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회사 GS칼텍스는 이제 '석유(石油)'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나 새로운 발판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지난 9월 전남 여수시 여수산단로 GS칼텍스 여수 2공장 인근에서 착공식을 가진 바이오 부탄올 시범공장(데모플랜트)은 그 웅지(雄志)를 펴기 위한 일보(一步)다. 이곳에서 폐목재나 폐농작물 등 비(非)식용 바이오매스(Biomass)를 활용해 바이오 부탄올을 쏟아낼 계획이다.
사업비 500억원을 들여 1만5000㎡(4500평) 터에 짓는 이 시범공장은 말 그대로 '시범(示範)'이다. 본격 생산공장을 지을지 말지 검증하는 단계다. 일단 조금 해보고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대량 생산공장으로 이어나간다는 얘기. 내년 하반기(7∼12월)에 완공하면 이 시범공장에선 일단 바이오부탄올을 연 400t 생산할 계획이다. GS칼텍스가 한 해 뽑아내는 원유 정제량의 0.1%에도 못 미치는 규모지만 앞으로 가능성을 보고 적극 투자하겠다는 각오가 서 있다. GS칼텍스는 "비식용 바이오매스를 활용해 바이오 부탄올을 이 정도로 생산하는 건 세계 최초"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가 생산하는 바이오 부탄올은 폐목재와 폐농작물을 잘게 부순 다음 산(酸)과 섞어 바이오당(糖)을 만들고, 이를 고성능 박테리아 균주(菌株)가 먹고 배설하는 공정을 거쳐 나온다. 이 과정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바이오매스가 흡수하면서 생산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크다.
GS칼텍스는 2007년 바이오 부탄올 연구·개발에 들어가 40건 이상 국내외 특허를 출원했으며, 2012년까지 산업통상자원부 국책 과제 지원을 받아 파일럿 단계 기술 개발을 마쳤다.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 신기술 인증(NET)'을 받았고 '2015년 대한민국 기후변화 대응 10대 혁신 기술'로도 뽑혔다. 올해는 환경부 녹색기술인증도 받았다.
GS칼텍스는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력해 바이오 부탄올을 전남 지역 바이오 화학 산업 핵심 품목으로 육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이 바이오 부탄올을 활용해 다양한 응용 제품을 생산하고 싶다면 적극 지원하고 이를 통해 전남창조센터가 꿈꾸는 전남 바이오 화학 생태계 조성에 이바지할 생각. 지난달에는 말레이시아 바이오매스 그린 테크놀로지(BTG·Biomass Green Technology)와 바이오 부탄올 플랜트 사업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공장 건설에 적합한 부지를 찾는 중이다.
◇'석유 시대의 종말' 앞두고 변신 모색
세대를 지배했던 '석유'라는 단어는 이제 저물어가는 신세다. 저유가는 산업 틀을 뒤흔들고 있고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민감해지면서 신재생 에너지 생산은 늘 수밖에 없다.
GS칼텍스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 바이오 부탄올을 그 방편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처지이며, 이 밖에도 ▲사업 다각화와 재무 건전성 ▲내부 경쟁력 강화 '브이 프로젝트(V Project)' ▲미래 성장 동력 발굴하는 연구·개발(R&D) ▲협력사와 함께 가는 지속 가능한 성장, 이 4대 전략을 기본 축으로 조직을 혁신하고 있다.
석유사업 부문은 고도화(高度化)하고 석유화학과 윤활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정유회사가 원유를 들여와 단순 정제(精製) 설비에 넣으면 40%는 벙커C유 같은 잔사유(殘渣油·정제 후 남은 찌꺼기)로 남는다. 고도화 정제는 이를 다시 가공, 분해나 탈황 등을 거쳐 휘발유나 경유 등 고부가 가치 석유 제품으로 재생산해내는 걸 말한다.
고도화 정제 시설이 많을수록 이윤을 더 챙길 수 있다. GS칼텍스는 2004년부터 이 분야에 투자, 2010년 완공한 3차 고도화 설비에만 2조2000억원을 들였고, 2013년에는 1조3000억원을 투자해 4차 고도화 시설인 유동상촉매분해시설(VGO FCC)을 완공했다.
이런 시설 개선 효과는 수출 증대로 돌아왔다. 지난 2002년 전체 매출액의 26% 수준이던 수출 비중은 2006년 50%를 넘어섰고, 2012년 67%, 2013년 68.2%, 2014년 66.3%, 2015년에는 69%에 육박했다. 올 상반기에는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이 70%에 달하기에 이르렀다.
연구·개발은 2007년 바이오 케미컬 연구를 필두로 화장품, 헬스케어, 농약 등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신소재 연구, 수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중합 기술 연구 등도 눈여겨보고 있다. 이미 LFT(Long Fiber Reinforced Thermoplastic·장섬유강화 열가소성수지) 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탄소섬유에 나일론 등 플라스틱과 첨가제를 배합, 강성과 내구성이 좋으면서 변형 가능성을 낮춘 복합소재를 개발해 자동차용 선루프 프레임 소재로 공급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평소 "변화 속에는 항상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존재하기 마련"이라며 "어떤 위기에서도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변화를 읽는 능력을 길러야 하고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과감한 실행력이 필요하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인재를 육성하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