 스캔들로 2007년을 달군 신정아가 입었던 돌체 앤 가바나 재킷에 이르기까지, 블레임 룩의 사례들이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블레임 룩이란 명칭을 좋아하진 않는다. 이 말은 왜 사회적 범죄자들의 옷차림을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이미지까지 구겨가며’ 모방하고 조롱하는지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블레임 룩을 이해하려면 비난(Blame)이라는 사회적 행위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된 이들을 비난하면서, 우리자신의 사회적 가치관과 기대치를 표현한다. 잘못한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사회가 규정한 도덕의 경계선과 공동체의 규칙을 재확인한다.

    지난 10월 31일 최순실이 검찰 출석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트려 화제가 된 프라다 신발./연합뉴스 제공
    지난 10월 31일 최순실이 검찰 출석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트려 화제가 된 프라다 신발./연합뉴스 제공
    ◆‘최순실의 프라다’는 사회의 부당함 보여주는 시각적 자료일 뿐

    일상생활에서 비난은 사회의 착한 성원으로부터 나쁜 성원을 분류하고 표현하는 도구이다. 사람들은 비난을 통해 내면화한 사회적 가치를 옹호하고 이를 애써 지켜온 이들과 연대한다. 비난은 사회를 통합하는 순기능을 한다. 우리는 최순실의 프라다 신발과 토즈 가방에 ‘우리가 갖지 못해’ 부러운 감정을 투영하는 게 아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삶의 조건으로 기능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고가의 품목을 비정상적인 수익으로 구매한 과정, 허물어진 이 나라의 정당성에 관해 질문하는 것이다. 그녀의 옷차림은 사회의 부당함을 끄집어내줄 시각적 자료일 뿐이다.

    ◆ 블레임 룩의 원조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은 블레임 룩의 원조다.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는 시민계급이었다. 그가 귀족 여성과의 사랑에 실패하고 자살로 생을 마친 내용을 담은 소설은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도자기 회사 마이센은 베르테르의 소설 속 장면을 제품에 넣어서 문화상품으로 냈고, 베르테르가 자살 당시에 입은 파란색 재킷과 황색 베스트는 한동안 인기를 누렸다.

    1790년경 독일의 도자기 회사 마이센에서 나온  베르테르 시리즈는 소설 베르테르의 장면을 제품에 넣어 화제가 됐다.
    1790년경 독일의 도자기 회사 마이센에서 나온 베르테르 시리즈는 소설 베르테르의 장면을 제품에 넣어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주류사회에 반기를 드는 안티 히어로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특히 타락한 국가 정권이 대중을 착취하고 탄압할 때마다 대중은 이들에게 대항하는 반항적 영웅을 갈망한다. 베르테르의 자살은 18세기 당시 순수한 시민계급이 ‘변화 불가능한 질서’를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과 어울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려준 사건이었다.

    많은 이들이 베르테르의 옷을 입고 ‘나도 베르테르다’라고 외치고 다니며,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묘지에 촛불을 들고 찾아가 예배를 드린 것도 그런 맥락이다. 베르테르는 진정한 안티 히어로였다. 당시 대학생들이 소설 속 청색 재킷과 황색 베스트를 너도 나도 따라하며 입자, 대학당국은 착용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참고로 최순실의 옷차림은 매출상승과 연결되지 못했다. 따라 하기엔 그녀가 너무 파렴치했기에. 그녀는 사회적 안티 히어로가 아닌, 그냥 악인이었기 때문이다.

    [김홍기의 옷장 인문학] 최순실의 프라다가 '블레임 룩'? 기실 원조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옷장의 인문학’ 스토리텔러 김홍기는 국내 1호 패션 큐레이터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복수전공으로 연극영화를 공부하면서 영화 속의 패션에 빠져들었다. 현재 패션과 관련된 각종 교양 다큐나 방송의 자문을 하며, 신문 및 잡지의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샤넬, 미술관에 가다’, ‘옷장 속 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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