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회사=내수기업'. SK이노베이션은 이런 고정관념을 깬 회사다. 2007년 수출 비중 50%를 돌파하고, 2013년 이후 꾸준히 75%를 넘기면서 국내 정유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출 비중을 자랑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수출 기업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의 주인공으로 도약하기 위해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데 있어 상대적으로 취약한 메이저 기업들의 다양한 판매 네트워크, 막강한 자금력, 진보된 기술, 원활한 원료 공급력 등을 보완해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다. 이런 파트너와 합작법인을 통해 사업 성공 가능성을 한 단계 높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지난해 10월 세계 2위 종합화학기업 사빅(SABIC)과 넥슬렌 합작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사진은 울산광역시에 있는 넥슬렌 공장 전경.

SK루브리컨츠의 인도네시아 두마이 윤활기유 공장 합작은 '글로벌 파트너링' 첫 사례다. 윤활기유는 자동차 등에 쓰이는 윤활유의 원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루브리컨츠가 가지고 있던 세계 최고의 고급 윤활기유 기술로 공략해 보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미나스 원유에서 추출되는 미전환 잔사유(고도화 설비를 통해 석유 제품을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가 윤활기유 최적의 원료임을 주목하고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인 페르타미나사와 파트너링을 추진한 것. 페르타미나의 저가 원료 공급 경쟁력과 SK루브리컨츠의 세계 최고인 윤활기유 생산기술이 만나 서로 윈윈하는 케이스가 됐다.

SK루브리컨츠는 고급 윤활기유 수요가 높은 유럽 시장 공략에도 나서,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렙솔과 함께 스페인 카르타헤나에 윤활기유 전진기지를 건설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11년 렙솔의 브루파우 회장을 직접 만나 고급 윤활기유 합작 모델을 제안하는 등 이 프로젝트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하루 1만3300 배럴의 윤활기유를 생산 중인 이 공장은 렙솔이 현지에서 윤활기유 원재료와 인프라를 제공하고, SK루브리컨츠가 윤활기유 생산기술과 글로벌 마케팅 네트워크를 제공해 공동 운영된다. 이로써 SK루브리컨츠는 울산·인도네시아·스페인 등 3개 공장에서 하루 7만800배럴(연 350만t)의 윤활기유를 생산해 엑손 모빌, 쉘에 이어 세계 3위 윤활기유 제조 업체로 발돋움하게 됐다.

세계 최대 석유화학 시장인 중국 현지에 진출하기 위해 글로벌 파트너링을 성공시킨 사례도 있다. 국내 정유·화학사 중 유일하게 시노펙(SINOPEC·중국 최대 석유 회사)과 중국 우한에 NCC(나프타 분해) 공장을 건설한 중한석화는 연간 약 250만t 유화 제품을 생산하는 총투자비 3조3000억원 규모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이는 그동안 중국에 '제2의 SK'를 건설한다는 최 회장 집념이 일궈낸 중국 사업 최대 성과로 꼽힌다. 중한석화는 가동 첫해부터 흑자를 내며 2014년 기준 영업이익 1476억원을 거두는 등 글로벌 파트너링 사업에서 성과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글로벌 화학 회사 사빅과 넥슬렌 합작법인 설립도 글로벌 파트너링 결실이다. 당초 SK종합화학은 2010년 100% 독자 기술로 넥슬렌 개발에 성공한 뒤 글로벌 합작 사업은 염두에 두지 않았으나 최 회장은 글로벌 메이저 화학 기업들이 고성능 폴리에틸렌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SK의 자원과 역량으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판단,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출범한 SK종합화학과 사빅의 합작법인인 SSNC는 이르면 내년 초 사우디 제2공장 건설을 위한 본격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밖에 신수종 사업에서도 예외 없이 글로벌 기업들과의 파트너링을 진행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공략을 위해 베이징기차, 베이징전공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했으며, 최근에는 독일 다임러사와 2017년부터 출시할 벤츠 전기차 모델에 리튬이온 배터리 셀을 공급하기로 했다.